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열풍타고 전국 곳곳의 친환경 트레킹 코스에 여행객이 북적인다. 심지어 출근길 버스에서도 트레킹복을 입은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걷기가 유행은 유행인가 보다.
그러나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걷기 길 열풍이 일어난 지도 오래, 이제는 자연 경관도 뛰어나면서 스토리가 담긴 트레킹 여행이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도 독립운동 지도자 이전의 '청년 김구'의 고뇌와 상념을 느낄 수 있는 '솔바람길'과 태안 기름유출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솔향기길'이 유명하다.
백범 발자국 따라…'충남 마곡사 솔바람길'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해발 423m) 동쪽 산허리에 있는 절이다. 640년(신라 선덕여왕 9년) 자장법사가 창건했는데 대전·충남지역 조계종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다.
이처럼 천년 고찰 마곡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한때 승려로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98년 이곳에서 백범(당시 23세)은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승려생활을 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 하다가 탈옥한 직후라니 은거를 위한 출가였던 셈이다.
그러한 백범이 마곡사에서 자주 걷던 솔바람길은 크게 3개의 코스로 나뉜다. 첫째 코스인 '백범명상길'은 백범당∼백범 선생 삭발터∼군왕대∼마곡사로 이어지는 3km로 50분가량이 걸린다.
백범당을 출발해 냇가로 접어들면 징검다리가 나오고 그 옆에 백범이 출가할 때 삭발했다는 삭발터가 있다. 그곳에서 태화산으로 접어드는 소나무 숲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타다보면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 군왕대에 이른다.
군왕대는 산 정상은 아니지만 마곡사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곳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조가 군왕대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하지만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인 이곳과 비교할 수 없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둘째 코스인 '명상산책길'은 마곡사∼천연송림욕장∼은적암∼백련암∼활인봉∼생골마을∼마곡사로 어어지는 5km의 트레킹코스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셋째 코스 '송림숲길'은 마곡사∼천연송림욕장∼은적암∼백련암∼아들바위∼나발봉∼전통불교문화원∼다비식장∼장군샘∼군왕대∼마곡사이다. 11km의 본격 등산코스로 3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솔바람길이 있는 태화산은 어찌 보면 겸손한 산이다. 일단 산이 야트막해 도보와 등산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어려운 바윗길이 거의 없을 만큼 내내 편안하고, 곳곳에 긴 의자가 놓여 있어 산행 도중 쉬기에 좋다.
산사 아래 산내음 풍성한 '산채비빔밥'
아무리 낮아도 산이고, 아무리 완만해도 산인 법.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금세 배가 출출해졌다. 건강을 생각해 열심히 걸었건만 음식도 참살이 해야 않겠는가.
춤남 공주는 넉넉한 인심과 충청도의 손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산채정식이 자랑이다. 특히 마곡사 주변에는 버섯, 두릅 등 산나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마곡사 아래에는 식당,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깔끔한 타운이 형성돼 있는데, 그 중 지인의 소개로 '서울식당'을 찾았다. 헌데 충남에 있으면서 왜 상호가 서울식당이냐 묻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식당이 음식만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서울식당의 산채정식은 고사리, 취나물, 삼나물, 명이나물 등 7~8가지의 산채와 나물이 비빔밥 재료로 담겨 나온다.
따끈한 밥을 넣고 참기름을 뿌리고 고추장 한 숟갈과 된장국물을 끼얹어 쓱쓱 비벼 한 입 오물거리자면 신선한 산채의 식감과 참기름의 고소함, 고추장의 매콤달콤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여기에 낙지젓갈과 작두콩깍지, 도토리묵, 깻잎된장무침, 된장찌개 등이 함께 딸려나오니 밥상이 금새 푸짐해진다. 특히 '일능이·이송이·삼표고' 중 으뜸인 능이버섯과 아스파라거스, 게장은 이 집만의 자랑거리다. 산채정식에 더덕구이가 추가되면 '더덕정식'이 된다.
해풍에 밀려온 솔향내…"충남 태안 솔향기길"
다음으로 찾은 곳은 충남 태안. 천연송림과 해안선이 아름다워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에 최근에는 '길 열풍'을 타고 생태 탐방로 '솔향기길'까지 만들어졌다.
