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의 구원 사원 / 박정경
상트페테르부르크의 Church of the Savior on Spilled Blood에 도착한 것은 흐린 오후였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운하의 물은 금속처럼 무겁게 빛나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듯한데, 그 속에서 이 성당만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처음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장난처럼 화려한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그 인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화려함이 아니라 집요함에 가까운 무엇이 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성당은 단순히 “예쁘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섯 개의 양파 모양 돔은 각각 다른 색과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고, 금빛과 청록색, 붉은색이 서로 충돌하듯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돌은 어지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된 질서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하나하나의 타일과 모자이크 조각이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조합이 거대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성당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위에 세워진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화려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의지처럼 보였다. 이름 그대로 “피의 구원”이라는 말은 이 장소의 성격을 계속해서 되새기게 만든다. 아름다움과 비극이 동시에 구조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외부의 인상은 한층 더 강해진다. 벽과 천장은 거의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모자이크와 성화로 채워져 있다. 성인들의 얼굴은 조용하지만 표정은 각기 다르다. 어떤 얼굴은 고요하게 내려다보고 있고, 어떤 얼굴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들이 교차하면서 내부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선의 장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그 사이를 지나가는 존재가 된다.
특히 천장 쪽으로 시선을 올리면 공간의 느낌이 완전히 바뀐다. 돔 안쪽을 채운 장면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빛과 색이 결합된 구조물처럼 보인다. 조명이 바뀔 때마다 색감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변화가 성당 전체의 분위기를 미세하게 흔든다. 그래서 내부는 정적이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하는 정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성당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라는 도시 자체도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유럽적인 계획 도시의 질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러시아 제국의 역사와 혁명, 전쟁과 예술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걷다 보면 모든 건물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느껴진다. 피의 구원 사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응축된 형태로 과거를 품고 있는 장소였다.
성당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처음과 같은 풍경인데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운하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걸어 다니고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만 성당 쪽으로 되돌아갔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뒤의 감각처럼, 마음 한쪽에 설명되지 않는 잔상이 남아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것”이라기보다, 이미 익숙했던 감각의 틀을 잠시 흔들어 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피의 구원 사원은 그 흔들림을 가장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공간이었다. 화려함으로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와 감정을 조용히 눌러 담고 있는 장소. 그 이중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