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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3일 주일말씀
바울처럼
사도행전 26:19-23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미식축구의 코치로 있다가 해고되어서 집에서 꿈을 107가지를 적었다고 합니다. 부인이 보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구직활동이라고 합니다. 108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77세인데, 거의 모두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앤 클라우저의 “종이위의 쓰면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종이 위에 꿈을 쓰면 쓴 대로 노력하게 되고, 그것이 동력이 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도 가능하고, 믿음으로도 가능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목록을 올려 놓고 나면 응답합니다. 그것이 늘 떠오르게 되고, 감동을 받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영감을 받게 되고 그 기도에 대해서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파충류의 뇌(생명을 유지, 현실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뇌)
2. 본능의 뇌(불쾌와 쾌감)
3. 인간의 뇌(미래저향적, 아이디어, 새로운 생각)
본능의 뇌에 “망상활성화시스템”이라는 세포가 있다고 있다고 합니다. 장기저장장치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 등 말입니다. 인간이 꿈을 적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망상활성화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가이사르는 폼베이우스의 강력한 군대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뇌에 “망상활성화시스템” 세포를 이용해서 인지구조화했습니다.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하고 나니까? 적은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승리했습니다.
본능의 뇌에 “망상활성화시스템”은 믿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긍정적인 믿음이라면 계속 인지되어서 긍정적인 믿음으로 나아가게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기시작하면 길거리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차를 좋아하면 길거리에 내가 원하는 차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관련된 것만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망상활성화시스템”이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시스템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적어보십시오.
1. 영성
2. 배우자
3. 직업
4. 경제.
5. 개인적인 것(미친꿈).
바울은 변화를 받고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망상활성화시스템”이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놓았습니다.
심리학자인 파블로프의 이론 가운데 “조건반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에게 조건을 거는 것입니다. 불을 켜고 음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불만 켜도 음식을 줄 것이라고 인지합니다.
인간에게도 “조건 만들기”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조건들이 감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제가 어릴 때 국기 게양식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관공서에서 국기 게양식을 하면, 멈추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조건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조건 속에서 내 감정이 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긍정적인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세상에서 악한 아버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악한 부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13세 된 딸을 성추행한 아버지가 결국 법은 2개월간 딸에게서 100m이내 접근하지 목하도록 친권행사를 강제로 정지시켰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는 “무능한 부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가지만 빚더미만 잔뜩 안겨주는 부모도 허다합니다.
또한 “물려줄 유산이 없는 부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는 고달픈 인생을 삽니다.
제가 자랄 때만 해도 1960년대입니다.
한국 경제 여건이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습니다. 고구마, 감자, 김치, 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얼마 안 되는 쌀에 김치를 넣고 죽을 끓여서 먹는 게 일쑤였습니다.
그 당시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친구들과의 비교되는 삶”이었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부모들 잘 둬서 고생 안하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친구들이 학교에 갔다오면 소꼴을 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가야 했고,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논밭에 엎드려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집에야 반찬이 있든 없든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탓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속이 상한 것입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면 가난의 티가 절로 나는 것입니다. 도시락의 반찬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놓고, 소시지, 어묵, 두부 반찬을 해 오는 친구들, 가난한 친구들은 김치와 무지, 콩, 이게 매일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가지 않고 수저만 들고 오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 도시락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도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돌보고 후원하고 양육하는 그런 부모도 있었습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유업을 이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보며 믿음으로 키우는 부모도 많은 시대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룰 수 있도록 조건을 걸었습니다. “긍정적인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들을 말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바울같이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고 “믿음의 조건”을 걸고, “망상활성화시스템”을 활용해서 긍정적인 응답을 기다라며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온 믿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가장 행복했던 다메섹 사건에 조건을 걸어놓고 어려울 때마다 꺼내는 것입니다. 빛되신 주님! 나는 누구인가?를 발견해 주신 주님! 그 에너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거인을 깨우는 “비전”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하늘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 “비전”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의 구원자라는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도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나타나셔서 그런 비전을 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비전을 주셨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비전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는 이미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 비전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맞는 “하늘의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급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날마다 매순간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주님,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기도하면서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어떤 목사님이 홀로 사시는 할머니 집에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달동네에 있는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찢어지게 가난한지라 이불도 누더기로 기운 듯 이것저것 잇대어져 있는 것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심방기도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할머니가 목사님을 앉혔습니다. 굳이 부엌에 가서 과일을 내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다. 목사로서 애써 사양보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집에 온 목사님을 맨입으로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고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혼자 있게 된 목사님은 자연스럽게 시선이 벽으로 향했습니다. 벽에는 신문 쪼가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습니다. 읽을 거리가 있어 심심치는 안았다고 합니다. 그 벽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벽에 있는 것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면서 보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집에 그런 고급벽지를 붙이다니? 가짜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과일을 깎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목사님은 궁금하여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벽에 붗은 저것은 무엇인지요?”