솔향기길은 오른쪽 허리춤에 바다를 끼고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가는 해안길이다. 현재까지 조성된 코스는 모두 4개. 이 중 풍광으로 따지면 1코스가 으뜸이다. 10.2㎞에 이르는 이 구간 역시 남다른 스토리가 담겨있다.
원래 이 길은 지난 2007년 기름유출사고 때 방제 작업을 도우려고 만들어졌다. 당시 이원면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차윤천씨(60·남)가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길을 닦고 줄을 매달은 것이다.
한데 어느 순간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났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자 차씨는 이곳에 트레킹 코스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이후 태안군이 예산을 투입하고 지난해 10월까지 4개 코스로 나눠 길을 넓히고 부대시설을 설치해 현재는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1코스는 만대항에서 출발한다. 산책로로 조성되었지만 해안선 구간마다 몇 개의 작은 언덕이 있어 등산하는 기분이다. 소요 시간은 약 4시간.
첫 시작은 비좁은 바윗길에 늘어진 줄을 잡고 올라서는 일이다. 초입부터 비탈진 경사길에 겁을 먹을 수 있으나, 곧바로 이어진 숲길의 경사가 완만해 부담은 없다.
서해를 바짝 끼고 솔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길. 행여 '지루하면 어쩌나'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간 중간 바다를 향해 트인 곳엔 비경과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재미난 이름의 명소가 줄줄이 이어진다.
특히 '붉은 앙뗑이‘와 '중떨어진 앙뗑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앙뗑이는 ‘절벽’의 태안 사투리다. 붉은 앙뗑이는 인근의 돌과 흙이 붉은 빛을 띠어 붙여진 이름이고, 중떨어진 앙뗑이는 나무열매를 따던 중이 절벽에서 떨어진 자리란다. 사연이야 어쨌든 해학적인 지명에 웃음이 난다.
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었을까? 20m 높이의 작은 '여섬'이 고즈넉이 물 위에 떠 있다. 여섬은 이원방조제 축조 후 제방 안에 있는 섬이 모두 없어져 유일하게 남은 섬이다. 그 옛날 남을 여(餘)자를 붙여 ‘여(餘)섬’이라 부른 선인들의 예견이 흥미롭다.
발걸음을 재차 옮기자 1코스 중 유일한 해식동굴이자 그 옛난 용이 승천했다는 용난굴이 나타났다. 솔향기길을 잠시 뒤로 하고, 동굴로 향했다. 동굴 속으로 18m쯤 들어가면 굴은 두 갈래로 나눠지고, 용이 승천하기 위해 밀고 나왔다는 바위가 입구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다시 솔향기길로 복귀해 길 후반부에 이르자 등줄기가 땀에 젖어 흥건하다. 하지만 기분나쁜 끈적거림은 아닌지라 불어오는 해풍에 시원하기만 하다. 준비한 물통으로 목을 축이고 힘을 내 숲길로 들어서 작은어리골, 큰어리골 등을 거쳐 코스의 종착점인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해안가를 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모습에 안뫼로 향했다. 이원면과 이웃한 원북면 안뫼는 꽃지와 더불어 태안 최고의 낙조를 자랑한다.
안뫼에 도착해 가만히 앉아 낙조를 바라보니 누런 풍광이 넉넉하고 바람이 넉넉하다. 오늘 하루의 속도는 느지막했고, 그 느림만큼이나 솔바람길과 솔향기길은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이밖에도 충남에서는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를 둘러보는 당진 '성지순례길'과 전통 가옥과 불교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서산 '아라메길' 등이 찾아볼만하다.
공주 마곡사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8번지
전화 : (041)841-6221
홈페이지 : www.magoksa.or.kr
서울식당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728-2
전화 : 041-841-8016
태안 만대항
주소 :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리
문의 : 태안군청 환경산림과 (041)670-2797
※주의 : 솔향기길은 모든 코스가 편도로 되어 있어 돌아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첫댓글 피곤 하신데산행 상세 안내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