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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3일(수)
내일은 부산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 출발일. 그런데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감기 기운이 있는 듯.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다. 일기예보로는 내일 부산 경남지방에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조금 걱정이 된다. 대략 출발 준비를 하고 잠을 잔다. 내일 아침 6시 기상할 것.
5월24일(목)
5시40분에 눈을 뜨다. 목이 아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기가 든 것 같다. 6시30분 집을 나서다. 아직 비는 오지 않지만 우산과 우의를 배낭에 챙겼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가서 가져 오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확실히 고생을 한다. 택시를 타고 동래 지하철에 도착하다. 날씨는 아직은 흐리다.
7시30분 교구청 도착하다. 교구에서 주는 유니폼을 갈아입고 가지고 온 배낭은 교구청 차에 실었다. 그리고 교구에서 나누어 준 쌕(배낭)을 등에 졌다. 순례자의 기본 복장이다. 이번 순례길은 7쌍의 부부를 포함하여 모두 142명 참가한다. 우리 본당인 서동성당의 참가자는 5명이다. 날이 덥다.
8시 교구청 출발하여 순례의 첫 걸음을 걷는다. 8시30분 광안성당 자매님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우쭐한 기분이 든다. 점차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구름이 제법 보인다. 8시40분 첫 순례지인 장대골 순교성지에 도착하다. 처음 와 보는 곳, 성지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미사전 묵주기도 3단을 바치다. 황철수 주교님을 비롯한 10분의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목이 아파 성가를 따라 부르기가 힘들다.
황철수 주교님이 아래와 같은 요지의 강론말씀을 하셨다.
“부산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조들의 신앙을 생각하며, 선조들의 신앙을 모범으로 삼자.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순교자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바는 단순히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위한 자기희생, 올바른 것을 찾기 위한 모든 것이 십자가와 연관이 있다. 140년전 1868년 이곳 수영장대에서 순교하신 분은 진리를 증언하신 분이다. 여러분은 이제 4일간 도보로 200리길을 순례할 것이다. 신앙 사적지의 발자취를 밟으며 뿌리를 찾는 시간이 되리라 본다.”
미사 후 9시45분 수영장대를 출발하다. 날씨가 좋아지다. 10시45분 온천천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다. 비가 온다는 어제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너무 좋다. 순례 길에서 직장 동료였던 이영림 스테파노 형제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여 기념으로 한 장 찍다.
10시55분 온천천을 따라 걷다. 온천천을 따라 가니 많은 인원의 이동임에도 다른 사람들 보행에 방해되지 않고 참 좋다. 바람이 선선하게 귀를 스친다. 어느덧 행렬이 무너지고 두 줄로 맞추어 가자고 해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생긴다. 자기 편한 대로 자유롭게 걷는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11시20분 세병교쪽으로 올라와 한일 유엔아이 아파트 방향으로 진입하다. 하지만 이내 길을 잘못 들어와 되돌아 갔다. 길을 건너 동래를 향해 가다.
11시50분 동래성당에 도착하다. 교우들이 정문에서 환영해 준다. 강당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체력보강이 최우선이다. 이동식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수박이 너무나 시원하고 맛있다. 더운 날씨에 먹는 시원한 수박, 행복하다. 12시20분 식사를 마치다. 계속 목이 아파 말을 할 수가 없다. 12시30분 다시 길을 떠난다. 왼쪽 발가락이 따끔거린다. 배도 부르다. 온천천을 따라 동래 지하철을 거쳐 장전동 지하철을 향해 행군한다. 휴...덥다.
13시40분 장전역 통과하다. 더위에 목이 마르다. 참아야 한다. 갈증에 목이 얼얼하다, 목이 탄다는 말, 느낌. 14시10분 오륜대 순교자 기념관 도착하다. 이 곳 수녀님들이 정문에 나와 환영을 해주시다. 맨 먼저 목부터 축이다. 꿀꺽...한 모금의 물이 소중하고, 시원하다. 순교자 묘지참배한 후 사진 몇장 촬영하였다. 발이 따끔거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발에 물집이 잡힌 것 같다.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14시30분 3호차 탑승한다. 이제 차편으로 울산으로 이동한다. 14시45분 가톨릭대학 출발하다. 쭉 메모하던 수첩이 보이지 않아 순간 당황하다. 다행히 좌석 밑에 떨어져 있다. 자리에 앉으니 피곤하다. 기침도 나고, 졸음도 오고 땀도 난다. 총체적 난국이다. 사탕을 한 알 녹여 먹으니 좀 괜찮다.
