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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50권
20. 발취품(發趣品)을 풀이함②[2]
[제7지]
【논】 해석한다.
나[我] 등의 스무 가지 법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나니, 얻을 수 없는[不可得] 인연에 대해서는 앞에서 여러 가지로 설명한 것과 같다.
나라는 견해[我見]와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ㆍ부처님께 의지한다는 견해[佛見]ㆍ승가에 의지한다는 견해[僧見] 등은 바로 중생공(衆生空)에 들어가므로 이런 견해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그 밖의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내지 계견(戒見)은 바로 법공(法空)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문】 그 밖의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인과에 대한 견해[異見]란 어떤 것인가?
【답】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차츰차츰 인과(因果)가 된다.
이 법 가운데에서 집착하는 마음으로 모양을 취하고 견해를 내나니, 이것을 인과에 대한 견해라 한다.
이른바 원인이 아닌데도 원인이라 말하거나 혹은 원인과 결과가 하나다 다르다 하는 따위이다.
“공을 구족(具足)한다.” 함은,
만일 보살이 18공(空)을 남김없이 잘 수행하면 이것을 바로 공을 구족한다고 한다.
또한 두 가지의 공, 즉 중생공(衆生空)과 법공(法空)을 행하면 이것을 바로 공을 구족한다고 하며,
또한 만일 보살이 필경공(畢竟空)을 잘 행하면서 그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바로 공을 구족한다고 한다.
【문】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이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자상공(自相空)만을 말씀하셨는가?
【답】 이 세 가지 공은 모두 다 자상공(自相空)이다.
제6지에 머무르는 보살은 복과 덕 때문에 근기가 영리하며, 근기가 영리하기 때문에 모든 법을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나니,
이 때문에 제7지 가운데에서는 자상공으로써 공을 갖춘다고 한다.
부처님은 때로는 유위공(有爲空)과 무위공(無爲空)을 말씀하시어 공을 구족한다고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불가득공(不可得空)을 말씀하시어 공을 구족한다고 하신다.
“무상(無相)을 증득한다.”라고 함은,
형상 없는 것이 곧 열반이며 증득할 수는 있되 닦을 수는 없나니,
닦을 수 없기 때문에 “안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구족한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무작(無作)을 안다.”라고 함은, 세 가지 일[三事]을 통달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두 가지 일을 알고 다시 뜻[義]으로 그 이름을 세우는 것이다. 무작은 단지 이름만을 아는 것이다.
“3분(分)이 청정하다.”라고 함은,
이른바 10선도(善道)에서 몸의 세 가지 [身三]와 입의 네 가지[口四]와 뜻의 세 가지[意三]를 바로 3분이라 한다.
위에서는 세 가지의 해탈문(解脫門)을 설명했기 때문에 이 가운데에서는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3분이 청정하다고 함은,
혹 어떤 사람은 신업(身業)은 청정하면서 구업(口業)이 청정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구업은 청정하면서 신업이 청정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신업과 구업은 청정하면서 의업(意業)이 청정하지 않기도 하다.
혹은 세간의 세 가지 업은 청정하면서도 아직 집착을 여의지 못한 이도 있으나, 이 보살은 세 가지 업도 청정하고 그리고 집착도 여의었기 때문에 이것을 3분이 청정하다고 한다.
“온갖 중생 가운데에서 자비의 지혜를 구족한다.”라고 함은,
비(悲)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중생연(衆生緣)과 법연(法緣)과 무연(無緣)이다.
이 가운데에서 무연대비를 말하여 구족한다고 하나니, 이른바 법의 성품[法性]이 공하고 나아가 실상(實相)도 또한 공한 이것을 무연대비라 한다.
보살은 실상에 깊이 들어간 연후에 중생을 가엾이 여기나니,
비유컨대 마치 외아들을 가진 사람은 좋은 보물을 얻게 되면 오직 아들만을 몹시 사랑하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온갖 중생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함은,
이른바 세계를 청정하게 함이 구족되었기 때문이다.
【문】 만일 중생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할 수 있는가?
【답】 보살은 중생들로 하여금 10선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는 것이 된다.
비록 장엄은 한다 하더라도 아직 막힘없는[無礙] 장엄은 되지 못하거니와 지금의 이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면서 중생이라는 모양을 취하지 않고 모든 선근과 복덕이 청정하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막힘없는 장엄이다.
