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10권
10. 제연품(諸緣品)
93) 올수(兀手) 비구의 인연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당시 성중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재보를 지닌 장자가 있었다. 그가 어떤 문벌 좋은 집의 딸을 골라 부인으로 맞이하여 온갖 기악(伎樂)을 즐겨 오다가, 그 부인이 임신을 하여 열 달 만에 아들아이를 낳으니, 아이의 손이 뭉툭하여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자마자 곧 말을 하되,
‘이 손이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고,
깊이 애석해 여기는 기색을 나타내므로, 그 부모가 이상하게 생각한 끝에 상사(相師)를 불러 아이의 상을 보게 하였더니,
상사가 상을 다 보고 나서 그 부모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출생할 때 무슨 상서로운 일이 있었습니까?”
부모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출생하자마자 곧 말을 하되,
‘이 손이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고 외쳐서,
아이의 이름을 올수라고 하였소.”
그 뒤 아이가 점점 장대하여 성품이 더욱 유순하고 총명하며 지혜로웠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바깥에 나가 유행하다가 기환정사에 이르러서 불 세존의 그 32상(相) 80종호(種好)로부터 마치 백천의 해와 같은 광명이 비춤을 보고는 곧 환희심을 내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물러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 갖가지 묘법을 설해 주시자 아이는 이내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를 얻는 즉시 집에 돌아가 그 부모에게 출가 입도할 뜻을 밝혔는데, 그 부모 역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이때 아이는 곧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출가하기를 원하므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수염과 머리털이 다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으며, 부지런히 닦고 익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3명(明)ㆍ6통(通)ㆍ8해탈(解脫)을 구족하여 온 천상과 세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이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올수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출생하자마자 말을 할 수 있는 반면 뭉툭하여 손이 없었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이제 세존을 만나 도의 자취[道跡]를 얻게 되었나이까?”
이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이 현겁(賢劫)에 가섭(迦葉)부처님께서 바라날국에 출현하셨을 때 두 비구가 있었으니, 한 사람은 나한(羅漢)이고 또 한 사람은 범부로서 설법하는 법사였다.
그때 민중들이 서로 앞을 다퉈 초청하자 항상 법사를 모시고 시주들의 초청을 받아 왔는데,
어느 날 법사의 곁에 있지 못했더니 법사가 다른 이를 데리고 갔으므로 진심을 내어 악설을 퍼부었다.
‘내가 항상 당신의 발우를 씻고 물을 공급해 주었는데 이제 다른 이를 데리고 갔으니, 이제부터 다시 그대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면 내 손을 없애 버리겠노라.’
이같이 말한 다음 각자가 이별하고 동행하지 않았는데, 이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그 뒤 5백 세(世) 동안 과보를 받아 왔으니,
이 때문에 올수 비구가 출생하자마자,
‘이 손이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 외쳤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 법사 비구를 저주하고 손을 없앨 것을 맹세한 이가 바로 지금의 올수 비구이다.
그러나 그가 과거세에 있어서 성인(聖人)을 공양했기 때문에 이제 나를 만나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올수 비구의 인연을 말씀하실 적에 여러 비구들이 각자의 몸ㆍ입ㆍ뜻에 대한 업을 닦아 생사를 싫어함으로써 그 중에 혹은 수다원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혹은 아라한과를, 혹은 벽지불의 마음을, 혹은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낸 자도 있었다.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