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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모순의 미학
[1] 가족은 가장 작은 생활 시스템이다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집단만이 아니다. 가족은 누가 누구를 돌보는지,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지, 누가 경제적 부담과 가사노동을 담당하는지, 어떤 감정은 표현할 수 있고 어떤 사건은 숨겨야 하는지를 정하는 생활 시스템이다.
가족은 구성원을 보호하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돌봄의 기반시설이다. 동시에 아버지·어머니·남편·아내·아들·딸이라는 역할을 배분하고 개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사회적 제도이다.
그러므로 가족관계의 핵심적인 모순은 다음과 같다.
* 돌봄인가, 통제인가
* 사랑인가, 소유인가
* 보호인가, 감시인가
* 친밀함인가, 사생활 침해인가
* 희생인가, 역할의 강요인가
* 소속인가, 개인성의 상실인가
* 기억인가, 기억의 미화인가
* 기록인가, 가족 신화의 연출인가
* 안정인가, 변화의 억압인가
* 애도인가, 죽은 사람에 대한 계속된 소유인가
이러한 모순은 어느 한쪽이 거짓이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통제, 돌봄과 간섭, 친밀함과 침해가 종종 같은 행위와 같은 통로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2] 가족 시스템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가족이라는 시스템은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이 남긴 공간·사물·몸·말투·행동의 차이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 식탁에서 항상 같은 사람이 앉는 자리
* 오래 사용해 닳은 의자와 거의 사용되지 않은 의자
* 가족 가운데 한 사람만 사용하는 방
* 열려 있는 방문과 잠겨 있는 방문
* 한 사람의 물건만 사라진 수납장
* 벽에 걸린 가족사진의 인물 배열
* 항상 사진을 찍느라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는 사람
* 식사 후에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과 먼저 쉬는 사람
* 여러 사람의 약봉지를 정리하는 한 사람
* 대화 대신 냉장고에 붙여놓은 메모
* 반복해서 수선된 옷과 생활도구
* 떠나거나 죽은 가족의 방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
* 가족사진에서 점차 사라지는 인물
가족관계는 표정이나 극적인 사건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리의 배분, 물건의 위치, 몸의 거리, 반복되는 노동과 부재에 더 깊이 새겨진다.
[3] 가족은 차이와 비대칭으로 나타난다
가족 구성원은 같은 집에서 생활하지만 그 공간을 똑같이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집 전체를 돌보지만 자기만의 방이 없고, 누군가는 가장 넓은 방을 사용하면서 가사노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가족사진의 중앙에 반복해서 등장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촬영하느라 늘 프레임 밖에 머문다.
따라서 가족 시스템은 “무엇이 있는가”보다 다음과 같은 차이에서 드러난다.
*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 누가 결정하고 누가 따르는가.
* 누가 보살피고 누가 보살핌을 받는가.
* 누가 집에 머물고 누가 밖으로 나가는가.
* 누가 기억되고 누가 사진에서 사라지는가.
* 누가 가족의 대표 얼굴이 되고 누가 배경이 되는가.
사진은 가족 구성원을 평등하게 한 화면에 담을 수 있지만, 그 사진을 가능하게 한 실제 관계까지 평등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4] 돌봄인가, 통제인가
돌봄은 상대의 필요와 변화에 반응하는 행위이다. 통제는 상대를 미리 정해놓은 정상적인 상태에 맞추려는 행위이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는 두 행위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약을 챙겨주고 식사를 관리하며 귀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돌봄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의 선택과 행동을 지속해서 제한한다면 통제가 된다.
앤마리 몰(Annemarie Mol)은 돌봄을 정해진 규칙의 적용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태를 관찰하고 상대와 함께 계속 조정하는 실천으로 설명한다. 돌봄은 상대를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필요를 견디며 적절한 상태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참조: Annemarie Mol, 《The Logic of Care》
https://www.routledge.com/The-Logic-of-Care-Health-and-the-Problem-of-Patient-Choice/Mol/p/book/9780415453431
가족 안의 돌봄이 통제로 전환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 안전을 이유로 외출을 제한하는 경우
* 건강을 관리한다며 음식과 생활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
* 걱정된다는 이유로 전화와 위치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경우
* 대신 결정해주는 것이 상대의 판단 능력을 약화시키는 경우
* 돌봄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복종과 감사를 요구하는 경우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돌봄은 상대를 나의 기준에 맞게 보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통제 욕구를 조절하는 것인가.
