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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칼 포퍼의 생애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1902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엔나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업을 개업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포퍼는 완전히 지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라기보다는 오히려 학자였다. 특히 철학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그의 서재에는 플라톤에서부터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칸트를 위시하여 밀, 니체, 다윈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전적 철학서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엥겔스,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등의 저서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포퍼는 이런 저서들을 탐독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포퍼는 매우 조숙한 천재였다. 그는 이미 8세경에 언어 사용의 잘못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수수께기가 아닌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있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무한(無限)의 문제였다. 그 후 본질주의와 귀납논리의 문제 등이 그의 철학적 탐구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포퍼는 1919년에서 1928년에 걸쳐 비엔나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 등을 전공하면서 수학했고, 1928년 <사유 심리학의 방법론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사상적 형성과 발전은 비엔나 학단(Viena Circle)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비엔나 학단이 한창 활동을 전개하던 1920년대를 거의 이 학단의 본거지인 비엔나대학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이 학단의 핵심인물인 슐릭(M. Schlick)으로부터 직접 배웠고, 카르납(Carnap), 바이스만(Waismann), 멩거(Menger), 괴델(Godel) 등과도 개인적인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그는 이 학단에 직접 가입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가 흄(Hume)의 전통에 서는 비엔나 학단의 경험이론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지식의 합리적 구성이론을 통해 경험론의 한계를 밝힌 칸트의 입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과학철학이었다. 1934년에 그는 그의 처녀작이자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시킨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를 출간했다. 이 덕분에 1935년부터 1936년에 걸쳐 영국의 여러 대학에 초빙되어 강의를 하게 되었고, 1937년에는 뉴질랜드의 캔터베리(Canterbury)대학에 철학 강사로 초빙되었으며 얼마 있다가 그곳에서 철학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뉴질랜드 이민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합병과 유태인 박해 때문이기도 했다. 2차대전 후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대학 교수로서 논리학과 과학 방법론을 강의해 오다가 1969년 퇴직했다. 80세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의 저서 활동을 펼쳤다.
포퍼는 과학철학자로서 특이하다 할 만큼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민감했고, 이 방면에 있어서도 커다란 사상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의 사회철학에 있어서도 커다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은 아마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그의 아버지 영향과 1차 대전 말기부터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을 휩쓴 공산주의 혁명 및 이에 대항하는 파시즘의 등장 등으로 극히 혼란했던 상황 속에서 그가 성장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는 한때 사회주의 중등학생 연맹(sozialistische Mittelschuler)의 열성적인 회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 갖는 비인간성에 환멸을 느끼고 진보적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자가 된다. 그이 사회철학을 대변하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술된 것이다.
2. 포퍼 사상의 주요개념
(1) 반증주의 과학관
포퍼는 ‘열린사회’를 주창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일생동안 가장 많은 학문적 에너지를 쏟은 분야는 과학철학이다. 그는 쿤과 더불어 현대 과학철학을 주도한 위대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실 그의 사회철학은 자신의 독창적 과학철학의 기본원리를 그대로 사회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내가 잘못이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철학적 대상으로 삼았다. 과학적 지식이 경험을 통해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성장하듯이 사회는 시민과 언론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발전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나눌 수 있는 ‘구획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그는 한 이론이 거짓으로 밝혀질 수 있는 가능성, 곧 반증가능성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과학이론임을 자처하는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는 달리 비과학적인 이론이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반증주의라는 과학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나아가 그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귀납의 문제를 해소하면서 반귀납주의 과학관을 발전시켰다. 그의 과학관은 『탐구의 논리』(1934)에 잘 나타나 있다.
반증주의 과학관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의해 과학이론을 생산하며 일단 과학이론이 생산되면 그 이론은 세계의 존재방식에 의해 엄격한 테스트를 받는다. 테스트 결과 결함이 발견되면 그 이론은 폐기되고, 결함이 발견되지 않은 이론은 살아남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학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위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다만 비판적인 논의를 통해 점점 더 진리에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 사회는 비판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과학자 사회를 사회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열린사회가 된다.
열린사회란 국가가 제공하는 상호보호의 틀 안에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체이다. 이 사회에서 개인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 국가가 개인의 생활을 완전히 규제한ㄴ 집단주의적인 사회가 곧 닫힌 사회이다. 열린사회에서는 비판과 토론이 보장되고 정부의 정책은 그것을 통해 수정된다.
