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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1~12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으로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치 않은 마가, 마태, 누가가 쓴 공관복음이 먼저 나온 후, 한참 후에 결혼식에 참석했던 요한이 자신이 목격한 것을 쓴 것이기에 그렇다.
이외에도 니고데모의 방문, 나사로의 부활사건, 세족식 등, 요한복음만이 기록 되어진 중요한 사건들이 있다.
이 가나의 결혼식은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과는 차별화 되어 보통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이라 칭한다.
표적, 즉 만인에게 메시야임을 드러내고 공생애를 시작하는 사인인 것이다.
난 예전에 성경을 잘 모를 때 이 사건을 오해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성경의 여러 사건을 오해 했지만,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중, 이 가나의 혼인 잔치는 액면으로 보면 좀 고개를 갸웃 할만 했다.
예수님의 첫 스타트 기적을 고작 잔치집에서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물을 술로 바꾸신 게 왠지 그닥 거룩해 보이지 않게 느껴졌다.
술을 못 끊는 기독교인들이 이 포도주 기적에 자기 합리화를 하며 술을 맘 놓고 마시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포도주 사건에 감춰져 있는 큰 영적인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를 가르쳤던 신학교 교수님은 로마서강해를 할때 로마서가 성경의 꽃이며 반지라면 반지의 보석알이리 했는데 난 요한복음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이 가장 영적이며 예수님을 가장 잘 드러낸 책이다.
먼저 요한 복음의 앞 부분 1,2장은 창세기 앞부분 1,2와 짝을 이룬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니라."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
이처럼 창세기의 첫장 첫절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요한복음, 첫장 첫절은 천지창조와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선악과로 인간과 영적인 혼인관계를 맺으시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언약 관계가 깨어진 것이 나오고,
요한복음 2장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혼인관계인 예표로서 실제의 혼인잔치가 나오고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망하게 된 상황이 그려져 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결혼식이 망치면 부부가 불행하게 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혼인 잔치의 주 음료인 포도주가 떨어 졌다는 것은 큰일인것이다.
그래서 다급해진 마리아는 예수께 포도주가 없다며 어떻게 해보라고 부탁을 한다.
이 결혼식이 누구의 결혼식이란 것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마리아가 잔치부엌일에 신경썼다는 건 혼주이거나 가까운 친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께 이러한 부탁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마리아는 예수께서 충분히 이러한 능력이 있으심을 경험을 통해 알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많은 사람앞에서 이러한 능력을 발휘한 적이 없을 뿐이다.
"여자여.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난데 없이 '어머니'가 아닌 '여자여'란 말을 쓴다.
'여자여', 한글 개역은 이리 불손한 느낌이 들게 번역을 했지만 여기서 쓰인 헬라어 '귀나이'는 여자에게 쓰는 극존칭으로 높은 신분의 여인, 즉 왕후 같은 여인에게 이 호칭이 쓰였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아들이 어릴 때 나한테 단단히 삐친척 할때 "아줌마" 라고 한 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호칭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자기 어머니에게 쓰는 호칭은 아니고 격식을 차리되 거리를 둔 표현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한낱 모친의 부탁이 아니라 인류의 구세주로서 공생애의 첫 표적을 행하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 가나의 혼인 잔치는 매우 영적인 의미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 의미들을 살펴보면 첫째, 혼인잔치 중에 떨어진 옛 포도주는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은 한계가 있고 끝이 나게 되있어서 혼인 잔치를 성공리에 이끌수 없다.
또한 돌항아리 여섯, '6'은 불완전한 인간의 수이며, 질 그릇인 사람의 육체를 의미 한다.
돌항아리엔 유대인 정결례에 따라 식사 전, 손을 씻는 물이 담겨졌는데, 이는 종교의 외식행위를 상징하고, 이런 종교의 외식행위는 혼인잔치엔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 돌항아리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하인들, 즉 제자들은 새로운 물이 붓게 되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제자들의 순종으로 일어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제자들이 붓는 물이 '말씀'을 의미한다는 신학자들의 해석이 많다. 나도 그리 생각하지만 또는 성령이기도 한다고 생각을 한다.
왜냐면 말씀을 받아도 지식으로만 받아들여 포도주가 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안에 부어지고 그 물은 포도주 즉, 예수님의 보혈이 되어 잔치집 손님들이 보혈의 은혜로 구원을 받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망칠 뻔한 혼인 잔치는 이전의 포도주인 율법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되어 결혼식은 흥겹게 성황리에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나의 혼인 잔치엔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에 대해 알아보자.
자료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결혼식이 두번이 있다.
첫번째는 약혼식 개념인 결혼식으로,
총각이 마음에 드는 처녀를 발견하면 아버지를 졸라 돈을 타내어 그 처녀의 집에 가 잔치를 일주일 간 연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총각은 처녀의 환심을 사려하고 처녀는 그런 총각을 눈 여겨 보며 프로포즈를 받아들일지 받지 않을 지를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잔치의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는 총각이 처녀에게 내생명을 바치겠다고는 말과 함께 포도주잔을 내민다.