[5] 사랑인가, 소유인가
가족의 사랑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감정이 들어 있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라는 믿음은 상대의 시간·몸·감정에 대한 권리의식으로 바뀔 수 있다.
*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 가족이므로 비밀이 없어야 한다.
* 부모이므로 자녀의 선택에 개입할 수 있다.
* 배우자이므로 상대의 인간관계를 제한할 수 있다.
* 가족을 위해 희생했으므로 상대도 보답해야 한다.
이때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는 관계라기보다 상대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정서적 채무가 된다.
가족사진에서도 이러한 모순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만, 사진가는 상대의 모습을 선택하고 소유한다. 촬영된 사람은 가족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사진가의 기억과 작품 속 인물이 된다.
사진은 사람을 간직하게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갖는 권리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6] 보호인가, 감시인가
가족은 외부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한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일상을 계속 관찰한다는 점에서 가족은 감시 시스템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표정과 말투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평소와 다른 귀가 시간과 소비, 식사, 인간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은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는 돌봄이면서 사적 영역을 축소하는 감시가 될 수 있다.
가족의 감시는 CCTV처럼 명확한 장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 “어디니?”라는 반복적인 질문
* 방문을 잠그지 못하게 하는 규칙
* 휴대전화와 메시지를 확인하는 행동
* 외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관행
* 가족사진과 SNS를 통한 생활 공개
*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 물건을 허락 없이 보는 행동
중요한 것은 질문이나 관찰 그 자체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관찰하며, 관찰당하는 사람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가이다.
[7] 친밀함인가, 사생활 침해인가
사진가는 가족에게 접근하기 쉽다. 가족은 외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잠든 모습, 아픈 몸, 다툼, 노화와 슬픔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성은 가족사진의 특별한 힘을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큰 윤리적 위험을 만든다.
가족이 촬영을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동의는 서로 다르다.
* 촬영되는 것에 대한 동의
* 특정 사진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동의
* 전시장에 공개하는 것에 대한 동의
* 책과 인터넷에서 장기간 유통되는 것에 대한 동의
*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 공개되는 것에 대한 동의
특히 어린이, 환자, 노인,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가족은 촬영을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허락받기 쉽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진가에게 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한다.
친밀함은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가, 아니면 더 조심해야 할 책임을 주는가.
[8] 희생인가, 역할의 강요인가
가족을 지속시키는 노동은 대부분 반복적이며 결과가 남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약을 챙기고,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노동은 매일 수행되지만 가족사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노동을 사랑과 희생으로만 칭송하면 왜 특정한 사람이 그 역할을 계속 전담하는지 묻지 못하게 된다.
‘강한 어머니’, ‘책임감 있는 가장’, ‘착한 장녀’라는 칭찬은 개인을 존중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규범일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의 희생을 다룰 때는 다음을 함께 물어야 한다.
* 그 희생은 자발적이었는가.
* 다른 선택이 실제로 가능했는가.
* 가족 구성원들이 노동을 나누었는가.
* 희생한 사람의 욕망과 시간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 희생을 칭송하는 말이 불평등을 감추고 있지는 않은가.
가족의 돌봄은 숭고하지만 그 숭고함이 노동의 불균형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9] 소속인가, 개인성의 상실인가
가족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최초의 답을 제공한다. 얼굴·말투·몸짓·습관·성격의 일부는 가족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가족이 부여한 정체성은 개인을 고정할 수도 있다.
* 너는 장남이므로 이래야 한다.
* 딸은 부모 곁을 지켜야 한다.
