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5일(일)
오후 2시 20분 버스는 정시에 출발하여 다음 행선지인 소주(蘇州)로 향하다. 실제로 항저우에서 더 있어도 되지만 일단 맛보기로 하루 정도 들르기로 했다. 터미널을 빠져나가더니 바로 고속도로에 올라간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고속도로는 막히지도 않고 부드럽게 잘 나간다. 승용차 120km/h, 버스는 100km/h 다. 절대로 과속하는 일이 없이 기사는 부드럽게 운전을 한다. 따뜻한 난방에 승객들은 조용히 잠이 든다. 사실 날씨가 흐려 차창 경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두 시간이 조금 안 걸려 쑤저우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어딘가 둘러보기에 시간이 너무 어중간하다. 쑤저우 지도를 사고 대충 버스 노선 위치를 확인한 다음 60번 버스에 올라탔다. 원하는 목적지는 반문(盤門)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떠올린다. 요즘 해외여행하면서 보는 텔레비전에 제일 자주 나오는 한국 사람이다. 한마디로 반기문 총장은 이제 세계인이 되었다. <상하이 100배 즐기기>에 개방 시간이 오후 여섯 시까지라고 되어 있어 그래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트래블게릴라에서 펴낸 <금요일에 떠나는 상하이>에도 여전히 ‘한나절(half a day)’을 ‘반나절’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여행 안내책자가 이런 잘못된 표현을 주도하므로, 여행자들의 여행 후기에 잘못된 표현이 자주 나타나게 된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지도에 쓰인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배낭 여행을 다니기에 늙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빨리 찬이가 길을 찾고 안내를 하도록 해야 하는데, 아직은 한자 공부가 멀었다. 겨우 우리 버스가 움직이는 위치를 확인한다. 해방신촌(解放新村)에서 내려 서광탑(瑞光塔)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걸어서 서광탑에 도착한 시간이 5시 20분 정도, 매표구는 이미 창을 닫은 상태다. 6시까지 개방하지만 매표는 이미 마친 상태다. 그냥 밖에서만 구경한다.
찬이에게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 얘기를 해주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섶에서 자고 쓸개를 씹으며 복수를 한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알고 있는 내용일까 싶었는데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 월(越) 나라에서 오(吳) 나라로 왔다고 하니, 대장금 주제가 ‘오나라~ 오나라~’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나오는 오 나라, 월 나라 사람이 배를 탔던 강(江)이 도대체 무슨 강인지 궁금해진다.
근처에서 숙소를 잡으려고 서이로(西二路) 쪽으로 걸어갔다. 남문 시장을 지나 인민로(人民路) 큰길로 나왔지만, 여관이나 호텔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서 원래 우리가 반문(盤門)으로 들어간 입구였던 신시로(新市路)로 나왔다. <실험소학교(實驗小學校)> 건너편에 한국어로 된 <신영 슈퍼>가 있고, 옆에는 한국식당 <코리아나>가 있다. 학교 이름이 왜 실험(實驗)인지 궁금하다. 실험소학교 맞은 편에는 중학교가 있다. 오늘 일요일인데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나라 인문계 고등학교처럼 자율학습을 한 것일까. 중국 역시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중학생까지 입시 열풍에 매달리는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다. 한국식당 <코리아나>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민박집이나 숙소 정보를 얻는 게 쉬울 것 같다. 한국 사람 주인 아줌마가 반겨준다. 입구에 상하이에서 나온 한글 부동산 정보지 <상해경제>가 보인다. 현지에서 발행되는 이런 정보지들에 알찬 정보가 가득하다. 찬이는 기어이 돈까스를 시킨다. 50 위안이다. 돌솥밥에 된장찌개+보쌈 세트로 100 위안이다. 가격은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무한 제공되는 맛있는 한국식 반찬에 배가 부르다.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다. 중국 음식에 비해서 가격 경쟁력도 있는 편이다. 디저트로 식혜와 찬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이 제공된다. 하지만, 손님은 별로 없어 장사가 신통찮아 보인다.
계산을 하려다보니 내 돈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에 이어서 두 번째 사고를 쳤다. 무려 1,450 위안을 잃어버렸다. 시내버스를 타는 과정이나 버스 안에서 지갑이 없어진 것 같다. 혹시나 길에 흘렸는가 싶어 몇 번이나 되돌아보았지만 다리만 아플 뿐이다. 쑤저우에 도착을 한 후 바로 택시를 타는 편이 결과적으로 나았을 것이다. 내 실수이지만 쑤저우 인상이 좋지 않게 각인된다. 베트남 냐짱에서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난다. 당시에도 거금을 털렸던 아픈 추억이 있다. 그게 불과 한 달 남짓 되지 않았다. 평소에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버릇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돈 이외에 카메라 배터리도 하나 들어 있었는데 아쉬움이 더해진다. 쑤저우 인상이 구겨진다. 혹시나 이럴 경우 찾을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전혀 없다고 한다. 없어서 못 가져간다나. 우리 나라나 일본이라면 분명히 지갑을 주운 사람이 신고했으리라. 태국에서는 버스 안에 두고 내린 책을 찾은 일도 있다. 여행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60번 버스 종점까지 찾아 가련만, 그렇게 하기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나도 조선의 선비처럼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서 유람하면 좋겠다. 하지만 노잣돈을 들고 다닐 누군가는 있어야겠지.
우리가 배가 아플수록 신년에 어느 중국인은 정말 복이 넝쿨째 굴러온 셈이다.
코리아나에서 숙소를 소개해 주었다. 원했던 한국 민박집은 방이 다 찼다고 한다. 대신 가까운 소주식원반점(蘇州植園飯店)호에 100 위안에 묵기로 하다.
찌위안 호텔(식원반점)은 신시로(新市路) 138호에 있다. 208호는 조용하고 비교적 널찍한 방이다. 다만 실내가 조금 어둔다. 짐을 풀고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아 우리가 걸었던 길을 다시 산책 삼아 한 바퀴 돈다. 쓰레기통까지 살펴보지만 한번 없어진 분홍색 지갑은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서광탑은 야간 조명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커더[KEDI, 可的]’ 편의점에서 청도맥주를 사다. 3.1도 술은 2.7 위안인데, 4도 맥주는 4.2 위안으로 맛이 훨씬 낫다. 주변에 왕빠(網吧)가 보이지 않는다. 또 며칠째 인터넷 접속하지 못하다. 대신 담배와 주류를 파는 가게와 족욕(足浴) 집은 많이 보인다. 발 목욕하는 곳 조명이 어둡고 내부가 보이지 않아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숙소에서 우리 가족끼리 안마해주는 걸로 만족한다.
* 여행 기간 : 2007년 2월 20일(화)-2007년 2월 27(화) 7박 8일
* 여행 장소 : 인천-중국(상하이-항저우-쑤저우-상하이)-인천
*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찬이(만 11세) 가족
* 환전 : 1 위안=121원
* 연오랑의 다른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http://cafe.daum.net/meetangkor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