“온갖 법을 동등하게 관한다.”라고 함은,
마치 법의 동등함[法等]과 인(忍)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에 있어서 더 하거나 덜하지 않는다.”라고 하신다.
“모든 법의 실상을 안다.”라고 함은, 마치 갖가지 인연으로 널리 설명한 것과 같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생멸이 없는 모든 법의 실상 가운데에서 믿어 받고 통달하며 막힘이 없으면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무생지(無生智)”라고 함은, 처음에는 인(忍)이라 하고 나중에는 지(智)라 하며, 거친 것[麤]을 인이라 하고 미세한 것[細]을 지라 한다.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름과 물질[名色]이 생기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신다.
“모든 법이 한 모양[一相]임을 말한다.”라고 함은,
보살은 안팎의 12입(入)이 모두 악마의 그물[網]이요 거짓이며 진실하지 않음을 아나니, 이 가운데에서 6식(識)을 내는 것도 역시 악마의 그물이요 거짓이라 함을 안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
오직 둘이 아닌 법[不二法]뿐이다.
눈[眼]도 없고 빛깔[識]도 없으며, 나아가 뜻[意]도 없고 법(法) 등도 없는 이것을 바로 진실이라 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12입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항상 갖가지의 인연으로써 이 둘이 아닌 법을 말하는 것이다.
“분별하는 모양을 깨뜨린다.”라고 함은,
보살은 이 둘이 아닌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반연하는 법에 대해서 그것이 남자다ㆍ여자다ㆍ길다ㆍ짧다ㆍ크다ㆍ작다는 등으로 분별함을 깨뜨린다.
“생각[憶想]을 낸다.”라고 함은,
이 보살은 먼저 아견(我見)과 변견(邊見) 등의 삿된 견해를 굴린 연후에 도(道)에 들어가는데, 지금은 법에 대한 견해[法見]와 열반에 대한 견해[涅槃見]를 굴림으로써 모든 법에서 일정한 모양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열반에 이른다.”라고 함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견해를 내지 않은 채 곧장 부처님의 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번뇌를 변화시킨다.”라고 함은,
보살은 복덕과 계율을 지니는 힘으로써 큰 번뇌를 꺾어 조복하고 안온하게 도를 수행하면서도 오직 애욕[愛]과 견해[見]와 자만[慢] 등의 미세한 것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미세한 번뇌까지도 여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보살은 진실한 지혜로써 이 번뇌가 바로 실상(實相)임을 관하나니, 비유컨대 마치 신통 있는 사람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바꾸어 깨끗한 것이 되게 하는 것과 같다.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하는 진리”라고 함은,
보살은 처음의 세 가지 지(地)에서는 지혜가 많고 선정은 적으므로 아직 마음을 잘 가다듬지 못하고 뒤의 세 가지 지에서는 선정이 많고 지혜가 적으므로 보살의 지위에 들지 못했거니와,
지금은 중생도 공하고 법도 공하며, 선정과 지혜가 동등하기 때문에 안온하게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아비발치의 지위[阿毘跋致地]로부터 점차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됨을 말한다.
“지혜의 자리에서 뜻을 조복한다[慧地調意]”라고 함은,
이 보살은 먼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3악도(惡道)를 기억하면서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마음과 뜻을 조복하였거니와,
지금은 모든 법의 실상을 알기 때문에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은 까닭에 조복하게 된다.
“마음이 고요히 사라진다[心寂滅]”라고 함은,
보살은 열반을 위한 까닭에 먼저는 5욕(欲) 가운데에서 5정(情)은 꺾어 조복하면서도 뜻[意情]만은 조복하기 어려웠거니와,
지금은 제7지(地)에 머물러 있으므로 뜻까지도 고요히 사라지게 된다.
“막힘이 없는 지혜[無礙智]”라 함은,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얻었기에 온갖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않은 법 가운데에서 막힘이 없고,
이 도의 지혜[道慧]를 얻었기에 온갖 중생을 거느리고 진실한 법에 들게 하면서 막힘이 없는 해탈을 얻으며,
부처님 눈[佛眼]을 얻었기에 온갖 법 가운데에서 막힘이 없다.
【문】 이 제7지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부처님 눈을 얻는다고 하는가?
【답】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의 눈을 배워야만 하나니, 모든 법에 막힘이 없음이 마치 부처님 눈과 같게 된다.