이때 처녀가 마시면 결혼을 승낙하는것이고 마시지 않고 들어가 버리면 총각은 퇴짜를 맞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처녀가 포도주를 마신 총각은 약혼이 성사 된것이므로 기분이 좋아 춤을 추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반면 처녀가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경우는 남자는 괜히 돈만 날린게 되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옛날, 얼굴도 모른채 부모에 의해 결혼한 우리나라 옛세대완 여권존중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이다.
여하튼 신부에게 허락을 받은 신랑은 아버지의 집 옆에 신혼집을 짓는데, 이 기간은 약 일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신부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채, 신부로서 모든 준비를 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혼 기간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 것인데, 이때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임신을 하면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도 할말이 없었다.0ㅁㅇ
그런데 요셉은 착한 사람이었기에 조용히 파혼하려 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신랑이 신혼집을 다 마련 하게 되면, 신랑이 친구들과 밤에 신부를 데리러 가는데 이 때가 두번째 결혼식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는 전화도 없고 우체부도 없어서 신랑이 아무런 예고없이 느닷없이 신부를 데리러 간다.
그래서 신부는 일년이 되어 갈 무렵부터 오늘 오려나, 내일 오려나 하며 늘 신랑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결혼식 풍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친구들로 들러리들이다.
솔로몬이라면 모를 까, 열처녀가 한신랑에게 단체로 시집가는 경우는 없다.
두번째 결혼식 날은 완전히 두 남녀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정식 결혼식으로 이때도 일주일간 연회가 벌어진다.
그리고 마지막날 신랑에 의해 신부는 손님앞에서 베일을 벗고 얼굴이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은 깜짝 놀랄 정도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건과 너무나 닮아있다.
지금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 몰랐을 텐데, 어떻게 이런 풍습이 만들어 졌는지 하나님의 참견하심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첫번째 잔치에서 신랑이 신부로 점찍은 처녀에게 잔치를 베풀며 아무리 잘보이려 노력해도 신랑을 선택하고 안하고는 신부의 마음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초림시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온갖 이적과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얻으려 하시지만 예수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내민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이고 유대인들은 마시지 않고 거절한 사람들이다
신랑이 내 생명을 바치겠다며 내민 포도주는 설명 안해도 예수님의 보혈이란건 대부분 알것이다.
예수님이 내민 보혈을 마신 신부는 예수님의 정혼자가 되어 영원히 함께 살 처소를 마련하러 아버지의 집, 천국에 가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는 마지막 성만찬시 예수님이 다락방여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제자들은 이 때 예수님이 주신 언약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첫번째 결혼식때 처럼 정혼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음날 십자가에서 실제로 온몸의 피를 쏟고는 죽으셨다.
실제 우릴 위해 생명을 바침으로 공생애 마지막 사역을 마무리 하신것이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 하는데 평생을 바쳐도 다 알수 없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많은 신학자들이 가나의 결혼식이 저자인 요한의 결혼식일것이라는 추측이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그 의견에 동의를 한다.
설령 아니더라도 요한은 이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이며 신랑이신 예수님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다.
말씀에 결론을 맺으면, 우리는 더 좋은 포도주인 예수님의 피로 정혼을 약속한 자이다.
예수님은 우릴 위해 생명까지 바치셨다.
자신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은 신랑을 배신하는 신부는 패륜녀이며 영적인 음녀이다.
그러나 정혼자 신분으로 작정하고 신랑을 배신하는 여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사단은 정숙한 여자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후릴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가진 선수중에 선수이다.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단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정혼자의 순결을 더럽히기 위해 개개인의 약한 부분을 공략해 별의 별 기발한 작전과 모략을 펼치며 공사를 치려 한다.
그래서 순진하게 "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을 거야." 하는 다짐가지고는 그들을 이길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정절을 지킬 수 있을 까?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숙제인데, 상투적이고 교과서적으로 느껴지지만 방법은 기도와 말씀의 생활화밖에 없다.
신앙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왕도가 없다.
부지런히 마음의 가라지를 뽑고 밭을 갈아야 한다.
그런데 이 두가지 중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나는 요즘 설교문을 쓰다보니 성경을 늘 묵상하게 되니 예수님 외에 아예 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고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힘이 있단 걸 온몸으로 체험한다.
늘 읽고 묵상하고 예수님께 말걸어야 예수님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또 한가지 팁이라면, 난 지금은 설교나 묵상글로 대체됐지만 예전엔 예수님께 곧 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실제 나의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애틋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군대간 애인에게 편지를 하는 대신 문자나 전화를 하지만 예전에 핸드폰이 없을 땐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애인과 쉴새없이 편지를 주고 받으면 고무신 거꾸로 신을 일이 없다.
하지만 여자가 편지를 안 쓰고 안 읽기 시작할때 부터 문제가 생긴다. 군대간 남자는 환경이 그러니 딴 여자를 생각할 수가 없다. 오직 그여자만 생각하며 그 힘든 시간을 견디는 데, 그래서 여자가 마음이 변하면 탈영까지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인이 군대간 여자는 도처에 남자들이 있으니 마음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변심하고 싶지 않다면, 애인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애인을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자신도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예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편지를 남겨두고 가셨다.
수많은 약속과 준비 해야 할일, 조심해야 할일,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긴 편지들이다.
우린 늘 그 편지를 읽고 그 뜻을 헤아리며, 신랑만을 일편단심의 마음에 품는 정혼자가 되어야 겠다.
ㅡ나현미 (그리스도의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