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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댓가_아합왕 후손들의 최후
열왕기하 8:25-29, 9:26-27
8:25. 여호람의 아들 아하지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의 일이었다.
26. 아하지야는 이십이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리야였다.
27. 그는 아합 가문과 혼인하다 보니, 아합 가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28.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시리아 왕 하자엘을 맞아 싸우려고 라못길르앗으로 갔다. 그런데 시리아 군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혔다.
29. 요람 왕은 라못에서 시리아 왕 하자엘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즈르엘로 돌아왔다.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지야가 이즈르엘로 가서 아합의 아들 요람을 문병하였다.
9:26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는 지난날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바로 이 밭에서 원수를 갚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하시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는 요람의 시체를 끌어내어 그 곳에 던졌다. 이렇게 야훼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27. 유다 왕 아하지야는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벳하깐 길로 도망쳤다. 예후는 그의 뒤를 추적하며 "저놈도 쳐죽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아하지야는 병거를 타고 이블르암 근처의 고갯길을 달리다가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고 므기또로 도망하였으나 거기에서 죽었다.
북 이스라엘의 쇠퇴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왕은 아합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합은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한 오므리왕의 아들로 우상 숭배와 폭정, 부정과 부패로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정국이 불안정한 틈을 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오므리는 4년간에 걸친 시므리와의 내전에서 승기를 잡고, 보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군주 국가를 만들어 나갑니다(열왕기상 16:21~23). 그는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화려한 상아궁을 지었습니다(열왕기상 16:24, 22:39). 또 페니키아, 다마스쿠스 및 유다와 군사동맹을 맺고 왕성한 무역 활동을 개시하였죠. 모압을 정복하고 봉신국으로 삼았습니다(cf. 열왕기하 3:4). 오므리 왕은 타국에서도 '오므리 왕국'으로 부를 정도로 그 위세를 떨쳤지만 오랜 전쟁과 백성에 대한 수탈로 왕국 내부의 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오므리의 뒤를 이은 아합왕은 극도로 사치와 방탕을 즐깁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38km 떨어진 휴양지 이스르엘에 상아로 만든 별궁을 짓고 화려한 생활을 하였으며(열왕기상 22:39), 시돈 사람의 왕 옛 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열왕기상 16:31),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자기 백성을 죽이는 죄를 범합니다(열왕기상 21:1~16).
하지만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 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전역에 바알 신당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고 수많은 사제를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러한 오므리 왕가의 정치와 경제 종교 정책은 당시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습니다(열왕기상 17장∼19장). 엘리야는 아합왕의 범죄 때문에 비가 3년 6개월 동안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했고, 급기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사제들과의 대결을 벌입니다(열왕기상 18:19). 1대 850명의 대결이지만 엘리야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로 제물을 태움으로 승리를 하게 되고,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바알과 아세라 사제 850명은 죽임을 당하게 되죠. 갈멜산 대결 후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셔서 3년 반의 가뭄은 끝나게 됩니다.
아합 가문은 그들이 저지른 사치와 학정, 우상 숭배로 멸망 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죠.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뒤 엘리야는 아합 가문의 멸절을 선언합니다. 엘리야의 저주는 아합과 이세벨 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도 철저히 망하리라는 것이었죠. 하느님께서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열왕기상 21: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바알과 아세라 신앙은 남유다로도 번지게 됩니다. 아합 가문이 유다 왕가와 정략결혼을 추진한 탓입니다.
아합왕이 죽자 북이스라엘 왕이 된 아들 아하시야는 시리아 왕국에 맞서기 위해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전략적 동맹을 맺습니다. 아하시야는 남북 동맹조약을 강화하기 위해 누이 아달랴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Jehoram)에게 시집보내죠.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공주는 남편 여호람이 왕이 되면서 왕비가 됩니다.
