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전기를 읽으면서 박재순 선생님께서 강의해 주신 내용과 더불어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따르는 삶 사셨던 유영모 선생님 자취를 입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더욱 반갑고 기뻤던 것 중 하나는 유영모 선생님 외에도 이 땅에 깨어 살아간 그러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 조상들이 참 많았다라는 사실이예요. 특히, 안창호, 이승훈 선생님의 비상한 결단과 마주침을 통해 오산학교가 세워지고 민족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 벅차기도 했었습니다. 나라는 망했지만 새로운 자각과 의식이 일어나고, 깊은 밤 새벽을 향해 나아가는 힘찬 걸음들 하나 새록새록 느끼며, 어쩌면 답답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뿐인 것 같은 지금의 현실속에도 여명이 밝아오듯 시대정신이 새로워지는 길 따라 사는 삶 간절히 바라며, 바로 지금 여기에도 새 역사가 이어지길 소망하게 되더라고요.
선생님의 여러 만남을 보면서 삶이란 결국 사람간의 사귐이며, 형제와 자매, 벗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지닌 사람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겠구나 볼 수 있었어요. 모두가 예수가 되지 않고는 참 벗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 예수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렸고, 원수를 사랑할 줄 알았다고 유영모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영성적 깊이를 나누는 관계, 공동지성의 관계를 오랜기간 만나가며, 참사람으로 다가가고, 참벗으로 사는 삶을 실천하신 모습이 참 부럽다고 느꼈어요. 함석헌 제자에게 "너(제자의 삶)와 내(스승의 삶)가 다르지 않기에" 참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꾸짖고 혼내는 과정, 결별을 통해서도 선생님의 사랑을 가슴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더 깊이 만나갈지 선생님의 삶을 통해 선한 이끌림을 받았어요. 깨달은 것은 철저하게 삶에 들이는 모습이예요. 그중에 하나는 일본 유학 중에 농사짓고 살아갈 결심을 하고 23년만에 시골에 들어가서 사신 부분이었어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일이 나 살 것을 도와줍니다."라며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며 톨스토이와 간디처럼 땀 흘리며 스스로 몸을 숙여 노동하면서 사셨지요. 아들이 농사지으러 들어갈 때는 농사짓는 아들이 참 내 아들이라며 둘째 아들 자상의 귀거래를 기뻐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평생을 신독하는 삶, 수련하며 사는 삶을 통해 참신앙을 추구하신 것도 삶과 관계가 매일 새롭게 거듭나는 길 걸으셨다 생각하게 되어요. 읽으면서 눈여겨 보았던 문장들 다시 곱씹어보며 벗들과 책으로 이어갔던 공부 마치려 합니다. 전기 함께 읽자는 제안 고마웠어요.
[눈여겨 보았던 문장]
P86 '얻을득'자 파자하니 일,행,일.치, 얻는다는 것은 하루에 한치씩 나아간다는 뜻이지요.
P86 동일과 합일의 차이 : 동일은 물질적인 것이 같을 때 쓰고, 합일은 정신적인 것이 같을 때 써요.
위 두문장처럼 우리말이나 주로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들, 말뜻을 깊이 생각해보며 원형이나 뜻을 새기는 관점이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p130 나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 전도를 한다고 해서 듣고 배운 것 그대로 녹음기 노릇을 했지요.
P132 나를 보고 무엇을 마음에 얻은 것이 있냐고 묻는 것인데, 나는 나대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속알(얼나)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류영모 자신이얼나를 깨달아 타율신앙에서 자율신앙으로 옮겼다는 말이다.
P198 성령을 받아 돈오를 하면 한꺼번에 다 될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돈오한 뒤에도 점수를 해야 합니다. 돈오도 한번만 하고 마는게 아닙니다. 줄곧 깨달아 가야 합니다.
믿음대로 산다는 것은 극장식(녹음기 노릇) 또는 관념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와 참삶으로 나아가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요.
P200 제 속알을 알아야 남의 속알을 알 수 있습니다.
P204 악한 사람을 보면 당장에 죽일 것처럼 날뛰는 사람이 악을 가장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죄악을 범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선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자기도 악당이 되고 맙니다.
P232 한 세상 안의 시간과 공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변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늘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밀이입니다.
p268 사람들은 돈을 모으며 자유가 있는 줄 아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영업이나 경영이 자기 몸뚱이만을 위한 짓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평등을 좀 먹습니다. 돈에 매여 사는 몸이 무슨 자유겠어요? 매인 생활은 우상생활입니다.
P276 몸이 죽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죽으면 얼이 하늘나라로 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갑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p313 참 나를 보는 것이 정견입니다. 참나를 보아야 하고 참나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참나를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가 온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참나인 얼의 나가 죽지 않는 생명임을 알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p364 영생이란 죽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얼생명에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진리인 얼생명은 영원합니다.
p419 이 생명이 가짜 생명입니다. 우리는 참생명을 찾아야 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나온 것은 참 나가 아니고 속알의 나, 성령의 나가 참나 입니다. 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의 나가 참나입니다.
p565 나는 몸의 일은 부정합니다. 모든 것이 몸을 위해 일하다가 죽어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 서운한 일인 것입니다. 나는 이를 부정합니다. 그저 남 먹는 것, 남 입는 것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 몸살(육신생활)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 수명의 연장에만 신경을 씁니다. 육체에 머무르고 매이는 삶을 부정하며 참나를 찾고 영생을 추구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람과 인생에 대한 신비를 묵상하며 얻은 지혜라 생각해요. 사람의 본성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현재 새롭게 오는 것"이며, 영생은 하나님안에서 참나를 찾고 깨닫는 삶의 진행형입니다. 그 진행형 이어가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