* 우리 집안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 너는 어릴 때부터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 가족의 체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가족은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면서 그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소속은 안정감을 주지만 가족과 다르게 살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이 모순은 닮음에서도 나타난다. 가족을 닮았다는 말은 친밀성과 소속의 표현이지만, 개인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가족의 반복으로 해석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10] 기억인가, 기억의 미화인가
가족앨범은 가족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선택적인 기록이다.
생일·여행·입학·졸업·결혼처럼 축하할 만한 사건은 남는다. 죽음·이혼·실직·질병·폭력·갈등·가난은 촬영되지 않거나 앨범에서 제외된다.
조 스펜스(Jo Spence)는 가족앨범이 개인의 기억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삭제할지 결정하는 시각적 구성물이라고 보았다.
참조: MACBA, 조 스펜스 《Beyond the Family Album》
https://www.macba.cat/en/obra/r2825-beyond-the-family-album/
가족앨범의 핵심적인 역설은 다음과 같다.
가족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앨범이 실제 가족의 갈등과 상처를 삭제함으로써 현실의 가족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족사진은 거짓말이라기보다 가족이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정상성의 이미지이다. 밝은 표면에는 촬영되지 않은 사건과 사라진 구성원의 부재가 함께 들어 있다.
[11] 기록인가, 가족 신화의 연출인가
가족사진은 실제 가족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가족이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지 연출한다.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로 가까이 서고, 웃으며, 갈등이 없는 가족처럼 포즈를 취한다. 사진가는 어수선한 물건을 치우고 가족 구성원의 위치를 정한다. 이때 사진은 현실의 가족을 기록하면서 ‘행복하고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사회적 모델을 반복한다.
연출이 포함되었다고 해서 사진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현실을 기록한다.
사진이 기록하는 것은 가족의 일상만이 아니다. 가족이 스스로 연출하는 가족다움이다.
[12] 안정인가, 변화의 억압인가
가족은 구성원에게 지속성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변화가 억제되기도 한다.
아이가 성장하고, 부모가 노화하며, 자녀가 독립하고, 부부관계가 변하고,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거나 누군가 떠난다. 가족은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 구성과 역할은 계속 변한다.
가족사진을 장기간 반복해서 촬영하면 다음 변화가 나타난다.
*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서기 시작한다.
* 부모와 자녀의 키와 위치가 역전된다.
* 중심에 있던 부모가 가장자리로 이동한다.
* 새로운 배우자와 자녀가 들어온다.
* 이혼과 죽음으로 빈자리가 생긴다.
* 같은 집이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바뀐다.
가족의 지속은 동일한 상태의 보존이 아니다. 변화와 상실을 포함하면서도 관계의 이름이 계속 유지되는 과정이다.
[13] 애도인가, 계속된 소유인가
죽은 가족의 사진과 유품은 부재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현재로 불러온다.
남겨진 옷, 신발, 약, 빗, 침대와 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몸과 반복해서 접촉했던 사물이며, 부재한 사람의 간접적인 초상이 된다.
사진을 보는 행위는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애도이면서 계속 붙잡아두는 행위일 수 있다. 방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은 사랑의 표현이면서 남은 가족의 시간이 멈추었다는 흔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유품사진은 “이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이면서 “이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존재와 부재가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14] 가족을 직접 찍지 않고 관계를 보여주는 방법
가족관계는 반드시 얼굴과 인물로만 표현할 필요가 없다.
1. 자리의 흔적
항상 같은 사람이 앉는 의자, 비어 있는 식탁 자리, 유독 닳은 방석은 가족 안의 역할과 부재를 보여준다.
2. 반복노동의 흔적
접힌 빨래, 정리된 약, 수선된 옷, 닳은 조리도구는 보이지 않는 돌봄노동을 드러낸다.
3. 경계의 흔적
잠긴 방문, 문 앞에 놓인 물건, 각자의 냉장고 칸과 수납영역은 친밀성과 개인성의 경계를 보여준다.
4. 갈등 이후의 흔적
깨졌다 붙인 물건, 위치가 바뀐 가구, 지워진 메모, 따로 놓인 식기는 사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관계의 변화를 암시한다.
