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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령
모래시계 / 안민
그러니까 이건 난해한 스토리다 시간이 감금된다는 것, 지평선이 허물어진다는 것, 아무리 버둥거려도 네 안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네 운명은 사막을 견디는 것, 주위를 돌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데 너는 수북했겠지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건 너인 동시에 나였다 그즈음 거대한 언덕이 또 다른 너와 나로 분열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가해한 지대에서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네가 속한 이곳도 블랙홀, 네 원적에선 아직도 푸른 두건을 두른 자들이 몸을 횡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알몸의 안구들이 네 몸을 횡단 한다 너는 죄명도 없이 유죄다 눈들이 헉헉거리며 너를 가늠 한다 어떤 눈은 탈레반처럼 날카롭다 어떤 눈은 대상처럼 탐욕적이다 그들의 눈 또한 주르륵 흘러내린다 폭염과 침묵 속에서
흘러라 흘러, 삭막한 육신이여,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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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시산맥작품상에 안민 시인의 [모래시계]를 추천하며/ 이령(시산맥작품상 예심위원)
운명은 사막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의 제목인 모래시계의 함의는 시인이 바라보는 인간의 삶이다. 그것은 아마도 발버둥 치지만 사막은 또 다른 사막을 불러올 뿐, 꽃이 피지 않는 불모의 땅, 그곳에서 순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원적 고독에 대한 표상이며 그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시인의 애모쁜 일종의 방백처럼 들린다. 순식간에 독자로 하여금 모래시계로 홀릭 하게 만든다.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 불모의 땅에 고독한 너와 나는 함께 살고 있다. 시인 자신 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을 깊은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by 제임스 딘의 명언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 유한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어쩌면 시공간을 넘어서는 무한성 안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시인은 이 물음에서 시적발아를 일으켰을 것이다. 선택적 출생이 있을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가 의도한 적 없지만 모래시계 같은 세상에 이미 존재한다. 시인의 생각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순환하는 것처럼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도 끝없이 순환한다는 생각, 즉 윤회라는 깨달음에 닿아있다.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지. 혹은 아무것도 아니다. by 헬렌 켈러의 명언처럼 시인은 결국 삶과 죽음은 또 다른 삶을 예견하고 나와 너는 그러한 생의 연속성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다양성도 실상 공통성 안에서 그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겠다.
시인은 말한다.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그러나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은 다양성을 이해하고 보듬는 마음, 세상을 향해 던지는 시인의 따뜻한 호명이며 이해하려고 하는 다짐, 즉 치열한 독백이 아닐까? 안민의 ‘모래시계’를 재독하며 오버랩 되는 라틴어 격언은 그가 이 시에서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Carpe Diem! Memento Mori! 현재를 즐기되, 곧 죽음이 다가옴을 기억하라!
안민 시인의 시, ‘모래시계’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의 내부로 빠져 함께 고민하고 답을 구하게 하는 재독의 힘이 있다. 존재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겸손한 물음과 사물, 현상에 대한 집요한 천착이 있기에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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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령
첫댓글
시산맥 작품상 예심위원이 되신 이령 회장님께 먼저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시감상을 하니 한 권의 철학서를 넘긴 듯합니다. 오늘도 공간에 갇힌 모래알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아니 지금도 흘러내리고 있을 뿐입니다.
도올하면서 홀로인 모래라면 시가 시일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 격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