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은 말씀에 대한 시로써 히브리어 알파벹 순서대로 지은 시입니다. 그 주제는 말씀입니다. 계명,율례,법도처럼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갈망이 전 장을 통해 표현됩니다.
64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인자하심(חֶסֶד, 헤세드)이란 단어는 구약성경에 끊임없이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공의( צֶדֶק, 체덱)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면 구원의 여망이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긍휼과 자비와 오래 참으심과 선하심이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온 땅에 가득함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게 됩니다. 모든 만물이 그로인해 지어졌고 그를 통하여 구속받고 그의 희생으로 우리는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는 65절과 같이 우리를 선대하셨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가치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대신 감사와 찬양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66절에서 명철과 지식을 가르쳐달라고 하는 기도는 에덴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목적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높아지려는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좀 더 알고싶은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67, 71절은 고난으로 말씀을 여닫습니다. 고난은 당시에는 슬퍼보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말씀을 지키는 재료와 그릇이 됩니다. 결국 고난마저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68절은 고난 당한 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을 행하심을 더욱 알도록 주의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69, 70절은 대조를 사용합니다. 교만한 자는 거짓으로 신실한 자를 해하려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찌고 둔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전심으로 주의 법을 지키며 그 법을 즐거워합니다. 고난은 정련하는 불과 같아서 믿음의 순도를 높이고 하나님을 더욱 찾고 갈망하게 만듭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실감하게 됩니다.
72절에서 하나님의 입의 법은 명예와 번영과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귀함을 알게 된 사람의 탄성과도 같습니다. 바울 역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세상 것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을 세상이 주는 아름다움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가지 시험을 당하실 때, 세상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고 자신에게 절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본 사람은 세상의 부스러기같은 영화를 보지 않게 됩니다.
73절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자각입니다. 나를 만드신 분 창조주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리고 내가 주의 말씀을 깨닫기를 간구합니다. 천국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사람은 그 발걸음이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얻으며 지혜와 깨달음과 간절함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경외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같은 보조로 걸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74절)
75절은 판단(מִשְׁפָט, 미쉬파트)과 의로움( צֶדֶק, 체덱)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חֶסֶד, 헤세드)과 반대되는 뜻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의 판단을 의롭다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실하십니다. 변치않는 사랑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그의 자녀들에게 인자하심이 됩니다.(76절) 그의 인자하심은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77절)
그 분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지혜로 우리를 깨닫게 하사 고난마저도 영혼의 유익이 되게 하시는 그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남은 신앙의 여정을 기쁨으로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