5. 부재의 흔적
비어 있는 옷걸이, 한 사람의 물건만 사라진 책상, 사용하지 않는 방, 가족사진에서 제외된 자리는 떠난 사람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가시화한다.
6. 시간의 흔적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촬영하면 성장·노화·독립·질병·죽음에 따라 가족관계가 어떻게 재배치되는지 나타난다.
[15] 사진작가도 가족 시스템의 일부이다
가족을 촬영하는 사진가는 객관적인 외부 관찰자가 아니다. 사진가 역시 아들·딸·부모·배우자·형제라는 역할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다.
사진가는 가족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가족관계에 개입한다.
* 촬영 요청이 가족의 행동을 바꾼다.
* 카메라가 대화를 시작하게 하거나 중단시킨다.
* 사진 선택이 특정 인물의 중요성을 높이거나 낮춘다.
* 전시는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해석의 대상으로 바꾼다.
* 사진가가 과거의 기억을 다시 구성하면 다른 가족의 기억과 충돌한다.
따라서 가족사진은 가족을 보여주는 창문이 아니다. 촬영행위까지 포함하여 가족관계를 다시 만드는 사건이다.
[16] 가족 작업에서 모순을 지속하는 방법
가족의 모순을 지속한다는 것은 모든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장면과 흔적을 통해 동일한 행동이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조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 누구에게 돌봄이고 누구에게 통제인가.
* 누가 보호하고 누가 감시당하는가.
* 누가 희생하고 누가 그 결과를 누리는가.
* 누가 사진을 찍고 누가 기록에서 빠지는가.
* 누가 가족을 대표하며 누가 주변부에 놓이는가.
* 누가 기억을 선택하고 누가 잊히는가.
* 현재의 동의가 미래의 공개까지 포함하는가.
작품은 가족을 행복하거나 불행한 집단으로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랑과 상처, 돌봄과 소진, 소속과 억압이 동일한 관계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17] 적절한 촬영과 배열 방법
1. 같은 장소를 반복 촬영한다
식탁·거실·부모의 방·현관처럼 관계가 반복되는 장소를 일정한 구도로 촬영한다. 작은 위치 변화가 가족관계의 시간으로 바뀐다.
2. 인물과 사물을 병치한다
가족의 초상 옆에 그 사람이 사용하는 의자·약·옷·도구를 놓는다. 얼굴과 생활 흔적 사이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역할이 드러난다.
3. 공식사진과 비공식사진을 연결한다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 옆에 촬영 전후의 장면, 비어 있는 방, 정리되지 않은 식탁을 배열한다. 가족의 공식적 이미지와 실제 생활 사이의 간격을 만든다.
4. 사진과 기억의 충돌을 기록한다
하나의 옛 사진을 두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말을 함께 제시할 수 있다. 사진은 기억을 통일하는 증거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된다.
5. 부재를 설명으로 채우지 않는다
누가 왜 떠났는지를 전부 설명하기보다 빈자리와 사물의 변화가 부재를 느끼게 한다. 설명이 적을수록 관객은 보이지 않는 관계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6. 결정적인 사건보다 반복적인 일상을 본다
다툼이나 죽음 같은 극적인 사건보다 매일 누가 밥을 차리고, 기다리고, 문을 닫고, 약을 챙기는지 살펴본다. 가족 시스템은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더 정확히 드러난다.
[18] 대표적인 사진가와 예술가
1. 조 스펜스(Jo Spence) — 《Beyond the Family Album》, 1978–1979
조 스펜스는 개인사진, 자전적 글, 신문자료를 병치하여 가족앨범에서 제외된 죽음·이혼·갈등·학대·질병을 다시 불러냈다.
가족앨범이 기억을 보존하는 사적 기록이면서 정상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회적 장치임을 밝혔다. 가족사진의 핵심은 사진에 나타난 사람뿐 아니라 사진에서 조직적으로 빠져 있는 사건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기관: MACBA, 《Beyond the Family Album》
https://www.macba.cat/en/obra/r2825-beyond-the-family-album/
2. 래리 술탄(Larry Sultan) — 《Pictures from Home》, 1983–1992
술탄은 약 10년 동안 부모를 촬영하고 옛 가족영화·대화·글·연출사진을 함께 구성하였다. 기록처럼 보이는 사진 가운데 상당수는 부모와 협의하여 연출한 장면이다.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카메라로 분석하고, 기억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억을 연출한다. 부모는 촬영대상이면서 아들의 연출에 참여하거나 저항하는 협력자가 된다.