“애욕에 물들지 않는다.”라고 함은,
이 보살이 비록 제7지에서 지혜의 힘을 얻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전생에 지은 인연이 있어서 이 육신(肉身)이 있게 되었고,
선정에 들었을 때는 집착하지 않다가 선정에서 나왔을 때는 집착하는 기운이 있어서 좋은 사람을 보면 친애하게 되며,
혹은 이 제7지의 지혜와 진실을 사랑하게도 되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6진(塵)에 대하여 버리는 마음[捨心]을 행하면서 좋거나 나쁜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라고 하신다.
제7지(地)를 마친다.
[제8지]
“중생의 마음에 순응한다.”라고 함은,
이 보살이 제8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 나아가는 바를 따라 관하고, 움직이고 사유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따라 관하며 지혜로써 분별하되,
“이 중생은 영원히 제도할 수 있는 인연이 없다.
이 중생은 한량없는 아승기겁(劫)을 지난 연후에야 제도할 수 있다.
이 중생은 혹은 한 겁이나 두 겁, 나아가 열 겁이 지나야 제도할 수 있다.
이 중생은 혹은 한 세상이나 두 세상, 나아가 금세(今世)에서 제도할 수 있다.
이 중생은 지금 당장에 제도해야 할 자이다.
이 사람은 지혜가 성숙되었다. 이 사람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성문승으로서 제도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벽지불승으로서 제도할 수 있다.”라고 안다.
비유컨대 마치 용한 의사가 병든 이를 진찰하면서,
“오래되어야 낫겠다, 얼마 가지 않아 낫겠다, 치료할 수 있다, 치료할 수 없다.”라고 아는 것과 같다.
“모든 신통을 행한다.”라고 함은,
먼저는 모든 신통을 얻었고 지금은 자유자재하게 행하면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에 이를 수 있다.
보살이 이 7지 안에 머무를 때에는 열반을 취하려 하면서 그때에 갖가지의 인연이 있게 되는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옹호하므로 도로 마음을 내어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장엄한 신통을 좋아하여 마음대로 부리면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 안에서 거리끼는 바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보면서도 또한 부처님의 나라라는 모양도 취하지 않는다.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관찰한다.”라고 함은,
어떤 보살은 신통의 힘으로써 시방으로 날아가서 모든 청정한 세계를 보고는 모양을 위하여 자기의 나라를 장엄하려 하기도 하고,
어떤 보살은 부처님께서 시방으로 데리고 가서 청정한 세계를 보여주면 청정한 나라의 모양을 취하여 스스로 원(願)과 행(行)을 짓기도 하나니,
마치 세자재왕부처님[世自在王佛]께서 법적(法積) 비구를 데리고 시방으로 가서 청정한 세계를 보여 준 것과 같다.
혹 어떤 보살은 자신은 본국에 머물러 있으면서 천안(天眼)으로써 시방의 청정한 세계를 보기도 하나니,
처음에는 청정한 모양을 취하고 뒤에는 집착하지 않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도로 버리게 된다.
“보게 된 부처님의 나라와 같이 자신도 그 나라를 장엄한다.”라고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제8지(地)를 전륜지(轉輪地)라 한다.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는 가는 데마다 거리끼거나 막히는 일도 없고 적(敵)도 없듯이,
보살이 이 지(地) 안에 머무르면 법의 보배비를 내리어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되 장애가 없으며, 또한 보게 된 청정한 나라의 모양을 취하여 자신도 그 나라를 장엄하게 된다.
“여실히 부처님 몸[佛身]을 관한다.”라고 함은,
모든 부처님의 몸은 “마치 환과 같고 마치 변화한 것과 같으며,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에 속한 것도 아니며, 길거나 짧거나 여러 빛깔은 그 중생이 전생에 지은 업의 인에 따라 보게 된다.”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법신(法身)을 보는 이는 바로 부처님을 뵙는다.”라고 하신다.
법신이라 함은 법의 얻을 수 없는[不可得] 공이니, 법의 얻을 수 없는공이란 모든 인(因)과 연(緣)의 편에서 생기고 그 법은 자기 성품[自性]이 없는 것이다.
“위ㆍ아래의 모든 근기[根]를 안다.”라고 함은,
마치 10력(力)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보살은 먼저 온갖 중생들이 마음으로 행한 바를 알면서,
“그 누가 둔한가, 그 누가 영리한가, 그 누구의 보시가 많은가, 그 누구의 지혜가 많은가?”를 알면서 그 많은 것에 의해 제도하고 해탈시킨다.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한다.”라고 함은,
두 가지의 청정함이 있나니,
첫째는 스스로 그의 몸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여 청정한 도를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와 나의 인연이 청정한 까닭에 원하는 바대로 청정한 세계를 얻게 된다.
