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 ~ 1828, Francisco de Goya)"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그린 "옷 입은 마야"와 "옷 벗은 마야". 이 그림은 알바 공작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야는 46살때 귀머거리가 되었는데 힘든 시기에 알게 된 사랑이 알바 공작 부인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알바공작 집안에서는 헛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인의 무덤을 파헤치는 소동이 있었다. 또 다른 소문은 스페인의 재상이었던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을 그렸다는 얘기도 있다. 고도이는 이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두고 평소에는 "옷 입은 마야"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고 벽을 한바퀴 툭 치면 "옷 벗은 마야"그림이 보이도록 했다고 한다. 고야는 77살의 나이에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망명한다.
※ 스페인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드 고야"는 낭만주의의 선구자이다. 인간의 숨겨진 감정을 그린 낭만주의 선구자 고야의 대표작 "옷 입은 마야"와 "옷 벗은 마야"는 어느 날 알바 공작 부인의 부탁으로 그리게 되는데 알몸의 그림을 완성하려던 그때 부인의 남편이 화실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누드화에 옷을 입혔다. 남편이 돌아간 후 다시 한편의 누드화를 그렸다. 고야는 46살에 귀머거리가 되는 시련을 겪었는데 이 무렵 알게 된 사랑이 미모의 알바 공작 부인이었다고 한다. 한편 알바 공작의 집안에서는 자꾸만 소문이 떠돌자 부인의 무덤을 파해치는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공작 부인의 체형과 골격을 비교해서 그림의 모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스페인 재상이었던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을 그렸다는 소문도 있다. 고도이는 이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 두고 즐겼다고 한다. 보통때는 옷을 입은 장면을 보고 있다가 벽을 한 바퀴 툭 쳐서 돌리면 벗은 장면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814년 그린 "1808년 5월 3일"은 프랑스 식민시절 스페인 사람들의 민중 봉기를 그린 그림으로 프랑스 점령군이 5천 명의 스페인 시민을 학살한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그림이다. 낭만주의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고 강력한 감성을 표현했다. 들라크루아는 쇼팽과 친분이 있어, 폐결핵으로 지중해 마르요카 섬으로 휴양 가 있는 쇼팽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란시스코 드 고야"의 1803년 작품 "옷 입은 마야(Clothed Maja)".
"프란시스코 드 고야"의 1800년 작품 "옷 벗은 마야(Nude Maja)".
"프란시스코 드 고야"의 1801년 작품 스페인 재상 "마누엘 고도이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