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선비 놀이 6 집빵교주의 설천초려에 행장을 붙이다.
어느 날 아내가 나보고 말했다 “요즘 당신이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 다 좀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어째 평범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사람들이 당신보고 돌아이라 하는 거 모르지?” “그래, 난 돌아이다.
세상이 다 돈에 미처 날뛰는데 어찌 돌지 않고 살 수 있겄냐.
그래도 내 아는 사람들은 다 선한 의지를 가진 분들이야.
그들을 돌아이라 부르는 세상이 제 정신이 아닌거지.”라고 짐짓 점잖게 꾸짖어 주었다.
내가 즐겨 만나는 사람 중에 이*기라는 돌아이 혹은 기인이 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호기심이나 그 호기심의 실천력 혹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나보다 한 20년은 젊게 사는 사람이다.
요즘은 집빵교주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알고 보면 파란만장하기 짝이 없는 인생사를 가진 인물이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가정 형편상 대학에 갈 처지가 못 되었던 그는
어느 날 잡지에서 ‘고졸출신 사법고시 합격수기’를 읽고 고시공부에 도전했었다고 한다.
그 수기를 쓴 인물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고시 공부에 지칠 즈음 우연히 응시한 세무공무원시험에 덜컥 합격을 했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세무공무원이 되었으나 공권력의 이름으로 현장에 나가 납세자들을 윽박질러
사익을 취하는 부패한 선배들을 지켜보며 그는 내 아이들을 이런 똥 냄새나는 돈으로 키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고 한다.
7말8초였던 그 무렵 나도 첫발령 받은 병아리 교사였다.
고3 교실 칠판 귀퉁이에 수능 보는 날에 맞추어 도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노르망디상륙을 앞둔
군인들처럼 비장하게 D-100일 등의 카운트 다운 판이 있었고,
그 밑에는 ‘4당5락’이라 써놓았었는데 하루 4시간 자면 대학합격이요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끔찍한 경고 문구였다.
그런 지시를 내린 교육감은 인사권을 틀어쥐고 교장 교육장을 통제했고
교장승진에 목매단 교감들은 그 충실한 전달자였고
교무 연구 등의 고참 주임교사들은 자신들 승진에 필요한 근무평정권을 가진 교장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당시 풍문에‘장천감오’라는 말이 떠돌았는데 교장승진에 천 만원 교감승진에 오백만원을 인사권자에게 바쳐야 한다는 말이라고들 했다.
일반교사들은 참고서를 판매하는 서점들과 결탁하여 소위 ‘채택비’라는 이름으로 촌지를 받아 고스톱 자금에 보태고들 했다.
주로 국어 영어 수학 선생을 중심으로 유력 학부모들의 초대를 받아 스테이크를 썰기도 하고
스승의 날이 되면 꽃다발 사이에 끼워진 구두 티켓이나 와이셔츠 쿠폰으로 온 집안이 한 꺼풀
뒤집어쓰기도 했다.
심지어는 스승의 날 선물과 향응이 맘에 안 든다고 교감선생이 학생회장단을 불러 꾸짖는
광경을 목격한 갓 제대한 초보교사였던 나는 나름 정의감에 그 아버지뻘 되는 교감과 재떨이를
던지며 교무실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난리 블루스를 춘 적도 있었다.
전교조가 생기기 이전까지 계속되었던 이러한 교육현장의 난장판은 그러나 겨우 10만원짜리 티켓과 봉투가 오가는 정도였으니 이런 부패상은 타 공무원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소꿉장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인허가권을 가진 시청공무원, 위생검사권을 가진 보건소,
징세권을 가진 세무서, 각종 사건사고의 수사권을 가진 경찰서 등에서 벌어지는 부패는
단위수가 달랐을 것이고 그 위의 상급기관인 검찰이나 정부부처의 공무원들은 다루는 숫자가
달랐을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시 세무공무원에게는 소위 ‘인정과세’라고 하여 일종의 개인적 징세권이 있었고, 납부자들은 해마다 상승하는 과세표준을 낮추기 위해 뇌물반 세금반으로 과표를 낮추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들은 바로는 이 곳 강릉의 세무서에도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정태수라는 인물이라고 한다. 일개 세무공무원이었던 그는 당시 관할지역의 돈덩이였던 탄광업에 관계하며
마침내 ‘한보탄광’의 주인이 되었고
한보건설을 만들어 은마아파트를 짓고 승승장구하다가 무리하여 ‘한보철광’을 짓다가 IMF사태의 주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군사정부 시절 뇌물왕으로 유명했는데 늘 다른 사람보다 0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받아본 놈이 줄 줄도 안다고 그는 세무공무원 시절 받아본 뇌물의 쾌감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성취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설사 정태수처럼 하지 않고 청렴결백하게 세무공무원 생활을 마친다고 하더라도 마치 판검사가
그만두어도 변호사 자격증이 주어지듯 세무사시험에서 1차시험 면제 등 각종 특혜를 주어
합격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던 시절인데 이런 풍토에서 위의 주인공은 그 황금어장(?)을 스스로
버렸으니 가히 문제적 인물이라 할 만할 것이다.