“아, 그것 말입니까? 내 아들 녀석이 미국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왔는데, 이왕 보내주려면 시퍼런 배추 이파리 만원 짜리라도 보내줄 것이지...저런 아무 짝이 없는 것을 보내왔지 뭡니까? 그래서 벽지로 발랐습니다.
내가 청산과부로 그 놈을 파출부, 행상, 막노동 안 해 본 것이 없이 키워서 미국까지 보냈는데, 아들 놈이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하면서 편지와 함께 아무 쓸데없는 저것을 보냈왔지 뭡니까?
목사님이 자세히 그 벽지를 보니까? 눈이 휘둥그렸습니다. “저것만 있으면 이 할머니는 고생이 끝인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저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몰라요”
“할머니 저것은 돈입니다. 수표입니다.”
“은행에 가져가시면 6천만원이 넘는 돈입니다.”
수표의 가치를 모르는 할머니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수표의 가치를 알고 계시는 목사님이 발견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같이 하나님의 소속으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눈을 열어 빛되신 주님께서 보게하시고, 길을 안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진지하게 여쭈어 본 후에 “나의 아젠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젠다”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비전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얻는 비전이 “하늘의 비전”입니다.
“하늘의 비전”은 자신의 부와 성공과 명예를 위한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비전입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겠다는 비전을 보고 유럽 정복전쟁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한창 승전하다가 마지막 패전했을 때, “내가 성공했다면,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해서 프랑스의 명예를 드높이자”고 하면서 병사들로 하여금 전투를 하게 했지만, 사실 그것은 나폴레옹 개인의 명예를 위한 비전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비전을 보고 움직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허영 때문에 움직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전을 허영과 혼돈하면 안 됩니다.
“하늘의 비전”은 나의 허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하늘의 비전을 위해 살았습니다.
아기 축복 기도를 할 때마다 두 가지를 빼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있습니다. 분복과 사명입니다. 분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에 주시는 것으로 우리가 타고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주신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분복을 누리게 하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반드시 하고 돌아가야 할 “사명”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후에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사명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앤서니 라빈스는 “네 안에 잠든 거인을 다시 깨우라”라는 책을 쓰고 약 20여 년 후 2013년에 다시 썼습니다. 라빈스는 우리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1, 당신의 수준을 높여라.
우리가 잠든 거인을 깨우려면 우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변해야 되겠다는 소원이 있다면, 제일 먼저 당신의 수준(기준)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30년 전의 라빈스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더 이상 이런 것(목록)을 안 할 거야. 나는 이런 사람(목록)이 되고 싶어.’ 라빈스는 이런 것을 다 기록했습니다. 라빈스가 자신이 높여야 할 수준 항목을 다 적고 그대로 실천했을 때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브라함 링컨, 헬렌 켈러, 간디, 마르틴 루터 킹, 아인슈타인 등의 거인들도 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수준을 높이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2, 당신의 제한된 신념을 바꿔라.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려면 자신을 제한하는 신념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해놓고는 ‘난 못해’라고 한다면, 이미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제한하는 신념을 바꾸라고 할 때 신념은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명령’입니다. ‘넌 지금 형편이 이렇다. 이건 가능하고 저건 불가능하다. 네가 이건 할 수 있고, 저건 할 수 없다.’ 이렇게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바로 신념이라는 것입니다. 신념은 자신의 모든 생각, 모든 느낌, 모든 행동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기 위해서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우리의 신념 체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세워둔 나의 새로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고,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3, 당신의 전략을 바꿔라.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려면, 자신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 다음에는 그렇게 하는데 최상의 전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전략은 롤 모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결과를 이미 얻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가 뭘 하고 있는가, 그의 핵심 신념은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 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시간도 많이 절약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자동차를 굴리는데, 다시 바퀴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바퀴를 조율하여 더 좋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빈스가 높이라고 하는 “수준”의 목표가 바로 “비전”입니다. 라빈스가 바꾸라고 하는 “신념”이 “비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자신의 비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열정의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꾸준히 노력해서 비전을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끈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월트 디즈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디즈니랜드를 만드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고위층만 타던 자동차를 평민들도 다 탈 수 있게 하겠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두겠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어떤 비전, 목표를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자녀들은 몇 년 후에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키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업, 직장,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비전, 목표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늘의 비전”을 받고 나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예수를 나사렛 이단의 괴수, 신성 모독자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데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스데반 집사 순교 때도 바울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해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하늘의 비전”을 받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보던 바울이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예언된 천국의 메시아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비전을 보기 전의 라빈스는 고등학교 졸업에 빌딩 잡부였습니다.
