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츠키 도자기
정 성 천
나의 아내는 4남 3녀, 7남매 중 막내다. 막내를 아내로 둔 덕에 나는 처남 형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아내보다 두 살 위인 바로 위 오빠는 나와 동갑내기로 중학교 동기이다. 그러니 중학교 동기 친구이자 처가의 형님이 되는 셈이다. 내 나이 50대, 60대 시절에는 부산에 사시는 이 처남 형님들(셋째, 넷째) 덕분에 참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형님들이 6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는 늘그막 세월을 처남, 매부 관계의 남자들끼리만이 느끼는 그 막걸리처럼 컬컬하면서도 걸쭉한 정에 대한 갈증을 항시 느끼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나이 70대에 들어서자 그 갈증을 다소나마 해결해 줄 다른 처남이 나타났다. 처 이종사촌 손 아래 남동생이었다. 나와 7살 연하로 싹싹한 성격에 오랫동안 동네 이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고 처가의 집안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는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게다가 나와 바둑 실력이 비슷하여 만나면 술 한 잔 나누며 바둑 두는 재미 또한 쏠쏠한 처남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얼핏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 처남이 외동아들로 손이 귀한 집안에서 처남댁이 첫아들을 낳아 집안 경사라고 모두가 좋아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운명적인 시련인지 업보인지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아무 이유 없이 자꾸 넘어지는 일이 빈번하더니 병원 진단 결과 자폐증 장애 1급을 받았다는 슬프고도 염려스러운 소식을 접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젊었을 때는 내 살기도 바쁜 시절이었고 삶의 희비 굴곡을 그다지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에 처남과 처남댁의 슬픔과 고통이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한 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처남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와 동갑내기 다른 이종사촌 누님이 가까운 성주에 살고 계시는데 한번 찾아가서 만나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막내인 아내가 철들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대구 이모의 살아있는 유일한 혈육이라며 아내는 기꺼이 승낙하고 나와 함께 성주로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처남이 하는 말이 김천 근교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처남은 우리와 함께 가겠지만 대구에서 손자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처남댁도 그 장소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궁금했다. 자폐 1급 중증 아들을 나이 40세가 될 때까지 시설에 맡기라는 주위의 권고도 뿌리치며 손수 직접 보살펴 왔고 그런 고난의 세월에도 두 딸 자매까지 잘 키워 출가시켜 요즘은 손자들 돌보미 역할까지 잘하고 있다는 처남댁의 실제 모습이 무척 궁금했다.
자식이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남으로써 그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풍비박산 깨져 흩어지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중늙은이가 다 되어 얼굴에 주름살이 역력한 60대 후반 처남에게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그 고통의 세월을 견뎌 왔는가? 처남네도 위기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참회하고 있으나 철없던 젊었을 시절에는 “너와 결혼을 잘못해서 저런 아들을 낳았다.”라고 하며 모든 슬픔과 고통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여러 번 싸우기도 하며 화를 못 이겨 가출하기도 여러 번 했었다. 고 이실직고의 대답을 한다. 아내는 그 어려운 자폐 중증 아들을 40년간 돌보면서도 정수기 외판원으로 경제활동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은 딸 둘 자매까지 키워내 출가시켜 손자들 재롱을 보며 평온하고도 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이 모두가 묵묵히 가정을 지켜 온 아내 덕분이라며 처남은 글썽이는 눈물을 훔친다.
일본 전통 도자기 중에 ‘킨츠키(金継ぎ:금으로 잇는다)’ 라는 도자기 장르가 있다. 일본의 전통 도자기 수리 기법으로, 깨진 도자기를 옻칠에 금·은·백금 가루 등을 섞어 이어 붙여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탄생시키는 공예의 한 기법이다.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금빛 균열이 도자기의 새로운 디자인 요소가 되어 원래보다 더 독창적인 작품으로 변모되기에 어떤 수집가들은 금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균열을 얻고자 아예 일부러 귀한 도자기를 깨뜨렸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질 정도로 ‘킨츠기’의 미학은 일본사람들을 매료시켜 왔다.
처 이종사촌은 성주에서도 조금 떨어진 풍광이 수려한 가천면 소재지에서 딸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촌 간의 반가운 인사말들 속에서도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처남댁 모습에 대한 궁금증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이제 60대 중반을 넘어선 처남댁도 그동안의 힘든 세월로 인한 많은 피폐함으로 그런 늙음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밝게 웃으며 들어서는 처남댁의 그 환한 모습을 대하니 그동안 처남댁이 보냈을‘고통의 세월’은 내 생각 속의 세월이었고 정작 본인인 처남댁에게는 ‘사랑이 숙성되는 아름다운 세월’을 보낸 것만 같았다. 아들의 안부를 물었을 때 잘 지내며“우리 아들의 미소는 천사의 미소예요. 그런 미소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아주 고마운 일이지요.”라고 대답하는 처남댁의 모습에서 나는 ‘킨츠키’도자기를 연상했다.
도자기가 깨지면 버려야 할 쓰레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킨츠키’는 그 균열을 금으로 이어 붙인다. 금빛은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오히려 그 상처가 지나온 시간을 아름다운 성장으로 증명한다. 40년 동안 자폐 1급 맏아들을 돌보아 온 처남 부부의 삶도 그러하다. 그들의 날들은 균열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끝없는 돌봄 속에서 지쳐 쓰러질 듯한 순간,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독,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멈춘 듯한 체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균열마다 서로의 손을 잡고 버텨낸 시간이 금빛처럼 스며들어 그들의 삶은 도자기보다 더 깊은 빛을 품게 되었다.
삶은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자폐아들의 웃음 한 번, 손끝의 작은 반응 하나가 그들에게는 세상 어떤 철학서보다 깊은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철학은 종종 삶의 의미를 묻지만, 처남 부부의 삶은 그 답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깨진 자리를 금으로 이어낸 도자기처럼 그들의 사랑은 상처와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며 단단해졌다. 그들의 삶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낸 삶의 예술이며, 철학 그 자체다.
“눈물 없이는 영혼의 무지개는 뜨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영혼이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화 과정으로 이해된다. 눈물과 고통은 새로운 배움과 성장의 기회이며 이를 통해 영혼은 윤회의 과정에서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첫댓글 '우리 아들의 미소는 천사의 미소' 라는 엄마의 말에서
어머니의 숭고하고 따뜻한 마음을 읽었소.
우리가 미리 예단하는 생각이 더러는 허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오.
지레 늘 봐왔던 상식선에서 단정해서 판단하는 경우가 있거든~~
감동이오. 수작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