15시45분 울산 병영장대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울산 신자들이 우리를 열렬히 환영한다. 이곳은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가 순교한 곳이다. 수영장대와 같이 규모가 작다. 16시10분 복산성당을 향해 나아가다. 차도로 행진. 도로는 넓은데 주행하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물기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지나 간다. 곧 비가 올 징조다. 16시35분 빗방울이 떨어진다. 16시45분 복산성당이 보인다.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 크다. 아직 공사 중이다. 복산성당 신자들의 환영을 맞으며 성전으로 들어갔다.
오늘 우리가 걸은 거리가 대략 50리라고 진행자가 이야기해 준다. 17시5분 비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태화교까지의 도보 길은 취소되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18시 언양성당에 도착했다. 언양성당은 세 번째 오는 곳이다. 성당이 고풍스럽고 주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받으러 가는데 갑자기 위에서 등 뚜껑이 떨어져 박살이 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다친 사람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조별 나눔후 저녁기도하다.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파 간호사 자매님께 약을 얻어와 먹었다. 밖에는 비가 많이 온다. 21시 세면장에 가서 씻었다. 예상대로 .발에 물집이 하나 크게 잡혀 있다. 교리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냥 속으로 들어가 취침에 들어갔다. 도보순례 첫날 일과가 이렇게 끝났다.
5월25일(금)
5시45분 기상, 배낭에 짐을 챙겼다. 날씨가 좋다. 간밤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모르고 곯아 떨어진 모양이다. 6시30분 성전에 가서 아침기도를 드렸다. 옛날 이곳 언양성당에 서양 신부님이 계셨는데 여성과의 접촉을 엄하게 지켜 3층 사제관과 식간에 도르레를 이용하여 식사를 운반했다는 에피소드를 평협 이정우 회장님이 들려주었다. 남는 것이 사진뿐이라는 신념에 따라 사진 몇 장 찍고 아침 식사를 하다. 오늘 주교님께서 생일이라 떡을 보내주셨다며 나누어 주어 맛있게 먹었다.
7시45분 일박을 제공한 언양성당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8시50분 등억리에서 10분간 휴식. 덥다. 선두가 너무 빨리 걸어 뒷사람이 따라 가기가 힘들다. 뒷사람을 좀 생각해주는 마음이 아쉽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멍하니 그냥 가기보다 묵주기도를 하며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 교우들과 더불어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걷는 순례여정이 뜻깊다. 9시35분 잠시 휴식을 취하다, 힘들다...다시 묵주기도를 하며 가다. 앞에 가시는 성요한 수도회 외국인 수사신부님과 한국인 수사님도 수도복에 달려있는 긴 묵주를 돌리며 가신다. 평소 수도복에 붙어 있는 묵주의 용도가 궁금했는데 오늘 비로소 그 용도를 본 것이다. 이제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앞에 가시는 수녀님들의 입에서 "아이구 돼다(힘들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10시10분 휴식후 10시20분 다시 출발이다.
더운 날씨에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벌써 걸은 지 3시간이 지나니 많이 지치고 숨이 헐떡거려 진다. 간월재를 향하여 줄을 길게 지어 올라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무지개색 구름이 보인다며 앞서 가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하늘을 쳐다보니 과연 구름 한 조각이 푸른빛을 띄고 있다. 잽싸게 앞에 가는 사람들과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11시15분 드디어 간월재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간월재 전망대는 넓은 공간에 사방이 다 보이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내가 정말 좋다고 감탄한 곳은 청송 주왕산 이후 처음이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땀 흘린 후의 휴식은 정말 감미롭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춥다. 모두들 편안한 자세로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번 순례자중 50대가 가장 많다. 최고령은 75세 할아버지와 68세 할머니부부다. 그야말로 노익장이다. 신발이 안 맞아 신발을 벗고 걸어가는 자매님도 있고, 구급차를 타고 가시라해도 이번 순례에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가면 후회한다고 끝까지 걸어가시는 분도 있다. 식사때가 되었는데도 밥차가 길을 잃었다며 오지 않는다. 출발하려고 인원을 점검하니 한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 간월재를 넘어 산쪽으로 간듯...겨우 휴대폰으로 연락이 되었다. 이쪽이 보인다고 오신단다.
