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사람·체제 반대자 ‘낙인’ 두려워 … 정부 비판에 ‘침묵’ | ||||||||||||||||||||||||||||||||||||||||||
창간 24주년 설문조사_ ‘대학구조조정, 교수들의 속마음은?’ | ||||||||||||||||||||||||||||||||||||||||||
| ||||||||||||||||||||||||||||||||||||||||||
취업중심구조조정 ‘대학 미래 어둡다’ 81.4% 정부는 지난해 대학구조개혁 ‘등급평가’에 이어 프라임·코어사업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정원 감축을 동반한 학과통폐합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수년째 대학평가와 연계한 정부재정지원사업 평가정책이 이젠 대학 운영의 전 부문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예고된 ‘포스트 링크사업’도 ‘사회맞춤형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그대로 반영될 전망이다. 대학가에선 평가로 인한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피로감을 넘어 자포자기 하는 상황까지 속출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수십년째 쌓아온 ‘특성화’와 ‘인재상’을 평가지표에 맞춰 바꿔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실정이다. <교수신문> 창간 24주년을 맞아 정부 주도의 대학개혁이 과연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미래 학문의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발전적인 대학개혁이란 무엇인지를 전국의 교수들에게 물었다. 설문 제목을 ‘대학구조조정, 교수들의 속마음은?’으로 뽑은 것도, 대학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수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다. 교수들이 생각하는 대학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ㆍ조사대상: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수 547명(명예교수, 비전임교수 일부 포함) 정부 주도의 취업중심 대학구조조정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교수들이 갑갑증을 넘어 관련 논의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교수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사회(수요)맞춤형 교육’에 기반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장기적으로 학문을 황폐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스스로 ‘입 단속’을 하고 있었다. 이는 교수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어도 전체 교수회의 등 대학 내 공식적인 의사결정과정에서 잇따라 묵살되는가 하면, 오히려 대학 발전을 발목잡는다는 식의 낙인이 찍혀 소속학과가 불이익 당할 것을 우려한 데 따른 것이다. 한편 취업을 목표로 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책에는 대다수 교수들이 반대했지만, 교수가 제자의 진로나 취업을 도와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교수신문> 창간 24주년을 맞아 지난 4월 11일~13일 사흘간 전국 대학교수 5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대학구조조정, 교수들의 속마음은?’을 통해 드러났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전·현직 보직자는 60.1%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대학정책 관련 업무를 주무하고 있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설문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개혁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은 절반이 넘는 62.9%로 집계됐다. ‘적절하다’는 응답은 23.6%에 불과했다. 또 정부 주도의 ‘사회맞춤형·취업 중심’ 대학구조조정이 대학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엔 81.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응답은 7.5%에 그쳤다.
교수들은 ‘대학개혁’이 실패할 경우 학생·학부모(76.4%)가 가장 큰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 반면, 교육부가 피해자로 남을 것이라는 응답은 0.7%에 불과했다. 전임교수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의견도 비교적 낮은 16.8%를 기록했다. 교수들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가 ‘대학개혁 실패’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62.7%가 정부와 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학과 통폐합,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거나 반대의 뜻을 표현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대체로 “말할 기회가 없다”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밖에도 “불이익이 두렵다” “대안이 없다”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는 등의 답변을 내놨다. 교수들이 취업 중심의 대학구조조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을 닫게 된 배경엔 복잡한 상황이 엉켜 있다. 전북 사립대 A교수(사회계열)는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는 풍조가 있고, 의견을 내놓더라도 이전처럼 확산되지 못한다. 특히 언론에서는 기사거리조차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판과 토론에 인색해진 대학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그는 “쓴소리는 ‘잔소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대구 사립대 B교수(자연계열)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이야기 할 기회도 없다. 