(2) 점진적 사회공학
포퍼는 완전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사회에 대한 꿈을 버리고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이라 부른다. 그는 비판적 이성의 힘을 신뢰했기 때문에 20세기에 자행된 참상과 비인간적인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이 땅에서 비참함과 폭력을 줄이고 자유를 신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편 포퍼는 이러한 비판적 방법을 적용하여 열린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에 의하면 비판을 허용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한 사회사 합리적인 사회이며, 열린사회라는 것이다. 비판과 토론의 방법은 폭력이 아닌 이성을 통해서 우리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사회철학은 포퍼가 나치를 피해서 뉴질랜드로 망명했던 시절(1937-1946)에 출간한《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역사주의의 빈곤》(1975)에 담겨 있다. 그러나 포퍼가 교조적 맑스주의나 나치즘, 그 밖의 갖가지 전체주의의 공통적인 특징인 역사법칙주의에 대한 비판적 작업에 착수한 것은 파시즘과 코뮤니즘의 인기가 상승하던 1930년 무렵부터였다. 포퍼가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두 저서 덕분이었다. 마침내 그는 1946년 런던대학교 정치경제학부의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교수로 초빙되었고, 은퇴하면서 명예교수로 거기에 머물렀다. 그의 《탐구의 논리》는 1959년《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25년 만에 새로 출판되었다.
(3) 세 세계 이론
포퍼의 철학적 삶의 후반부는 상대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와 대결로서 전개된다. 1962년 출간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포퍼의 반증주의 과학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했고, 이에 자극받은 상대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 입장들이 재등장하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72년《객관적 지식》이 출간된 이래, 포퍼는 자신의 객관주의를 존재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 세계 이론’이다. 포퍼에 의하면 이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세 개의 하부세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제1 세계는 물질세계, 제2세계는 인간의 심리적 의식경험의 세계, 제3세계는 제2세계의 산물로서 인식의 도구인 언어로 표현된 세계, 즉 명제 ‧ 이론 ‧ 논증의 세계이다. 이 3가지 세계는 서로 동등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령 제1세계와 제3세계는 제2세계를 통해서 접촉한다. 그리고 이 세계들 중에서 제3세계는 비판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세계로서 자율적인 세계이다. 불완전한 지식을 포함하는 영역인 이 제3세계는 열려 있다는 기본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지식의 진보를 가져온다. 이 세계이론은 객관적 인식의 가능성을 뒷받침할 존재론적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추구를 더 잘 설명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포퍼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결합을 추구한 것이다.
(4) 비판적 합리주의
포퍼는 그의 전 생애를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는 이름으로 집약되는 합리적 방법과 그것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 바쳤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합리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신뢰하며, 비판적 논증에 귀를 기울이고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이다. 둘째, 오류가능주의이다. 우리는 이성을 갖고 있지만 이성은 완벽하지 않으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인간의 오류가능성 즉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자는 생각이다. 셋째, 상호비판주의이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성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상호간에 비판을 허용하자는 생각이다. 나의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상대방의 나에 대한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 따라서 진리발견은 우리 모두의 공동 작업이며,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퍼는 한 사람의 진리독점을 거부하며 독단주의를 경계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판적 합리주의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포퍼는 과학의 합리성의 근거를 비판과 토론에서 가져옴으로써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에 대한 대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이 적용되는 사회가 열린사회요, 바람직스러운 사회이다. 그는 1994년 작고할 때까지 이러한 방법론을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실천했다. 비트겐슈타인과의 논쟁은 물론이고,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에 참가한 일, 아도르노의 독일 사회학의 실증주의 논쟁, ‘혁명이냐 개혁이냐’라는 주제를 놓고 벌어진 마르쿠제와의 논쟁, 말년에 있었던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관한 쿤과의 논쟁 등 그가 보여준 것은 결코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자세이며, 현실에 바탕을 두고 철학을 하는 태도였다.