아달랴와 그녀의 아버지 아합, 어머니 이세벨은 야훼를 따르지 않고 이교도의 신 바알(Baal)을 추종했습니다. 아합왕 시대 이스라엘은 바알 신전과 아세라(Asherah) 목상으로 넘쳐났습니다.
북왕국의 아하시야는 2년간 통치한 후에 병으로 죽고 그의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은 여호람이라는 동명이인의 왕이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북의 여호람 왕은 요람(Joram)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남유다 왕 여호람 보다 1년여를 더 살지만 남유다 여호람왕의 뒤를 이은 아하시야와 함께 예후에게 죽음을 당하죠.
남유다 왕국의 여호람 왕은 에돔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지병으로 8년 만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북의 아하시아의 외조카)가 왕위에 오르게 되죠.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남북동맹을 추진하였던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의 누이인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아들인 유다왕 아하시야에게 바알 신앙을 가르쳤고 전파한 사람입니다(역대하 22:3).
B.C 841년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서 이세벨과 아달랴 모녀가 모두 대비로 군림하는 상황이 벌어지죠. 이스라엘엔 이세벨의 아들 요하람이, 유다에선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었는데, 두 여인은 아들을 통해 양국을 바알 신앙으로 물들이려 했습니다.
이 시기 북이스라엘에서는 오므리 왕조에 대한 반감이 계속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이 저항 운동은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가 이끌었죠. 그는 잘못된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면서 '선지자 집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열왕기하 2:3). 당시의 선지자 집단은 열렬한 애국자들로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중들 속에 뿌리 박고, 야훼의 언약과 율법에 비추어 왕과 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야훼 종교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북왕국의 대장군 예후(Jehu)에게 기름 부어 역성혁명을 부추깁니다.
엘리샤의 지시를 받은 선지자 수련생들은 예후를 찾아가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고 전하고, 그의 머리에 왕위를 상징하는 기름을 붓습니다. 예후는 야훼 종교의 지지를 얻어 장군들을 규합합니다(열왕기하 9:1~12).
그러던 와중, 예후는 한꺼번에 남과 북의 두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포착하죠. 당시 이스라엘의 여호람(요람) 왕은 시리아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아합의 별궁이 있는 이스르엘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도 숙부인 여호람 왕을 문병하러 이스르엘에 와 있었습니다.
남유다 아하시야는 엉겁결에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여호람은 많은 왕자들을 두었는데 아하시야는 막내였습니다.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아하시야가 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를 쑥밭으로 만든 아라비아 군대의 침략 때 형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니 유일하게 남은 왕자인 아하시야를 다음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죠(대하 22:1).
42세에 왕위에 올라 1년 만에 죽임을 당한 아하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에는 어머니 아달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사십이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일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오므리의 손녀로서 이름은 아달랴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그릇된 의견을 따르다 보니 그도 아합 가문의 전철을 밟게 되었고, 아합 가문처럼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부왕이 죽은 뒤에 그들의 의견을 따르다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만 것이다(대하 22:2-4)”.
어머니 아달랴는 절대적 영향력으로 아들 아하시야를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여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죠.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을 타락시켜 하나님을 떠나게 하더니 이제는 아들 까지 타락시키는 악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예후의 군대가 이스르엘에 머무르고 있는 두 왕의 군대를 칩니다. 예후가 쏜 화살은 여호람 왕의 가슴을 꿰뚫었고, 왕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함께 있던 유다왕 아하시야는 도주합니다. 예후의 부하들은 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추격해 죽여버립니다.
남과 북의 두 왕을 동시에 처단한 예후는 잇달아 바알신 추종자들을 처단합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여호람 왕의 어머니 이세벨을 응징하죠. 이세벨은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예후는 말발굽으로 그녀를 밟아 죽입니다.
또한 예후는 아합왕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남유다의 아하시아 왕의 친족들도 대량으로 학살하죠.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었습니다.