그저 말없이 (정부와 대학의 의사결정을) 따라가는 분위기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전북 사립대 C교수(사회계열)도 “일단 소통의 창구가 없고, (대학구조조정이) 매우 일방적이면서도 강제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반대 의사표명을 공식적으로 할 방법이 없으며, 개인 일탈 행동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대전 국공립대 D교수(자연계열)는 “교육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체제 반대자’로 낙인 찍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침묵을 택했다. 반면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개혁’이라는 획기적인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선 일부 희생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E교수(사회계열)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다른 대안적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라며“정부의 개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남 사립대 F교수(인문계열)도 “복수의 캠퍼스를 둬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은 대학이나, 유사 프로그램 혹은 학과가 중복된 대학, 생계형 사립대, 회계부정·인사비리 등 현존하는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은 불가피하다”며 광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제자의 취업은 교수의 책임 76.6% 대학에서 교육·연구라는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반감과는 별개로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취업난에는 적극성을 보였다. 응답자의 76.6%가 ‘교수는 제자의 취·창업을 도와야 한다’고 답했다. 교수들은 대체로 취업 관련분야 전문지식을 전달하거나 진로탐색을 돕는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기업체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주선해줬다는 교수들도 다수 나왔다. 취업 지원에 대한 교수들의 인식이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점도 눈에 띈다. 서울 사립대 시간강사 G씨(인문계열)는 “(교수가) 직접 일자리를 알아보든, 취업할 수 있는 안목이나 기술을 전수하든 교수가 제자의 취업을 돕는 건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광주 사립대 H교수(사회계열)는 “대학교육에서 취업이 전부는 아니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이 취업을 원하는데 교수의 전공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며 “교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교과과정에 반영해 실용성 있는 과목을 만들고 취·창업에 도움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교수들도 취업률을 지표로 삼아 대학과 교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취업률이 평가지표가 되면 교육적 의도에서 벗어난 과열경쟁이 초래될 것을 우려해서다. 서울 사립대 I교수(인문계열)는 최근 경력개발 지도교수 등을 맡아 취업설명회를 기획하고 선후배를 연결해주는 등 취업멘토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졸업생들의 취업을 돕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하지만 교수의 본분은 연구와 교육”이라며 “교수가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취업을 중개하는 역할을 제1의 업무로 삼을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수들은 제자들을 위한 취업지원 활동이 의도치 않게 ‘부정 청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경남 사립대 J교수(예체능계열)는 “취·창업을 평가기준으로 삼다보니, 지인을 통하거나 알고 지내던 기업체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취업 알선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교수는 취업 청탁이라는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고 털어놨다.
온라인에 강의 공개할 수 있다 67.8% 대학개혁의 새로운 바람 가운데 가장 가시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온라인 강의공개’다. 그간 정부는 이러닝(e-Learning),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등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지만, 교수들은 저작권·초상권, 교육 효과 등을 이유로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교수들의 인식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강의를 온라인에 공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공개할 수 있다는 67.8%, 공개할 수 없다는 32.2%로 집계됐다. 온라인에 강의를 공개하겠다는 이유로는 “강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지식과 정보의 공유는 시대의 흐름” “교육 수요자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강의 공개를 통해 전공에 대한 흥미 유발, 학문 지속 발전 가능” “사회 환원, 평생교육 기여”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단순히 녹화분을 공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강의실에서처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싶다는 응답도 다수 나왔다. 반면 공개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는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 “제대로 만들 시간과 재정 투자 여력이 없다” “강의 노하우 유출 우려” “학생 사생활 침해” 등이 주로 나왔지만, 법적·기술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도 주를 이뤘다. 이처럼 교수들도 변화의 바람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대다수 교수들은 대학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엔 공감했지만, 정원을 줄이고 학과를 통폐합하는 식의 ‘구조조정’이 ‘대학개혁’으로 통용되는 현실에는 반대 입장을 뚜렷이 했다. D교수의 말은 곱씹을 만하다. “구조개혁을 목표로 수립한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이 지난 수십년 동안 간과해 왔거나 할 수 없었던 분야를 가능하게 한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인 강의의 질 제고와 실험·실습 기자재 수준 향상 등 수업의 개선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을 집행할 때마다 대학 내에는 LINC, ACE 등 새로운 사업단이 만들어지고 교수와 직원이 ‘잡무’에 시달린다. 