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크닉 신영호 강사입니다.
왜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의 치유는 위험한가?
환언하면, 영혼이 정화되고 밝고 맑은 상태에서만 내담자를 치유하고 힐링해 주어야 합니다.
본 아티클에서는 그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치유와 에너지 힐링은
‘에너지를 준다’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의식 구조를 상대의 의식 구조와 접속시키는 행위입니다.
Connecting with Client's Souls... 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힐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힐러가 어떤 상태이냐가 그대로 전달됩니다.
힐러의 고급 미세신들과 기문진이 내담자(Client)에게 접속되고 영향을 줍니다.
힐러의 상태와 에너지 기문진이 내담자(클라이언트)에게 투영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신의 영혼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자아가 분열되어 있거나
미해결 트라우마가 활성화되어 있거나
욕망, 인정욕, 구원자 콤플렉스가 개입된 상태 등등을 뜻합니다.
이 상태에서 치유를 하면
에너지는 ‘정화’가 아니라
복제와 투사로 작동합니다.
그 결과 내담자에게 생기는 것은...
힐러의 미정리된 감정 패턴
힐러의 왜곡된 구원 서사
힐러의 불안, 결핍, 권력 구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의식과 자아를 만들어 놓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2. 치유가 왜 ‘의식 전염’이 될 수 있는가?
에너지 힐링은 중립적 기술이 아닙니다.
항상 의식의 방향성을 동반합니다.
수학에서 벡터라고 하는게 있는데, 에너지의 지향성과 방향성은 내담자의 인격과 개성을 특정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에너지 벡터가 힐러의 마음과 법력에 새겨져 있어서
에너지 힐링이 강해지면 클라이언트도 그대로 영향을 받습니다.
영혼이 안정된 상태로서
자아 경계가 분명하다
감정과 욕망이 정리되어 있다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이때의 치유는 내담자의 자가 회복력을 활성화시켜줍니다.
그러나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일 경우,
내 문제를 남의 문제에 섞는다
치유를 통해 인정받으려 한다
상대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이때의 치유는 말로만 치유이지 내담자 안에 새로운 의존 자아, 왜곡된 신념을 생성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힐링을 받았는데 오히려 혼란이 커지거나
집중도와 목적의식이 다운되거나
힐러에게 강한 의존이 생기거나
자율성이 약화되고 자유로움에 대한 의미보다 무언가 에너지 맛에 빠져버립니다.
이것은 치유가 아니라
의식 구조 오염입니다.
3. 명리·타로·에너지 힐링의 공통 원칙
명리, 타로, 에너지 힐링이 공통으로 지키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상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지 않은 것을 지나치게 고치거나 수정하거나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인생에 개입해서 그들의 인생 시나리오를 망가뜨리는 죄로서의 카르마는 상당히 큽니다.
비록 불량 자아들이 내담자에게 많이 있어도
내담자의 허가 없이 그 불량자아를 치유해버리는 것은
그가 겪고 경험하면서 증득해야할 시행착오를 아예 제거해 버리는 월권행위입니다.
내담자 스스로 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굳이 개입해서는 안되며,
이는 내담자가 스스로 자기정화를 통해 내면의 '항생제'와 엘릭서를 만들어낼 기회를 강탈해 버리는
행위가 됩니다...
자신의 영혼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유를 하면
조언은 명령이 되고
공감은 개입이 되며
치유는 지배가 됩니다.
그래서 고급 수행 전통에서는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먼저 자신을 정화하라
먼저 침묵하라
먼저 구원자 욕망을 내려놓으라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힐러는 치유자가 아니라
새로운 카르마의 매개체가 됩니다.
4. 결론
치유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 상태의 부산물입니다.
영혼이 안정된 사람은
굳이 치유하려 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일어납니다.
일종의 무위법에 의해 자연감응적 치유입니다.
뭘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카르마를 잉태합니다.
영혼이 불안정한 사람이 하는 치유는
선의일수록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경고입니다.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 성숙도의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피크닉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