가족은 사진가가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이미지를 수정하는 공동연출 체계로 나타난다.
작품·기관: SFMOMA, 《Larry Sultan: Here and Home》
https://www.sfmoma.org/exhibition/larry-sultan-here-and-home/
작품·작가: Larry Sultan, 《Pictures from Home》
https://www.larrysultan.com/gallery/pictures-from-home/
3. 리처드 빌링엄(Richard Billingham) — 《Ray’s a Laugh》, 1996
빌링엄은 알코올 의존이 있던 아버지 레이와 어머니 리즈가 생활하던 집을 촬영하였다. 사진에는 가난·술·충돌·혼란과 함께 농담·애정·무료함과 기묘한 활력이 공존한다.
이 작업은 가족에 대한 폭로나 비난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부모의 취약한 삶을 공개한다는 윤리적 위험과, 그 삶을 외면하지 않고 내부자의 위치에서 기록한다는 애정이 충돌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아름답거나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불쾌함·수치심·분노·연민이 애정과 분리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자료: Photoworks, Richard Billingham
https://photoworks.org.uk/richard-billingham/
작품·자료: Hyman Collection, 《Ray’s a Laugh》
https://hymancollection.org/bodies-of-work/richard-billingham-rays-a-laugh/
4. 낸 골딘(Nan Goldin) —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1973–1986
골딘은 연인·친구·퀴어 공동체를 자신의 ‘선택된 가족’으로 바라보며 사랑·성·파티·약물·질병·폭력·AIDS와 죽음을 촬영하였다.
이 작업은 혈연만이 가족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택된 가족은 보호와 소속을 제공하지만 그 안에도 의존·질투·폭력·상실이 존재한다.
친밀함은 보호막이면서 상처받을 가능성이고, 사진은 잊지 않게 하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계속 현재로 되돌린다.
작품·기관: MoMA,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1651
5. 샐리 만(Sally Mann) — 《Immediate Family》, 1992
샐리 만은 자녀들의 놀이·잠·상처·질병·나체와 연출된 장면을 촬영하였다. 어린 시절의 자유와 취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모가 자녀의 몸과 사생활을 어디까지 이미지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이 작업의 의미는 예술과 외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부모의 사랑과 사진가의 표현권, 자녀의 동의와 미래의 사생활이 충돌하는 지점을 지속해서 묻게 한다.
친밀함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접근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작품·출판: Aperture, 《Immediate Family》
https://aperture.org/books/immediate-family/
6. 엘리노어 카루치(Elinor Carucci) — 《Closer》·《Mother》
카루치는 부모·조부모·형제·남편·자녀와 자신의 몸을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였다. 《Mother》에서는 임신과 출산, 쌍둥이 자녀의 성장, 사랑·기쁨뿐 아니라 혼란·피로·짜증·다툼을 함께 보여준다.
모성은 이상적인 희생이 아니라 매일 씻기고 먹이고 기다리고 달래는 반복노동으로 나타난다. 아이를 돕는 행위는 아이를 통제하는 행위로 바뀔 수 있고, 아이의 독립은 성장의 기쁨이면서 관계의 상실이 된다.
작품·작가: Elinor Carucci, 《Closer》
https://www.elinorcarucci.com/closer.html
작품·작가: Elinor Carucci, 《Mother》
https://www.elinorcarucci.com/mother.html
7. 이시우치 미야코(Ishiuchi Miyako) — 《Mother’s》, 2000–2005
이시우치는 생전 어머니의 피부·머리카락·화상 흉터를 촬영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립스틱·속옷·신발·의치·머리카락이 남은 빗을 촬영하였다.