3.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는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1943년에 집필을 끝냈으며, 1945년 두 권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는 ‘열린사회’이며, 열린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은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주장한다. 문제 많은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과연 우리는 건전한 사회에서 살 수 없는 것일까?”라는 바람을 갖게 된다. 또한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바람직한 사회는 사회제도가 중요한가, 구성원인 사람이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포퍼는《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우리의 이러한 바람과 의문과 물음에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포퍼 자신도 사춘기에 기성사회에 불만을 갖고 개혁하고자 정치와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청년이었다.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둘째, “바람직한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포퍼의 철학은 ‘비판적 합리주의’로 대표된다. 포퍼에 의하면 플라톤의 유토피아주의는 비타협적 급진주의로 규정된다. “이것은 하나라도 그대로 두지 않고 사회 전체를 개혁하고자 하는 완벽한 시도이며, 사회 속에 어떤 질서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면 사회악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야 하며, 이에 위배되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야 된다는 확신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비타협적 급진주의일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 완벽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이며, 현실 속에서 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이다. 이런 극단적인 급진주의는 지금보다 좀 더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함이 전혀 없는 세계, 낡은 쪼가리들이 이리저리 붙은 지저분한 옷이 아니라 말짱한 새 옷, 즉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인 탐미주의와 관련이 있다.
유토피아주의는 몇 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전체로서의 사회의 청사진을 이용하여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시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를 요구하므로 독재체제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둘째, 유토피아주의의 다른 난점은 독재자의 후계자 문제이다. 유토피아적 과업은 보통 한 사회공학자나 공학자 집단의 당대에 완수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완수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이념을 계승할 후계자들이 잘 선정해야 한다. 그런 그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이다.
포퍼는 학문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방법은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선에 대한 합의는 어렵지만 구체적인 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는 쉽고 명백하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악의 제거는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악을 먼 장래의 유토피아 건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거하려고 하면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외시하게 되고, 환상적인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세대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포퍼는 합리적인 철학자이다. 이 점은 그의 이성에 대한 견해에서도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이성은 상호비판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므로 이성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호비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개발하는 일이다. “참된 합리주의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자기가 얼마나 오류를 범하는가를 아는 지적 겸손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이성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논증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이전보다 더 분명히 보게 해주는 배움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논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포퍼가 이 책을 쓴 의도는 위대한 사상가를 헐뜯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의도는 우리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위대한 인물에 맹종하는 습관을 타파해야 한다는 나의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중략… 우리가 명백히 우리의 이런 유산의 중요한 부분인 이것들에 대한 솔직한 비판을 주저한다면 이런 비극적이고 거의 치명적인 분열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그중 몇 가지에 관해 비판하기를 꺼려해서 그들 전부를 파괴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적 혼란과 전체주의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방에서 자신의 존재근거를 찾는 ‘적대적 공존’ 관계에 있다. 전체주의가 사회적 혼란을 빌미로 등장하듯이 사회적 무질서가 전체주의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최근 학자들 사이에 전체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정치 ‧ 경제 ‧ 사회개혁을 둘러싼 사회세력들 사이의 갈등이 점차 커지고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다소 지지부진하면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가 나타날 수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증을 담은 대표적 저작이 바로 이 책,《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다.
이 책은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전체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폭로하고 있는 현대철학의 고전이다. 이 책은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나 정치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지식이란 일정한 법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새로운 창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은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반증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포퍼의 생각이다. 또 통상적인 상식과 달리 이 같은 반증이 가능할 때에만 진리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에서 먼 과거로부터 모든 사물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정해져있다는 형이상학적인 결론이나 역사법칙론은 절대적 진리를 가정한 독단론으로,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포퍼(Karl R. Popper)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포퍼의 삶,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집필 시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1938년 3월에서 1943년 사이에 쓰여졌는데, 포퍼에 따르면 1938년 3월은 히틀러가 조국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며 대체로 전쟁의 결과가 불확실한 우울한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가 파시즘(fascism)을 직접 비판하지 않고 맑스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파시즘이 몰락해가는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맑스주의가 주요한 문제로 등장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맑스주의에 대한 포퍼의 관심은 맑스의 인도주의적 의도와 경탄할 만한 사회학적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가 열린사회의 대체 이념으로, 즉 닫힌 사회를 대표하는 이론으로 자리매김 되는 이유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개략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맑스주의가 여러 장점, 즉 강한 도덕적 동기와 더불어 합리주의, 개체주의, 실용주의, 제도 분석 등의 올바른 방법론을 채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태도를 거부하고 역사주의(historicism)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포퍼는 맑스의 이러한 역사주의와 그에 수반하는 자연주의, 본질주의, 주지주의, 나아가 반평등주의, 집단주의, 권위주의 및 종족주의로서 폭력적 전체주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헤겔의 유산이라고 본다. 포퍼에 따르면 이들은 동기마저도 불순한, 즉 부족적 귀족사회나 왕정을 정당화하려는 동기를 지닌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철학자들이다. 결국 포퍼는 맑스주의에서 이러한 유산을 제거하고 방법론적 장점을 살리며, 거기에 자신의 사회공학과 민주주의 이론을 추가하여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변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1943년에 집필을 끝냈으며, 1945년 두 권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는 '열린사회'이며, 열린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은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주장한다.