예후는 이어 바알 신도자들의 집회를 연다는 명분으로 신도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무자비하게 처형합니다. 그리곤 바알 신전과 아세라 우상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죠. 예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제10대 왕이 됩니다.
이때 남유다 왕국에선 아달랴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여왕에 오릅니다. 아달랴는 자기 남편인 여호람의 왕족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알신앙을 거부한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돌렸습니다.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로, 조카를 남편이 지키는 성전에서 보호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왕국 유다를 통치한 아달랴는(대하 22-23장) 여왕으로 6년간(B.C. 841-835년) 집권합니다. 아달랴라는 이름은 야훼는 위대하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그녀의 집권기에 유다 왕국에서는 야훼신앙이 배제되고 바알 신앙은 철저히 보호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을 배반한 아달랴는 즉위 7년째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살해됩니다(왕하 11:4-16). 성경에서는 아달랴를 이세벨과 함께 ‘악한 여인’이라 불렀습니다(대하 24:7).
손바닥에 '王'자를 새기며 대통령을 꿈꾸었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지도 벌써 40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피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윤석열은 감옥에 있어야할 자들로 내각 꾸리고, 검사 출신들을 각종 요직에 임명하였습니다. 법무장관 한동훈을 행동대장으로 하는 검찰공화국을 건설한 것이죠.
윤 대통령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에는 소위 본부장 비리, 즉 본인과 부인 김건희, 장모 최은순의 산더미 같은 비리 의혹을 감추고 심판을 피하기 위한 절박함 때문일 것입니다.
열린공감TV가 올해 2월 23일 자로 밝힌 본부장 비리 의혹은 무려 169개에 달합니다. 열린공감TV는 본부장 비리는 죄질도 아주 나쁘고 신빙성이나 비리의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 매체가 꼽은 대표적인 비리 의혹은 기득권에 대한 검찰의 각종 특혜(봐주기),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장모의 부동산 인허가 비리 등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 비리 의혹들은 검찰이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었던 거죠.
윤 대통령은 본부장 범죄를 덮기 위해서 거기에 대항하는 세력을 아주 강경하게 제압하려 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에서 보듯 그러한 기도는 현명한 우리 백성들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황제 놀이에 취해 나라와 민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국민들이 우려하는 일을 골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윤석열 내외는 축구 관람, 백화점 쇼핑, 빵집 나들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나라가 전쟁의 먹구름에 싸여도, OECD 38개국 물가가 4월 평균 9.2%를 넘어서며 위기를 경고해도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자신은 책임도 없고 상관도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가 믿는 것은 사악한 무당들과 부인과 장모, 그리고 자신과 인연이 있는 최측근검찰들 뿐입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나 올렸고 다음 달에도 0.75%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 세계는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빠졌습니다.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은행도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7%를 넘기고 있는데 다시 금리가 오르면 영끌 대출한 서민들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16일 감세와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친기업, 친재벌 경제를 천명했습니다.
지난 5월 우리 소비자 물가는 5.4% 올랐습니다. 6월에는 6%, 7월에는 7%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불어 닥친 경제난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들입니다. 윤 정부의 경제정책은 복지 축소와 양극화 심화로 치달을 것입니다. 서민들의 생활이 피폐화 되고, 국민들이 죽어 나가도 나 몰라라 하는 윤 정부가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는 아합의 후손들이 어떻게 철저히 망했는지 오늘 열왕기서를 통해 똑똑이 보았습니다. 민족의 주체성을 잃고 이방 나라의 우상을 숭배하였던 아합 가문, 그리고 후손들의 최후는 이리도 비참하였던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북왕국의 아하시야와 여호람 왕, 남왕국의 아달랴와 아하시야 왕의 비참한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지은 죄의 댓가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의 후손들과 그들을 추종했던 무리들 모두 같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사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윤 정부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 거부한다면 준엄한 하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역시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명심하고 제대로 된 세상을 꿈꾸며 일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협박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선지자들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결단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돌보심과 능력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2.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