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극장 1960년대
서면로타리 북성극장은 외화만 상영했던 재개봉관이었구요.
해방후에 전국에서 제일 먼저 설립한 극장이며
서면에서 제일 먼저 생긴 극장이라고 합니다.
남포동 개봉관들과 동시개봉도 꽤 많이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나타샤>를 이 극장에서 단체로 관람했습니다.
1947년 개관한 이 극장은 제가 <나타샤>를 보고난 후인 1975년 폐관되었습니다.
동보극장 1960년대
서면 동보극장 1970년대
1970년대 부산 서면극장가는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영화는 남포동 개봉관과 동시개봉을 하면서 입장료는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 개봉관 관객동원 기록은 남포동 단관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반토막 숫자이다. 아마도 동시개봉한 서면 극장들의 관객수까지 합쳤다면 그 숫자는 서울 개봉관과 비슷했을 것이다.
범일동에서 서면으로 진입하기 직전, 범내골 로타리에 있는 ‘동아극장’을 시작으로 ‘대한극장’ ‘태화극장’ ‘동보극장’을 지나면 서면로타리에 ‘북성극장’이 있었고, 당감동 쪽으로 ‘천일극장’, 동래 쪽으로 ‘노동극장’ 그리고 전포동 쪽으로 ‘테평시네마’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번화가인 서면로타리 부근에 있었던 북성극장, 태화극장, 대한극장, 동보극장 등 4개관은 남포동 개봉관들과 동시개봉을 했다.
서면 대한극장 1990년대
나는 1974년 대한극장에서 상영중인 <나바론>을 보기위해 처음으로 서면극장가를 갔다. 이후 북성극장에서 <나타샤>, 태화극장에서 <추상> <너무너무 좋은거야>, 대한극장에서 <에스피오나지> <닥터 지바고>, 동보극장에서 <썬샤인>, <재뉴어리>, <열애> 등을 봤던 기억이 난다. 1957년에 개관했던 동보극장은 1975년 보수를 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을 완전히 헐고 그해 추석에 재개관하기도 했다.
1969년에 개관한 1,900여석의 대형극장인 대한극장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가도, 2층이나 3층으로 학생들을 몰았기 때문에 1층에서 보는 일반관객들에게 전혀 피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극장은 단체관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극장은 엄청나게 큰 극장이라 구석구석 은밀한 장소가 많아서 청소년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음란한(?) 짓을 하기가 용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극장은 항상 바람난 청소년들로 붐볐다.
개인적으로는 1978년 <닥터 지바고>를 보러가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면서 콜록콜록 기침을 했던 기억이 난다. 1980년대 대한극장은 UIP영화를 상영하면서 개봉관으로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직장 초년병시절 부산으로 출장을 가서 저녁시간에 이 극장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돈가방을 든 수녀>, <언터쳐블> 등을 봤던 기억도 난다. 현재는 CGV복합상영관으로 영업중이다.
태화극장과 동보극장 우측 1960년대 초반
1967년 독일 뤼브케 대통령 부산 방문시 사진, 우측에 태화극장과 동보극장이 보인다.
서면지하도 앞의 가장 번화한 자리에 있었던 태화극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독일군의 화염방사기에 의해 불에 타죽는 로미 슈나이더의 애처러운 모습이다. 중학교 때 본 이 영화는 정말 충격 그자체였다. 바로 프랑스영화 <추상>이다. 그시절 임예진이 식모로 나와 주인집 아들 전영록과 사랑을 하게되는 <너무너무 좋은거야>라는 하이틴 영화도 아주 재밌게 봤는데, ‘난 알아요 사랑이 뭔지...’로 시작하는 김인순의 주제가까지도 또렷이 기억난다. 1980년대 후반에 가보니 태화극장은 태화백화점으로 변해 있었다.
다음에 부산을 가면 서면을 한번 가보고 싶다. 혜화여고 옆으로 동천이 흘렀고 거슬러 올라가면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파는 칼국수가 아주 맛있었던 기억도 난다. 동보극장 뒤쪽으로 시립도서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범내골 쪽으로 내려오면 도심 한복판에 군부대와 제일제당 공장이 있었는데, 제일제당의 곡물 때문이었는지 비둘기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던 기억도 난다. 이것이 바로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후반 서면의 모습이다.
록/燦
1960년대 초반, 서면 극장이 있던 자리 (출처/부산진 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