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굵직한 오심 논란이 있었던 이번 대회, 우승팀만큼 관심이 가는 것이 바로 결승전의 심판 배정이었습니다. 지난 독일월드컵에서 개막전과 결승전을 같은 심판이 본 전례가 있었기에 아시아 심판이 볼 것인지도 내심 관심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은 남아공 현지 시각으로 8일 목요일, 결승전은 잉글랜드의 하워드 웹 심판이 맡았습니다.
결승전 주심을 맡은 영국 출신 하워드 웹(가운데)
결승전 유럽 대 유럽의 대진? 유럽심판!
어느 경기이든지 심판배정의 첫 조건은 '대륙 안배'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자기가 속한 대륙 팀의 경기에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양 팀이 모두 자기 대륙의 팀이라면 그 심판은 경기에서 휘슬을 불 수 있다. 이번 결승전이 바로 그 예다.
하워드 웹 심판은 박지성, 이청용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업 심판이다. 1971년 생이며, 심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세에 심판교육을 받아 심판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북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친선경기를 시작으로 국제심판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대 스위스의 G조 예선, 슬로바키아 대 이탈리아의 F조 예선, 브라질 대 칠레의 16강 전 모두 3경기를 소화 했으며 3경기를 통틀어 총 17장(경기당 평균 5.6장)의 경고를 꺼냈다. 퇴장과 페널티킥은 한 건도 없었다. 몸싸움이 많고 템포가 빠른 잉글랜드 축구의 심판답게 국제 경기에서도 거친 몸싸움을 허용하는 스타일이다.
2007년 20세이하 월드컵,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유럽 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등에서 많은 경력을 쌓았으며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8강전 경기를 맡았고 올 해 5월 22일 열린 유럽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인터밀란의 결승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인 정해상 심판의 발자취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유일하게 한국인 심판(부심)으로 참가한 정해상 심판. 보통 다음 라운드 배정에서 배제되는 심판은 고국으로 돌려보내는데, 정해상 심판은 결승 라운드까지 남아공 현지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때문에 국내 심판계에서는 그가 결승전을 볼 수 있는지도 뜨거운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4강에 남미와 유럽 팀이 올라갔기 때문에 대륙 안배에서 전혀 걸리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와 브라질의 8강전에서 2차례나 어려운 오프사이드 반칙을 잡아냈고, 집단 대립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해 큰 대립을 막아 FIFA 심판 위원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결승전이 모두 유럽 팀이 되었고 결국 결승전 심판도 유럽 심판이 맡게 되었다.
역사나 축구에 가정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약에 우루과이가 결승전에 올라갔다면 정해상 심판이 결승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해상 심판은 이번 대회에서 우루과이-프랑스(A조), 파라과이-뉴질랜드(F조), 스페인-온두라스(H조) 의 조별예선 3경기를 포함해 브라질-네덜란드(8강전)까지 총 4경기를 맡았다.
정해상 심판의 경우 다음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연령제한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또 도전할 수 있다. 이때는 다른 나라 주심이 아닌 한국인 주심과 한 팀으로 월드컵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심판배정의 정치학
앞에서도 말했듯 심판 배정에는 다양한 요소가 고려대상이 된다. 대륙안배, 개인의 능력, 대회에서의 심판 개개인의 몸 상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 외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적인 부분도 심판 배정에 작용한다.
심판이 속한 나라의 국력도 고려대상이 되며 축구에서의 위상도 그렇다. FIFA에서는 축구 수준이 높을수록 심판의 수준도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축구 수준이 높다는 것은 그 나라의 축구 저변이 발달해 있다는 반증이며 다양한 팀과 다양한 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수한 심판실력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정해상 심판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뉴질랜드와 아프리카 심판들의 자질이 타 대륙과 견주어 좋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경제력도 이 중 한 부분인데 일본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2002, 2006, 2010년 3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월드컵 주심을 배출했다. 이는 심판 기구의 독립성, 일본축구협회 산하 심판학교(Referee college)를 통한 체계적 육성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FIFA(국제축구연맹)와, AFC(아시아축구연맹)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2002, 2006 2번에 걸쳐 월드컵 후보에만 2번 올랐고 최종 본선무대에는 가지 못했다. 나름으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월드컵 심판에게 가장 필요한 '운'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좋게 작용한 면이 없었다.
이런 착오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대한축구협회 심판국에서도 빠른 시일 안에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주심을 배출하기 위해 올해부터 젊고 유능한 27-30세 미만의 심판들을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빠른 시일 내에 '월드컵 주심'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정리=김형준 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