사표를 던지고 그가 한 일은 그 때 막 새로 생기기 시작한 컴퓨터 교육관련 사업이었고
얼마 후 그것도 그만 두고 강릉의 요지인 대학로에서 “빵장수 야곱”이란 빵집을 열어 대박을
쳤다.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서울에서 일류 제빵사들을 불러들이기까지 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또한번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이렇듯 우리 가게를 찾는 이유는 빵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내가 밀가루 속에 넣은 설탕의 달콤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건강은 어찌될 것인가?
내가 혹 돈에 눈이 어두워 시민들의 건강에 해로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그답게 그 잘나가던 빵집을 스스로 문을 닫고 새로운 빵에
도전한다.
스스로를 빵짓는 농부로 자처하며 밀가루에 오직 소금과 천연효모만을 첨가하는 무가당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긴 했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북구지방의 주식인 호밀빵 같은 건강빵이 드디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가게는 접어두고 세상에 나가 누구나 건강한 빵을 만들어 먹을 자격이 있다며 <집빵교실>을 만들어 두세 시간이면 누구나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교육체계를 만들어 5명 이상이 모여 불러주면 전국 어디나 다니며 건강빵을 시범보이는 홍보대사가 되어 이름을 떨치게 되었으니 그에게 제빵을 배우거나 그를 아는 세상 사람들은 그를 ‘집빵교주’라 부르게 되어
드디어 교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은퇴하여 작게 농사를 짓고 매화꽃을 가꾸며 살고 싶어 한 그는
드디어 파주에서 빵집을 하던 아들을 몇 년에 걸쳐 꼬셔서(?) 가게와 무설탕 빵 배달이라는
별 실속 없는 사업을 물려주고 본인은 산 속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나는 자연인이다’에 버금가는 자연인이 되었다.
나는 서각하는 지인들의 힘을 빌려 설내라는 밤나무만 잔뜩 심어져 있던 골짝에 위치한 그 움막에 설천초려란 간판을 함께 달아주는 방식으로 그를 격려했었다.
산 속에서도 그가 하는 일은 하나하나 새롭고 창의적인 일이 아닌 것이 없어 견학하러 방문하는
자들로 설천초려 앞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니 이 돌팔이 시인이 어찌 엉터리 한시 한 두 수가
없겠는가?
(참고로 이 사람을 더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은 Band ‘빵 짓는 농부 집빵 교실’을 방문하시기 바란다)
題泄川草廬 (제설천초려)
1.
泄川栗園細路高 (설천율원세로고)
突現草幕孤寂罷 (돌현초막고적파)
隱退巨商臥草廬 (은퇴거상와초려)
世稱敎主家面巴 (세칭교주가면파)
2.
拏星製菓得萬金 (라성제과득만금)
十年經營擲後主 (십년경영척후주)
忽然入山自神仙 (홀연입산자신선)
願勿再尋公陶朱 (원물재심공도주)
대충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설천초려에 붙여
1.
학산 설내의 밤나무농장의 길은 가늘고 높은데
갑자기 눈 앞에 초막이 나타나 산속 고독을 깨뜨린다네
은퇴한 큰 장사꾼이 초막에 누워 있어
세상에서는 그를 집빵교주라 부른다네.
(면파(面巴)는 중국인들이 미엔빠오라 읽는데 빵의 음차로 알고 있다)
2.
별을 따다 구은 과자(그의 상호)로 많은 돈을 벌었으나
10년 경영하던 사업을 후계자에게 던져 주고
홀연히 입산하여 스스로 신선이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이여 바라건대 다시는 도주공을 찾지 마라. 여기에 있다.
(陶朱公(도주공)은 오월춘추시대 그 유명한 와신상담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을 도와 그가 원수를 갚고 패업을 이루게 도운 후 스스로 논공행상을 포기하고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서 상업으로 크게 성공한 후 자식들에게 물려준 후 은퇴하여 서호(西湖)가에서 신선처럼 살다 죽었다고 하는 인물이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그를 최고의 사업가로 칭송하였으며
후대에 장사의 신, 상성(商聖)으로 불린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