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우~꾹 꾸꾸꾸
‘꾸우꾹 꾸꾸꾸’ 안 채 문 여닫는 인기척에 들려오는 소리다. 무엇을 알리려는 것인지도 모른 채 며칠을 보냈다. 주인장이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려는 몸짓인가.
봄에 청계 몇 마리와 일반 닭 서너 마리를 샀다. 닭장에 활개 치는 녀석들이 생겼다. 몸집이 작고 검은 빛을 띠는 청계는 구석구석 헤집고 다닌다. 가끔은 깃털을 세우고 발그스레 한 닭을 쫓아다니며 쪼아댄다. 일주일 틈을 두고 사들였는데 그 겨를에 텃세를 부리는 모양이다.
서너 달 자란 녀석이라 모이와 물만 넣어주면 할 일이 끝나는 듯하다. 이따금 배설물을 치우고 나면, 모아 놓은 채소 떡잎은 특별식이다. 상추나 배추 이파리를 넣어주고 돌아서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몸집이 커지면서 먹이 충당하는 일도 만만찮다. 이십 킬로 두 포대를 사서 포대 겉면에 날짜 표시를 해 둔다. 과연 며칠 동안 먹이게 될까.
일주일에 한 번 닭장을 둘러본다. 구석구석 살펴보지도 않고 모이 통과 물그릇부터 청소한다. 물통은 소모된 만큼 물받이에 보충이 되는 구조여서 한 통 가득 채워 주면 된다. 모이가 문제다. 어느 정도 양을 넣어줘야 하는지 아직 분간되지 않는다. 넉넉히 넣으면 뒤처리에 시간이 걸린다.
‘꾸우꾹 꾸꾸꾹’ 이전에는 내지 않던 소리를 듣는다. 이제 우는 목이 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지나쳤다. 닭 배설물을 치우다 한쪽 구석에 놓인 붉은색 플라스틱 통을 들여다보다가 헛웃음을 짓는다. ‘푸하하하하’이 녀석들이 울게 된 까닭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왕겨가 깔린 바닥에 푸르스름한 알 수십 개가 야트막한 산처럼 옹기종기 쌓여있다. 알을 낳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움큼 될 듯한 청계 두 마리가 일주일 동안 낳은 알은 겨우 대여섯 정도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림잡아 몇 주 걸려 낳은 모양이다. 성스럽게 거사를 치르고 소식을 알렸는데 주인이란 자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못마땅하였을꼬.
이튿날부터 대접이 달라진다. 평소 모이에 보태어 냉장고 안을 뒤져 잠자고 있던 색다른 먹이들이 준비된다. 작은 멸치 부스러기,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소고기 육포에 과일 껍질까지 동원이 된다. 더구나 냉동실 바닥에 움츠려 있던 생선 덩어리와 해 넘긴 쌀알도 모인다. 깃털이 발그레한 토종닭들은 덩칫값을 못 하고 있다. 자그마한 청계와 비교해 보탬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들려놓았는데 역할이 다르다. 먹이만 축내는 녀석과 알을 제공해 주는 이가 있으니 구분해 볼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이 녀석들도 밥 먹고 알을 생산하는 때를 기다려 보련다.
닭장 문을 열었다. 난데없는 참새가 떼지어 날아다녀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수그린다. 어느 틈새로 들어왔는지 수십 마리가 흩어져 도망가기에 바쁘다. 이따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불쑥불쑥 방문한다. 모이가 끊이지 않고 보충되고 있으니 먹이를 찾으려 이곳저곳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주인이 매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한두 마리도 아닌 새를 막을 방법을 궁리한다.
오일장에 들러 그물을 샀다. 기존 설치된 철망에 촘촘한 그물망을 둘러친다. 막는 자와 그것을 뚫고 닭장에 들어오는 짐승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모자를 쓰고 거미줄을 비껴가며 벽면을 따라 그물을 내린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바닥에서 풍겨오는 닭똥 특유의 냄새는 손놀림을 재촉한다. 출입구부터 네 면에 나름으로 빈틈이 없도록 구석구석 새가 날아들지 못하게 방책을 세웠다. 만세! 쾌재를 외치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닭장을 나선다.
동이 트고 닭장 문을 열었다. 화들짝 놀란 참새들의 날갯짓이 위협을 받을 정도다. 어느 틈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녀석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이리 날았다가 저리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괘씸한 생각에 옆에 세워놓은 대나무 막대를 손에 들고 휘둘러 보지만 가당치 않다. 허공에 헛매질 하다가 철망만 망가뜨렸을 뿐 소득이 없다. 닭장에 날아 들어온 새를 잡으려다 애먼 닭 때려잡을 기세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잃을까 보다.
녹색 그물망을 꺼낸다. 지금껏 덧댄 망에 둘러친다. 이렇게 촘촘하게 두르는 노동력을 보탰다. 참새가 들어올 틈이 없겠지 하며 닭장을 벗어난다. 아내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 해가 질 무렵 집에 돌아와 지금까지 채비한 닭장으로 다가가는데 새 소리가 요란하다. 언제 그물 치는 작업을 했나 싶게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다닌다. 몰려다니다 빠져나가는 구멍을 보란 듯 찾아 하나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새 구멍 막는 짓거리를 놓았다. 사람이 자연을 거역할 순 없나 보다. 나만 살겠다고 아무리 진을 치고 테두리를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 모이를 넉넉하게 넣어주고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혼자 살기보다 함께 생활해 나간다. 자연 속에 인간은 공존하며 살아간다. 아니 자연을 거역하고 살아갈 수 없다. 과학의 힘을 빌리고 첨단을 동원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뿐이다.
주변 관찰하는 습관이 옷깃에 이 훑듯 하나하나 챙기지 못한 초보 얼치기 주인 때문에 청계가 낳은 알이 쌓이고 쌓였다. 이제는 며칠에 한 번 닭장을 둘러보고 알을 거두어들인다.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매번 안겨준다. 푸르스름한 알이 몇 개씩 모여 한 꾸러미를 만든다.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 하는 일이 가끔 생긴다. 신체 내·외부에서부터 사회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말이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중요한 일과 위험한 징조까지 여러 가지다. 보내오는 신호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손실을 보거나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도 있다. 이제 개미가 먹이를 물고 이동하는 소리도 소홀히 하지 않을 듯이 주변 반응에 귀 기울여보자. 무슨 일이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아닐까. 관심과 관찰로 다가오는 신호를 무심코 넘겨버려 당하는 고통을 줄이자. 나부터 작은 일에라도 적절한 대응을 하자. 꾸우꾹 꾸꾸꾹 울림이 다가온다. 닭장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