“여환삼매(如幻三昧)에 들어간다.”라고 함은,
마치 환술사가 한 곳에 서서 환술로 만든 일을 세계에 가득 채우는 것과 같나니,
이른바 네 종류의 병사들[兵衆]과 궁전과 성곽과 음식 및 노래하고 춤추고 죽이고 살리고 근심하고 괴롭게 하는 것 등이다.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삼매 안에 머물면서 시방세계를 변화하여 그 속에 두루 차게 하고는 먼저 보시 등을 행하여 중생들을 충족시키고 다음에는 법을 설하여 교화하면서 3악도(惡道)를 파괴한다.
그런 뒤에 중생들을 3승(乘)에 편히 세우면서 온갖 이익되는 일을 성취시키지 않음이 없지만, 이 보살의 마음은 동요하지도 않고 또한 마음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는다.
“항상 삼매에 들어간다.”라고 함은,
보살이 여환삼매 등을 얻었을 때에는 부린 바의 마음으로 짓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몸을 바꾸어 보생삼매(報生三昧)를 얻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빛깔을 보면서 마음이나 힘을 쓰지 않듯이,
이 삼매 안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제도하되 안온하여 여환삼매보다도 수승하며, 저절로 일이 성취되면서 힘을 들이지 않나니,
마치 사람이 재물을 구할 때에 힘을 들여서 얻는 이도 있고 저절로 얻는 이도 있는 것과 같다.
“중생에게 알맞은 선근(善根)에 따라 몸을 받는다.”라고 함은,
보살이 두 가지의 삼매와 두 가지의 신통으로 행득(行得)과 보득(報得)을 얻고서 어떠한 몸으로써, 어떠한 언어로써, 어떠한 인연으로써, 어떠한 일로써, 어떠한 도(道)로써, 어떠한 방편으로써 할 것인가를 알면서 그들을 위하여 몸을 받는 것이다.
이에 짐승의 몸까지 받으면서 그들을 교화하고 제도하게 된다.
제8지(地)를 마친다.
[제9지]
“그지없는 세계에서 제도할 바의 몫을 받는다.”라고 함은,
한량없는 아승기 시방세계의 6도(道) 안의 중생으로서 이 보살의 교화를 받아 제도되어야 할 중생들을 제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세계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청정한 세계가 있고 청정하지 않은 세계가 있으며 청정함과 청정하지 않음이 함께 있는 세계가 있다.
이 세 가지 세계 안의 중생들로서 제도해야 되고 이익이 있어야 할 이들이면 모두 거두어들인다.
마치 등불을 켜는 것은 눈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지 눈이 먼 이들을 위해서가 아닌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혹은 먼저부터 인연이 있는 이가 있기도 하고 혹은 처음 인연이 시작된 이가 있기도 하다.
또한 삼천대천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하여 일시에 생겼다가 일시에 소멸하는데,
이와 같은 등이 시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가 바로 한 부처님 세계[一佛世界]이다.
이와 같은 한 부처님 세계의 수(數)가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가 바로 한 부처님 세계의 바다[一佛世界海]이며,
이와 같은 부처님 세계의 바다 수가 시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가 바로 부처님 세계의 종류[佛世界種]이며,
이와 같은 세계의 종류가 시방으로 한량없이 많은 이것을 바로 한 부처님의 세계[一佛世界]라 한다.
이 온갖 세계 안에서 이와 같은 몫을 취하게 됨을 바로 한 부처님께서 제도할 몫[一佛所度之分]이라 한다.
“바라는 대로 얻는다.”라고 함은,
이 보살이 복덕과 지혜를 완전히 갖추었기 때문에 원마다 이루지 않음이 없다.
듣는 이는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를 제도할 몫을 듣게 되니, 의심하면 얻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그 다음에 원한 바가 뜻대로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6바라밀이 구족된다.”라고 하신다.
다섯 가지 바라밀[五度]은 곧 복덕을 구족하고 반야(般若)는 곧 지혜를 구족한다.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의 말을 안다.”라고 함은,
나는 앞에서 설명하기를,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면 원한 바가 뜻대로 된다.”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갖가지 말을 알아듣는 것은 바로 바라는 일이다.