비전을 본 후의 라빈스는 결국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라빈스는 본래 세계적인 명강사가 되겠다는 비전보다는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내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야겠다. 관련된 책을 다 읽고, 강의, 테이프 다 듣고, 만나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라빈스는 이런 비전을 실천해서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큰 인물이 된 것입니다.라빈스의 강의를 듣고 비전을 받아 인생이 바뀐 사람들도 많습니다. 10여년 전에 빌딩 잡부로 청소를 하던 라빈스가 헬기를 타고 그 빌딩 상공을 선회하다가 강연장으로 갔을 때, 강연장에는 예상 인원 2천 명을 훨씬 뛰어넘어 7천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강의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동차가 1마일이나 막혀 있었습니다. 라빈스가 헬기 착륙장에서 내릴 때 수백 명이 그를 둘러싸서 포옹을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과잉행동장애에다가 학습불가 판정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라”에서 가르쳐 준 원리를 활용해서 아들이 리탈린이라는 약을 끊게 되었습니다. 다시 테스트를 해 봤더니, 아들이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떤 신사는 그 책에서 배운 컨디셔닝을 활용해서 마약 코카인을 끊었습니다. 50대 중반의 부부는 결혼 15년 만에 이혼의 위기에 부딪혔다가 그 책에서 대인관계 법칙을 배우고 정상적으로 가정을 회복했습니다. 한 세일즈맨은 자신의 월 수입이 2천 불에서 1만 2천여 불로 뛰어 올랐습니다. 그것도 단지 6개월 만에, 어떤 사업가는 그 책에서 배운 감성경영 원리를 적용해서 18개월 만에 회사 수입이 3백 만 불 이상이 뛰었다고 했습니다.
라빈스 자신만 봐도, 10여 년 전의 잡부가 세계적인 강사로 변했습니다.
2013년에 20여 년 만에 ‘네 안에 잠든 거인을 다시 깨우라’를 쓰면서 자신의 유일한 변화는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해 더 감사하게 된 점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100여 개국에서 5천여 만 명을 섬기고 있고, 자신의 삶 세미나 참가자 4백여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습니까?
이상의 성공스토리는 다 현세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사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100세를 산다고 해도 현세는 한 점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세의 성공 스토리도 이렇게 놀라운 감탄을 자아낸다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바꿀 수 있는 구원 스토리는 얼마나 더 놀라운 감탄을 자아내겠습니까?
천상천하 최고의 “큰 인물”거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면 영원한 관점에서 인생이 완전히 바뀝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가문은 할머니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어떤 비전을 받고,
인생 전환점이 될 만큼 각성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각성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비전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바뀐 경험이 있습니까?
오늘도 하루 빈둥빈둥 보내십니까?
아니면 어떤 뚜렷한 비전에 따라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속에는 아직도 거인이 잠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거인을 깨우고 있습니까?
바울은 “하늘의 비전”을 받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미션을 감당할 때, 죽음의 위험과 협박이 눈앞에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감당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는 일사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바울은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할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죄 용서 받고, 천국을 유산으로 받게 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목숨 건 비전이 있습니까?
인생 건 비전이 있습니까?
인생에는 실패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결과만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하늘의 비전”을 보고 인생이 변했습니다.
“하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인생을 걸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미션” 을 이룰 때에 다메섹, 예루살렘, 유다, 이방인들의 땅, 심지어 당시의 땅 끝 서바나(스페인)까지 그리스도를 전하겠다는 “비전”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미션과 비전에 발동이 걸리면서 자기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운 것입니다.
바울처럼의 인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비전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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