임시직 직원만 증가하고 있다. 교육에 관한 사업은 교무처, 학생에 관한 사업은 학생처, 산학협력은 산학협력단이 맡는 구조로 사업이 추진됐다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설문조사에 쏟아진 말, 말, 말 대학구조조정, 정부가 주도하면 안된다 “대학교육을 교육부에서 좌지우지 하는 것은 큰 병폐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으로 대학을 망치고 있다. 프라임, 코어사업 등 내부를 들여다보면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 정말 한심하다. 대학이 모두 재정지원에 매몰돼 있고,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가 없다. 교육부 주도의 개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만약 교육부가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한다면, 주어진 지표에 맞춰 제출된 계획을 평가하기 보단 대학이 각자 특성에 맞게 계획서를 제출해서 평가를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 할 것이다.” “2000년 이전부터 정부(교육부)에서 대학 입학정원과 고졸 학생 수의 균형을 고려했더라면, 대학의 수가 200여개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대학인가를 조절했어야 했다. 이제와서 교육부는 고졸 학생 수에 비해 대학 입학정원이 부족하다며 대학구조개혁을 들고 나오고 있다. 교육부 정책 입안자들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자들이다. 이들은 대학구조조정이나 개입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학령인구 감소, 고전적 대학교육의 필요성 쇄퇴 등으로 인해 상당수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 과감한 통폐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구조조정정책은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정책이다. 사업을 통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으니 모든 대학들이 자신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따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문서 실적(paper work)이 많아지면서 학생교육은 더 소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속가능성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업에 선정되기만 하면 없던 학생들이 마구 지원하게 되고, 취·창업이 이뤄진단 말인가? 제발 아까운 혈세 그만 낭비하고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면 한다.”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에서 ‘우수등급’을 받기 위해 대학운영진에서 과도한 업무부담을 교수에게 부여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강의의 질 저하와 학생과 긴밀한 대화와 밀착지도 시간을 빼앗게 돼 결국엔 전체적인 대학교육의 질 저하로 연결된다. (구조조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교수 본연의 업무인 강의와 연구에 집중할 수 없어 대학은 ‘행정단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을 위해 지원금을 ‘미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실제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성과가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지만 학교, 교수, 학생 누구도 그 혜택을 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죽고 살거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비중을 조정하는 방법을 마련하거나, 사립대를 공립화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으면 한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학 입학생 수가 앞으로 수년 사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 명확한데 구조조정을 위한 정원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회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 학교 운영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이 많은 상황에서 학생 수 감소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클 것이다. 여기에 학생 수 감소는 지방대부터 영향을 끼칠 것이므로, 교육부가 주도해서 지방대 피해를 감소시키는 방안을 만들어 내야한다.” “비리·부실대학을 우선, 지속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이런 곳은 무늬만 고등교육기관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대학평가를 꼼꼼하게 해야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검게 썩은 대학들이 지난해 ‘B등급’을 받기도 했다. 제대로 평가한 것인가? “각 대학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기본 취지에 맞게끔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편의주의로 오히려 구조조정을 이용하려고 한다. 자체적으로 상황파악이 잘 안 되면 외부 컨설팅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으로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동의를 받아서 구조조정을 시도해야 한다.” “대학개혁은 꼭 필요하다. 취직도 못하는 대학생을 왜 만들어 내며 자기(교수)의 밥줄을 위해 그리고 학문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앞길이 만리 같은 학생들에게 직장을 못잡아주는 교수는 철퇴를 맞아야 한다. 대학개혁은 더욱 더 강도 높게 이뤄져야 한다.” “대학의 구조개혁은 대학에 맡겨두면 자율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학이 개혁을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