유품은 어머니의 부재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몸을 대신한다. 사진은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애도이면서 그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는 행위가 된다.
생전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사후에 사진으로 다시 만나면서 사랑·갈등·죄책감·상실이 하나의 사물 안에서 중첩된다.
작품·기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other’s》
https://www.metmuseum.org/art/online-features/metcollects/ishiuchi-miyako
8. 후카세 마사히사(Masahisa Fukase) — 《Family》, 1971–1989
후카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했던 홋카이도의 사진관에서 약 20년 동안 가족사진을 촬영하였다. 전통적인 가족사진 형식에 가족이 아닌 모델, 우스꽝스러운 표정, 나체와 장난스러운 연출을 끼워 넣었다.
같은 프레임 안에 있다고 모두 가족인 것은 아니며, 혈연이라고 반드시 정서적으로 가까운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촬영이 반복되는 동안 가족은 늙고 일부 구성원은 사라진다.
가족은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오고 떠나며 늙고 죽는 임시적인 배열로 나타난다.
작가·아카이브: Masahisa Fukase Archives, 《Family》
https://masahisafukase.com/
작품·기관: Foam, Masahisa Fukase
https://www.foam.org/events/masahisa-fukase
9. 질리언 웨어링(Gillian Wearing) — 《Album》, 2003
웨어링은 어머니·아버지·형제·삼촌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그들의 옛 가족사진을 재연하였다. 가면의 눈구멍에는 작가 자신의 눈이 남아 있다.
가족은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지만 개인은 가족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쓰지만 끝내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가족의 닮음은 소속의 증거이면서 벗어나기 어려운 역할과 기억의 흔적이다.
작가·기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Gillian Wearing
https://www.guggenheim.org/artwork/artist/gillian-wearing
작품·기관: Buffalo AKG Art Museum, 《Album》
https://buffaloakg.org/artworks/p2004146-self-portrait-17-years-old-series-album
10. 픽시 리아오(Pixy Liao) — 《Experimental Relationship》, 2007–현재
픽시 리아오는 연하의 일본인 연인 모로와 함께 연출사진을 만들며 이성애 관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남성의 주도권과 여성의 수동적 역할을 뒤집는다.
작가가 연인을 연출하고 통제하지만 연인은 자발적인 협력자이다. 남성은 대상화되지만 그 대상화를 함께 놀이로 만든다. 사랑은 평등을 추구하지만 완전히 권력 없는 관계가 되지는 않는다.
관계의 권력은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협상되고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품·기관: Art Institute of Chicago, 《Pixy Liao: Relationship Material》
https://www.artic.edu/exhibitions/10548/pixy-liao-relationship-material
작품·작가: Pixy Liao, 《Experimental Relationship》
https://www.pixyliao.com/experimental-relationship
11. 김옥선 — 《Happy Together》
김옥선은 한국 여성과 외국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국제결혼 부부를 그들의 생활공간에서 정면으로 촬영하였다. 작가 자신과 독일인 남편도 작업에 포함되었다.
특별한 표정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 인물 사이의 거리·자세·시선·실내 사물이 관계의 단서를 만든다. 부부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과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판단은 일치하지 않는다.
《Happy Together》라는 제목은 행복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질문한다. 결혼은 두 개인의 사랑이면서 국적·문화·인종·성별에 관한 사회제도와 만나는 관계이다.
작품·작가: 김옥선, 《Happy Together》
https://www.oksunkim.com/books
작품·기관: 뉴욕한국문화원, 《김옥선: 해피투게더》
https://kr.koreanculture.org/exhibition/2004/7/15/-
12. 윤석남(Yun Suknam) — 《어머니》 연작
윤석남은 자신의 어머니의 생애를 통해 모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본성이 아니라 결혼·가난·가부장제·돌봄노동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역할임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희생은 가족을 살린 사랑의 실천이지만, 한 여성에게 삶의 부담이 집중된 결과이기도 하다. ‘강한 어머니’라는 칭송은 어머니가 고통을 견뎌야 했던 구조를 감출 수 있다.
모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희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왜 한 사람이 그 희생을 전담해야 했는가를 묻는 일이다.
