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뒤가 없지만 우리는 그 뒤를 쫓는다고 말한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물의 속도
이정환
물을 따라잡기에는
항시 역부족이다
장령산 치유의 숲
계곡 따라 내려오면
좇다가 멈추어 서서
호흡 가다듬는다
더는 뒤좇지 말라
바람이 속삭인다
너는 너의 걸음
있지 않느냐 하며
소리쳐 흐르는 물이
물보라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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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있다. 마라톤에서 특정 선수의 기록을 위해 일정 거리까지 계획한 ‘속도’로 같이 달려주고 빠지는 선수다. 우리의 삶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 속도감이 없이 살다 오버페이스하고 호흡이 거치러 진다. 시인은 물에 ‘속도’를 얹혀두고 거기에 달려드는 인간에게 “체급” 차이를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노자는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라고 설파했다. 단단하고 큰 나뭇가지가 많은 눈이 쌓여 부러졌지만 얇고 부드러운 나뭇가지는 눈이 쌓이지 않아 부러지지 않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데 물만큼 부드러운 것이 또 있을까? 거기에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움켜쥐려 하고 삶 속 긴장으로 심신이 굳은 인간이 ‘물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령산 금천계곡 큰 물소리에 홀린 듯이 물의 보폭에 맞춰 따라 내려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미지가 선하다. 마치 멀리 있는 태산이 몸속의 욕망과 오판에 사로잡혀 눈앞에 보여 금방 닿을 수 있을 것이란 만만한 생각에 그 “거리”를 몰라보는 것과 같다. 살다 보면 좇다가 멈추어 서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시인이 말하는 ‘물의 속도’에 맞서려고 세상 수없이 많은 신기루 같은 “물질”, “명예”, “부”라는 닿을 듯 말 듯 앞서만 가는 그것들의 등 뒤에서 수도 없이 ‘좇다가’ 호흡이 거치러 지는 일이 데자뷔처럼 어른거리기도 한다.
바람도 그림자가 있다. 우리는 그 그림자를 늘 밟으며 살면서도 바람은 “기척” 없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생각도 단단하고 욕망도 단단한 우리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상비약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너는 너의 걸음 있지 않느냐’는 물의 부드러운 혀에서 나오는 이 말은 이 작품의 가장 부드러운 시구다. 이 표현만 뽑아내도 그대로 하나의 시다. 부드러운 시다. 물 같은 구절이며 이 작품의 9할이다. 그러고도 ‘소리쳐 흐르는 물’은 ‘물보라’로 저를 분간 못 하게 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또 그렇게 흘러간다.
물은 뒤가 없지만 우리는 그 뒤를 쫓는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