또한 보살은 전생 일을 아는 지혜[宿命智]를 얻어서 청정한 까닭에 곳곳마다 태어났던 곳의 온갖 말을 안다.
또한 원지(願智)를 얻은 까닭에, 이름을 세워야 할 것을 안다면, 마음으로 갖가지 이름과 언어를 짓게 된다.
또한 보살은 중생의 말을 아는 삼매[解衆生語言三昧]를 얻기 때문에 온갖 언어를 통달하여 막히는 곳이 없게 되며,
또한 스스로가 4무애지(無礙智)를 얻고 또한 다시 부처님의 4무애지를 배우는 것이니, 이 때문에 중생들의 말과 음성을 알게 된다.
“태 안에 계심[處胎]이 성취된다.”라고 함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한량없는 도솔천(兜率天)의 모든 하늘들에 에워싸여 공경과 공양과 시중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태 안으로 들어가신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의 어머니는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으셨기 때문에 뱃속이 넓고 크기가 한량이 없어서 온갖 삼천대천세계의 보살과 하늘ㆍ용ㆍ귀신들이 모두 드나들 수 있으며,
태 안에는 궁전과 대관(臺觀)이 있고 먼저 평상 자리를 장엄하여 비단 번기와 일산이 걸리고 꽃을 뿌리면서 향을 사르나니, 이 모두는 보살의 복덕과 업의 인연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보살은 그곳에 내려와 계시게 되며,
또한 삼매의 힘 때문에 내려와 짐짓 어머니의 태 안에 드시지만 도솔천 위에는 예전 그대로 계신다.”라고 한다.
“태어남이 성취[生成就]된다.”라고 함은,
보살이 태어나려 할 때에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이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하며,
이때에는 7보(寶)로 된 연꽃이 저절로 생기면서 어머니 태 안으로부터 한량없는 보살들이 먼저 나와서 연꽃 위에 앉아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기다리고,
보살과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선성(仙聖)과 옥녀(玉女)들은 모두 손을 모아 일심으로 보살의 탄생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보살이 어머니의 오른 겨드랑이로부터 나오시는데,
마치 보름달이 구름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으며,
큰 광명을 놓으면서 한량없는 세계를 비춘다. 이때에 큰 명성(名聲)이 시방세계에 가득히 차면서 부르짖기를,
“아무 나라에 보살이 맨 마지막 몸으로 태어나신다.”라고 한다.
혹 어떤 보살은 연꽃에서 변화로 태어나기도 하는데,
네 종류의 태어남[四生] 가운데에서 보살은 태생(胎生)과 화생(化生)으로 탄생하게 된다.
4종의 사람 가운데에서 보살은 찰리(刹利)나 바라문(婆羅門)의 두 성바지 안에서 태어나나니,
이 두 가지 성바지 안에서 태어나면 사람들이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집안이 성취[家成就]된다.”라고 함은,
바라문의 집안은 지혜가 있고 찰리의 집안의 세력이 있으며, 바라문은 내생을 이익되게 하고, 찰리는 금생을 이익되게 한다.
이 두 가지 집안은 세상에 이익을 주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이 집안에서 태어나게 된다.
또한 모든 공덕과 예법을 숭상하는 집안으로서 이른바 물러나지 않는 생[不退轉生]이니, 이것을 집안이 성취된다고 한다.
“성씨가 성취[姓成就]된다.”라고 함은,
보살은 도솔천 위에서 세간의 어느 성씨가 귀하고 중생들을 거두고 있는가를 자세히 살피신 뒤에 곧 그 성씨 안에 와 태어나신다.
마치 일곱 부처님[七佛] 가운데에서 처음 세 분 부처님은 교진여(憍陳如) 성씨 안에서 나셨고,
다음의 세 분 부처님은 가섭(迦葉) 성씨 안에서 나셨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교담(憍曇) 성씨 안에서 나신 것과 같다.
또한 보살이 처음에 깊이 귀의하는 마음이 견고하면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성씨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성씨이니, 이때에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기운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마치 성문법(聲聞法) 중에서의 성(姓)ㆍ땅[地]ㆍ사람[人]과 같다.
“권속이 성취[眷屬成就]된다.”라고 함은,
이 모두가 지혜 있는 사람과 착한 사람이어서 태어나는 세상마다 공덕을 쌓은 이들이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순수한 보살로서 권속을 삼는다.”라고 하신다.