12시30분 밥차는 여전히 안 오고... 죽림굴을 향해 출발하다. 내리막길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12시55분 줄림굴에 도착하니 그곳에 밥차가 와있다. 기다리던 밥이라 맛이 달다. 식사후 죽림굴 안으로 들어가다. 입구는 높이가 1미터 정도, 안에 들아가니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후레시를 비치니 굴 안이 보인다. 꽤 넓다. 박해 시절 이곳에서 최양업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린 곳이다.
13시40분 죽림굴은 100명이상 들어갈 수 없어 죽림굴 앞에서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다. “우리가 오늘 걸어왔던 길을 선조들은 포졸을 피해 올라왔다. 간월재에서 신자가 망을 보고 죽림굴에서 신자들이 미사를 드렸다. 죽림굴은 최양업 신부님도 머물었던 곳이다.…“
미사중 차라도 지나가면 미사가 엉망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한 시간여 걸린 미사중에 단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자마자 차가 1대 지나갔다. 신기한 일이다. 절로 입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온다.
14시20분 죽림굴을 출발하다. 15시40분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달아오른 발을 식히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다. 16시35분 긴 도보 끝에 숙소인 파라소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18시30분 저녁식사 시간 식당에서 맛있는 한끼를 해결하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도시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며칠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 식당밥의 행복을 맛보다. 19시30분 강당에 모여서 한건신부님의 강의를 듣다. 신부님은 죽림굴에서 미사를 하려면 100명이상이 들어갈 수가 없고 또 안이 너무 어두워서 언양성당에서 발전기를 빌려와 돌려야 하는데 오늘이 마침 언양성당 80주년 행사라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죽림굴 안에서 미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차도에서 미사를 하면서 차가 지나가면 어쩌나 했는데 미사중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느끼는 것이 다 비슷한 것같아 신기했다.
(메모가 여기까지 밖에 없어 뒷부분은 8년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것만 짧게 적는다.)
5월26일(토)
이번 순례길에서 가장 힘들고 긴 코스다. 울산에서 양산을 거쳐 밀양에 이르는 25Km의 거리. 순례자들은 더위와 피곤함에도 선조들의 믿음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걷는 데 율리안나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여보, 당신은 나의 좋은 선생님입니다.”란 문자에 순간 감동했다. 아내의 뜬금없는 고백에 힘이 난다. 걷다 쉬다 계속 이어지는 순례길이다. 산 정상에서 휴식을 했는데 부산 평화방송 사장님이신 김승주 신부님이 가곡을 멋지게 부르셨다. 평소 신부님이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옆에서 들으니 정말 좋다. 이윽고 순례길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숙소인 감물청소년수련원으로 이동을 했다.
식사후 캠프 파이어를 하며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나도 일어서서 소감을 이야기 했는데 대략 이런 말을 했던 것같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성지를 순례하고 순례기를 남기고 싶다.”지금 생각하니 지키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5월27일(일)
순례 마지막 날이다. 밀양 김범우 순교자 성지에서 미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3박4일의 도보순례가 끝났다.
첫댓글 와우...넘 부럽네요...
함께 성지 순례 하듯 생생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반가운 모습들도 보이는 것 같고....
고맙습니다...
우연히 그 당시 메모를 발견하여 글을 써 보았는데..기억이 새롭습니다...^^*
신앙 믿음은 발로 몸으로 증거해야 하는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8년전의 일이네요..감사합니다...^^*
순교자의 얼을 기리며 도보 성지 순례하신 모든분들께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순례의 길을 걸으며 순교자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순례기록 잘 보고 갑니다.
문득 제주도 순례길이 생각나네요.^^
저도 제주도 순례하고 싶네요...^^*
옛기억을 더듬어 쓰신 순례기 잘 읽었습니다. 축일 축하드려요^^*
아기토비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