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조은임 기자 입력 2023.08.07 06:00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15개 공공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의 무량판 구조에 철근이 누락된 사태가 발생하자 민간 건설업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민간 아파트에 비해 공사 단가가 지나치게 낮고 관행상 공기 연장을 인정해주지 않는 등 그간 발주처인 LH의 ‘갑질’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대형건설사 입장에서는 LH가 책정한 단가에 맞춰 공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인천 검단 아파트를 GS건설이 시공한 일이 이례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세 확장을 위해 시공 물량을 늘려야 하는 중견 건설사들이 주로 LH 발주 공사를 맡게 되는 배경이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LH 책임관계자 긴급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LH가 발주한 아파트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이들 단지의 시공을 맡은 곳은 모두 시공능력평가(시평) 10위권 밖의 중견건설사였다. 15개 단지의 시공사 중 DL건설과 한신공영, 효성중공업, 양우종합건설, 대보건설 등이 시평 50위권 내에 머무는 수준이다. 물론 이번 사태는 설계상의 구조계산, 철근 누락 등이 주 원인으로, 시공능력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공공아파트의 시공미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LH아파트에서 발생한 하자는 3만5000여 건에 달했다.
대형건설사들은 LH발주 공사에 참여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단가’를 지목했다. 특화설계를 포함한 대안설계를 제시하고 상품 서비스를 제안해야 하는 최근 민간 아파트 시장의 특성상 LH 발주 공사에 참여해서는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주거안정’이 목표인 LH 발주 공공아파트의 경우 설계도면 대로 제대로 짓기만 하면 되는데, 이는 대형건설사들이 추구하는 시공과는 애초에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2021년 LH가 발주한 아파트의 평균공사비는 계약면적 기준 3.3㎡당 580만원 수준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서울시 내의 23개 정비구역의 평균공사비가 673만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폭 낮은 수준이다.
A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본사직원만 수천명에 이르는 대형건설사들은 인건비를 포함한 일반 관리비가 상당히 큰 편”이라면서 “소규모 공사나 공공아파트 공사를 해서는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B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브랜드별로 최소한의 상품, 설계의 기준이 있다”면서 “너무 낮은 단가로는 이 기준을 실현시킬 수가 없다”고 했다.
브랜드의 이미지 실추 또한 대형사들이 LH 아파트 시공에 참여를 안하는 이유다. 대형사들이 앞다퉈 하이엔드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고급화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LH와 브랜드를 공유하는 게 도움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자이(Xi)’로 그간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성공적으로 해온 GS건설이 LH 발주 공사에 참여한 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지는 이유다.
C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들은 자체 브랜드가 있어 공공아파트 공사에 참여해 LH브랜드를 달거나 브랜드를 함께 쓰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좋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중견건설사들의 경우 브랜드 인지도를 늘리고 사세 확장을 위해 LH 발주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건설사들도 관행상 일어나는 ‘갑질’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올봄 시멘트 부족 사태처럼 자재 수급난으로 공기가 연장될 때도 이를 인정해주지 않아 밤샘 공사를 하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기 연장시에도 LH의 비용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중견건설사들의 얘기다. D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기연장시 들어가는 간접비를 미지급하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면서 “지급자재의 수급 지연시에 공기연장을 인정해주지 않아 날밤을 새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