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
김 국 자
새마을연수원에 교육을 갔을 때 일이다. 난센스퀴즈 시간이었다. ‘뽀뽀를 북한용어로 무어라고 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소리치며 손을 들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지목이 되었다. 사회자의 얼굴에 ‘설마 저렇게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맞힐 수 있으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러분! 조용하세요. 정답이 나가겠습니다. 자~ 발표해 주세요.” 장난기 섞인 사회자의 말에 나는 “주둥이박치기”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일제히 웃음보를 터트리는 가운데, 사회자의 요청에 의해 나는 단상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 사회자는 “그런 걸 어떻게 아셨어요? 솔직히 정답을 못 맞힐 줄 알았거든요.”라고 물었다.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아하! 그러셨군요.” 우스꽝스러운 북한용어를 맞히는 바람에 푸짐한 상품과 함께 박수세례를 받았다
북한을 공식 방문했던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북한의 이모저모와 함께 특이한 북한용어를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몇 가지 요약해보면 넥타이는 목댕기, 아이스크림은 얼음부숭이, 조미료는 맛내기, 수제비는 뜨덕국, 체육복은 단복, 에어콘 은 냉풍기, 도시락은 밥곽, 마스게임은 집단체조, 낮잠은 오침, 깡패는 망나니패, 농담은 농말, 헬리콥터는 직송기, 전구는 불알, 형광등은 긴 불알, 두개짜리 형광등은 쌍 불알, 쌍데리아는 떼불알이라 고 한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전통시장에 북한상품전용 판매점이 등장했다. 진열되어있는 상품 모두 한글로 표기되었다. 더덕, 취나물, 도라지, 고사리 등 마른 나물이며 냉동 가자미, 잉어, 미꾸라지 등 물고기 종류와 술이나 국수종류 등 골고루 갖추어졌다.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은 물론 공산품 명칭 모두 한글로 표기되었다. 개성 인삼, 평양냉면, 진달래 술, 함경도 가자미식혜, 대동강 국수 등 한글 표기를 보며 “세종대왕께서 보신다면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상품명칭이나 상가의 간판 거의 다 외래어로 표기되었다. 외래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힌 것들이 너무 많다. 햄, 도넛, 피자, 치킨, 소시지, 핫도그, 햄버거, 마요네즈, 아이스크림, 라디오, 오디오, 컴퓨터, 텔레비전, 프라이팬, 가스레인지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점점 외래어에 익숙해지고 거부감을 모르는데,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어만큼은 이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일정시대를 겪은 어른들의 생활 속에 젖어있는 일본어 버리기가 쉽지 않다.
컵은 고뿌, 접시는 사라, 양동이는 바께쓰, 양푼은 다라이, 구멍난 것은 빵꾸, 초인종은 요비링, 손톱깎이는 쓰메끼리, 페인트는 뼁끼, 양복 칼라는 에리, 이쑤시개는 요지, 손수레를 구루마라 부른다. 어묵은 오뎅, 귤은 미깡, 금귤은 낑깡, 고추냉이는 와사비, 튀김은 덴부라, 나무젓가락을 와르바시 라 부른다.
중국음식을 먹을 때 ‘단무지 주세요.’라는 말보다 ‘다꾸앙 주세요.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전구를 교체할 때도 ‘다마’를 갈아야 한다고 하고, 환풍기를 틀어놓으라고 하면 될 일을 후앙 틀어놓으라 한다.
며느리를 얻은 후부터 내게 숙제가 생겼다. 일본어를 버리는 일이다. 물통에 물을 받을 때 ‘이빠이 받아, 이빠이!’ 했더니 “어머니~~가득이요! 가득!” 하고 지적했다. 조심하고 조심하여 예전보다 많이 고쳤는데도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일정시대를 겪은 어른들이 계속 일본용어를 사용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수리하는 아저씨도 흠집을 기스라 하고, 철물점아저씨에게 ‘사포 주세요.’ 하면 못 알아들어도 ‘뻬빠 주세요.’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어느 세월에 고쳐질는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주 월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우리말겨루기> 방송프로를 열심히 본다. 그 프로를 보며 우리말을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