작품·기관: 국립현대미술관, 《어머니 3-요조숙녀》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wrkinfoSeqno=3886
13. 정연두(Yeondoo Jung) — 《상록타워》, 2001
정연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32가구를 동일한 구조의 거실과 같은 앵글로 촬영하였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공간 안에서 가족 구성·가구·장식·자세가 서로 다른 생활질서를 만든다.
가족은 외부에서 보았을 때 비슷한 주거단위로 보이지만 내부에는 서로 다른 역할·욕망·관계가 존재한다.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도시가족의 익명성과 사적 세계가 함께 나타난다.
작품·기관: 아트선재센터, 《상록타워》
https://artsonje.org/collection/%EC%83%81%EB%A1%9D%ED%83%80%EC%9B%8C/
[19] 선행작업의 주요 계보
대표적인 가족 작업은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 조 스펜스: 가족앨범이 삭제한 사건과 가족 신화
* 래리 술탄: 사랑과 의심, 기록과 연출
* 리처드 빌링엄: 애정과 분노, 내부 기록과 윤리적 노출
* 낸 골딘: 선택된 가족, 친밀함과 폭력
* 샐리 만: 보호와 노출, 부모의 시선과 자녀의 권리
* 엘리노어 카루치: 모성적 돌봄과 소진
* 이시우치 미야코: 갈등·애도·유품과 부재
* 후카세 마사히사: 가족사진의 의례와 구성원의 소멸
* 질리언 웨어링: 가족적 닮음과 개인 정체성
* 픽시 리아오: 연인관계의 성 역할과 이동하는 권력
* 김옥선: 부부관계와 문화적 차이
* 윤석남: 모성과 희생을 생산하는 사회구조
* 정연두: 표준화된 주거와 서로 다른 가족생활
[20] 아파트와 가족 시스템의 연결
아파트와 가족은 겉으로는 안정된 단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복적인 유지와 조정으로 지속된다.
* 아파트의 청소 자국은 가족의 반복적인 가사노동과 연결된다.
* 복도의 개인 화분은 공동생활 속 개인의 작은 영토와 연결된다.
* 벽의 균열과 보수는 가족갈등과 임시적인 화해에 대응한다.
* 금지 안내문은 가족 안에서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규칙과 연결된다.
* 관리의 사각지대는 가족이 보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건과 연결된다.
* 사라진 물건의 자국은 떠나거나 죽은 가족의 부재와 연결된다.
* 아파트의 동일한 평면은 가족 구성원에게 배분된 서로 다른 자리와 역할을 드러낸다.
* 반복되는 수리와 청소는 관계가 저절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파트가 건축적 구조라면 가족은 그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정서적·사회적 기반시설이다. 두 시스템은 모두 안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손보고 조정하며 가까스로 유지되는 과정이다.
[21] 최종 의미
가족관계를 다루는 작업의 목적은 가족의 숨은 진실 하나를 폭로하는 데 있지 않다. 가족이 사랑의 공동체이면서 역할과 권력을 배분하는 제도이고, 돌봄의 장소이면서 통제와 상처가 발생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함께 보여주는 데 있다.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족은 서로를 돌보기 위해 무엇을 반복하며, 그 돌봄은 언제 통제로 전환되는가.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감추고 지우며, 지워진 관계는 집 안의 사물과 표면에 어떤 흔적으로 되돌아오는가.
또한 사진은 다음을 물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록한다는 행위는 언제 기억과 애도가 되고, 언제 상대의 삶과 이미지를 소유하는 행위가 되는가.
가족을 찍는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의 얼굴과 표정을 찍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된 행동, 말해지지 않은 규칙, 불균등하게 배분된 노동, 사라진 사람의 자리, 사랑과 상처가 함께 마모시킨 생활의 표면을 찍는 일이다.
가족사진의 동시대적 의미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단순히 파괴하는 데 있지 않다. 가족을 지속시키는 사랑·노동·의존·통제·갈등·애도가 하나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작동하는지를 성급하게 판정하지 않고 감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