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은 혁명이다>에 이어 농촌생활 길잡이가 '도서출판 한살림'에서 다음 달에 나옵니다. 제목은 미정.
그 중 한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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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의 절규!
작년, 첫 벼베기가 있던 날. 벼들의 절규가 들렸다.
바로 어제야. 올해 첫 벼 수확을 했다더군. 그게 무슨 잔칫날이라도 되는지 신문이며 TV에서 떠들썩댔어. 그 사람. 4월에 모를 심었대. 미쳤어. 4월이면 늦서리도 오는데 그때 심었다니 도대체 그럼 언제 우리를 싹 틔우기(침종)한 거지?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그때 팔아먹으려고 일찍 심었대나 뭐래나. 아이고, 내 신세야. 제철을 잊고 산지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네 저 인간들 때문에.
그나저나 우린 이제 완전히 한국 땅에서 사라지는 거 아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에 여자 대통령이 되면 부엌살림을 아니까 쌀이 좀 대접받게 되나 했더니 말짱 도루묵이야. 내년부터는 쌀을 마구잡이로 수입해 들인대. 쌀 관세화를 한다나. 에구.
값싸고 질 좋은 수입쌀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줄 아나 봐. 돈만 있으면 쌀은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다고? 그게 한순간인 걸 모르나 봐. 신기루라는 걸 왜 모를까? 우리가 논에서 살아가는 덕분에 대한민국에 춘천 소양강 다목적댐 스물여덟 개가 거저 생긴다는 걸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자동차 팔고 통신장비 팔고 휴대폰 팔아서 쌀 사 먹는 짓은 소양강 다목적댐을 하나씩 폭파시키는 거야, 이 바보들아. 피 뽑아 팔아서 술 사 먹는 짓이야, 이 얼간이들아.
요즘은 우리에 대한 상시적인 학대, 가혹행위가 도를 넘었어. 고문이야 고문. 우린 알아. 할아버지 대에는 못자리에서 최소한 45일에서 50일을 자랐어. 향긋한 흙냄새를 맡고 짧디 짧은 한낮의 땡볕을 흠뻑 쬐었어. 얼음장 같은 새벽 찬 공기에 온몸을 떨면서도 우리 볍씨들은 야물게 뿌리를 내렸어. 1주일 침종기간 합치고 안방 구들장에 2~3일 촉 틔우기까지 합치면 거의 두 달 만에 모내기를 했어.
요새는 어떤 줄 알아? 단 15일 만에 모내기를 해. 침종, 소독, 최아, 다 합쳐서 보름이야 보름. 끔찍해. 고문이야. 옛날에는 3개월은 자라야 삼계탕을 해 먹던 닭도 지금은 딱 27일 만에 키워 낸다니 우리가 그 꼴이야. 갓 부화한 병아리 40그램짜리가 딱 27일 만에 몸집을 37배나 불려 1.5킬로그램 삼계탕이 된다고 하니 도대체 그게 인간이 할 짓이냐고! 아니지. 인간이니까 그런 짓 하지. 그런 몹쓸 짓 하는 존재가 또 있으면 말해 봐!
우리는 논에 물을 대서 키우는 작물이야. 그런데 9층, 10층 서랍장 같은 컨테이너에 얹혀서 허공에 뜬 채 안개비처럼 뿌려 대는 비료 물을 먹고 키우니 병에 안 걸리겠어? 문고병에 도열병에 백엽고병, 잎집무늬마름병. 비닐하우스 속에 가둬 놓고 햇볕 한 줄기 구경도 못하고 밤낮으로 비료물만 뿌려 대니 온몸에 병을 키우지, 병을 키워.
멸구나 노린재보다도 농약이 더 무서워. 홍명나방이나 이화명충보다 더. 비 오는 날이 얼마 전만 해도 한숨 돌리는 날이었어. 농약을 안 치니까. 이제는 점착제를 섞어 뿌려서 비가 오는 날에도 농약이 안 씻겨 내리고 우리 살 속으로 파고들어. 그러고는 영양제를 뿌려요, 쌀 영글라고. 낟알이 튼튼하고 수확량 많으라고. 완전 억지춘향이야.
다 자란 우릴 불태우는 건 또 뭐야. 정부에서 농정을 잘 못하면 그놈들 모가지를 비틀어야지 왜 애궂은 우리를 화형에 쳐하냐고? 농민회 놈들 얘기야. 쌀은 민족의 생명이니 뭐니 하면서 멀쩡한 나락 논을 갈아엎는 건 무슨 짓이냐고? 농민들이 오죽하면 자식 같은 나락 논을 갈아엎겠느냐고 둘러대지만 우리는 나락이 막 팰락 말락 하는 임신부야 임신부! 인간들은 지하철에도 임신부 자리를 따로 만들어 놨다며?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스팔트 경찰 방패막이 앞에서 쌀을 뿌려 대고 짓밟느냐고! 쌀 개방은 인간들이 하면서.
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농지이용률이 240%였어. 100평 땅을 가지고 1년에 240평 농사를 지었다고. 지금은 105%야. 왜 그런 줄 알아? 논에다가 돈 된다고 포도 심고, 감 심고, 사과 심고, 오미자 심고, 그러니까 농지이용률이 곤두박질친 거야.
잘 기억해. 우리가 죽기 전에 너희들이 먼저 죽을지도 몰라.
- <도서출판 한살림>에서 곧 나올 신간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