2. 문제많은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과연 우리는 건전한 사회에서 살 수 없는 것일까?"라는 바람을 갖게 된다. 또한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바람직한 사회는 사회제도가 중요한가, 구성원인 사람이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3.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우리의 이러한 바람과 의문과 물음에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포퍼 자신도 사춘기에 기성사회에 불만을 불만을 갖고 개혁하자 정치와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청년이었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둘째, "바람직한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4. 포퍼의 철학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로 대표된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첫째, 합리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신뢰하며, 비판적 논증에 귀를 기울이고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이다.
(2) 둘째, 오류가능주의이다. 우리는 이성을 갖고 있지만 이성은 완벽하지 않으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인간의 오류가능성 즉 이성의 한계를 인전하자는 생각이다.
(3) 셋째, 상호비판주의이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성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상호간에 비판을 허용하자는 생각이다. 나의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상대방의 나에 대한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 따라서 진리발견은 우리 모두의 공동 작업이며,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퍼는 한 사람의 진리독점을 거부하며 독단주의를 경계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판적 합리주의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1. 열린 사회란 그가 제시하는 참다운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방법론적 개체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
로 서,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
분 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이다.
2. 열린 사회는 개인들의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독자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이다.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첫머리의 상단 인용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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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소크라테스를 열린 사회의 전사로 규정하고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열린 사회를 봉쇄한 사람으로 지목한다.
2. 열린 사회는 합리주의로, 닫힌 사회는 비합리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합리주의란 비판적 태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태도요,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내가 틀리고 당신은 옳을지도 모르며 노력에 의해서 우리는 진리에 보다 가까이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와 같은 태도(자세)가 소크라테스의 대화 속에도 나타나 있다.
3.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잘못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독선과 자기과신이 아니라 남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잘못을 고쳐나갈 줄 아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가 보편화될 때 합리적인 비판이 가능하고 그러한 비판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때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성립된다. 이러한 비판과 토론이 가능한 사회를 열린 사회라 부른다.
4. 열린 사회는 전체주의에 대립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점진주의 사회이다.
5. 포퍼는 열린 사회와 대립되는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권위주의 체제, 전체주의 국가 내지 독재국가는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열린 사회의 이념이 비판적 합리주의라면 닫힌 사회의 이념은 역사주의 또는 유토피아주위이다. 그 전형적인 형태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플라톤의 이상국가이다.
6. 포퍼는 열린 사회를 파괴하는 사상 자체가 열린 사회의 적인데 그 사상은 전체주의, 역사적 법칙주의, 유토피아주의이다. 전체주의란 개인들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 전체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역사적 법칙주의는 사회 전체의 법칙이 존재하며 이런 법칙에 의해서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방향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유토피아 주의란 사회전체를 통제하거나 변혁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이 3가지 사상에 대한 포퍼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 전체의 미명 아래 수많은 개인을 제물로 요구한 정치적 전체주이는 허구요 미신이다. 역사란 이성적 존재자인 우리들 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창조되어 나간다. 혁명이 아닌 작은 조정들의 단게적 누적에 의해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
7. 포퍼는 플라톤이 그토록 장황하게 다룬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나쁘거나 불완전한 지배자들이 지나친 피해를 끼치지 않게끔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꾼다. 포퍼는 최서느이 통치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에 우리의 모든 정치적 노력을 건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8.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게획하면서 미지의 세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