마치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 중에서 말씀한,
“구비야(瞿毘耶)는 바로 큰 보살이며 온갖 권속은 모두가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에 머무른 보살들로서 방편과 삼매와 변화의 힘으로써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어 함께 권속이 되었으니,
마치 전륜성왕의 거사보(居士寶)가 야차와 귀신들을 사람의 몸이 되게 하여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출가가 성취[出家成就]된다.”라고 함은,
마치 석가모니 보살이 밤에 궁전의 모든 채녀(婇女)들을 보자 모두가 죽은 형상과 같았고,
시방의 모든 하늘과 귀신들은 번기와 꽃과 공양 거리를 가지고 와 맞이하면서 모시고자 했다.
이때에 차닉(車匿)은 비록 먼저 정반왕(淨飯王)의 칙명을 받고 있었으나 보살의 뜻에 따라 스스로 말을 끌고 왔고, 사천왕(四天王)의 사자(使者)도 말의 발을 받쳐 주어서 성을 넘어 나가시도록 했다.
모든 번뇌와 악마의 사람을 깨뜨리게 하기 위하여 온갖 사람들이 궁전에 있을 적에 추태를 보이게 된 것이니, 이와 같이 큰 공덕을 지닌 귀한 사람조차도 오히려 출가하셨거늘 하물며 범부나 하찮은 사람들이겠는가?
이와 같은 등의 인연을 출가가 성취된다고 한다.
“불수를 장엄함이 성취[莊嚴佛樹成就]된다.”라고 함은,
보리수(菩提樹)를 장엄한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부처님은 이 가운데에서 스스로 말씀하시되,
“이 보리수는 황금으로 뿌리를 삼고, 7보(寶)로 줄기와 마디와 가지와 잎을 삼으며, 줄기와 마디와 가지와 잎에서는 광명이 나와 시방의 수 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춘다.”라고 하신다.
혹 어떤 부처님은 보살의 7보로써 불수를 장엄하기도 하셨고,
혹은 어떤 부처님은 그렇지 않기도 하셨으니,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은 불가사의하여서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의 장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온갖 모든 착한 공덕이 원만하게 이룩되고 구족된다.”라고 함은,
보살이 제7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나니,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이 깊고 크기 때문에 온갖 공덕이 완전히 갖추어진다고 한다.
아라한과 벽지불 같은 이는 자신의 이익은 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이의 이익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구족한다고 하지 못하며,
모든 하늘과 작은 보살[小菩薩]은 비록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아직 번뇌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두루 갖추었다고 하지 못한다.
이것을 공덕이 구족된다고 한다.
제9지(地)를 마친다.
[제10지]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함은,
보살이 이와 같이 보리수 아래 앉아 제10지(地)에 들어가는 것을 법운지(法雲地)라 하는데,
비유컨대 마치 큰 구름에서 비가 쏟아지면서 연일 끊임없이 내리는 것처럼,
마음이 저절로 한량없고 끝이 없이 청정한 모든 부처님의 법이 생각생각마다 우러나옴이 한량없는 것이다.
그때에 보살은 생각하기를,
‘욕계(欲界)의 마왕의 마음을 아직 항복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눈썹 사이에서 광명을 놓아 백억의 악마의 궁전을 어둡게 해 나타나지 못하게 하자,
악마는 이내 성을 내고 괴로워하면서 그의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와서는 보살을 핍박하게 된다.
보살이 악마를 항복 받고 나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그의 공훈을 경하하게 되며 모두 눈썹 사이에서 놓았던 광명은 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에 10지(地)에서 얻게 된 공덕은 변하여 부처님의 법이 되고 온갖 번뇌와 습기가 끊어지면서 무애해탈(無礙解脫)을 얻으며,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대자대비(大慈大悲) 등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갖추게 된다.
이때에 땅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과 향을 비내리며 모든 보살과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합장하며 찬탄한다.
이때에 큰 광명이 나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어 주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하늘과 사람들은 큰소리로 부르짖되,
‘아무 지방 아무 나라의 아무개 보살이 도량(道場)에 앉아 불사(佛事)를 갖추어 이루셨으니, 바로 그 광명이다.’라고 하게 된다.
이것이 제10지에서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은 이 가운데에서 다시 말씀하시되,
“제10지의 모양은 이른바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 때문에 간혜지(乾慧地)에서 보살지(菩薩地)까지를 지나서 불지(佛地)에 머무른다.”라고 하시니,
불지가 곧 제10지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10지(地)를 행하나니, 이것을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