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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모토다. 발 닿는 데서 자고 발 닿는 데로 가서 자연을 마음껏 즐기고 오자!”
30년 동안 달콤한 목소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 이문세 선배가 이번 여행에 참가하는 설레발산악회의 한기철 선배, 나, 그리고 막내 상미에게 이번 여행에 대해 그렇게 선언했다. 여행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출발? 일행 모두는 불안한 가운데서도 ‘콜~’. 그렇게 14일간의 ‘뉴질랜드(Newzealand) 남섬 좌충우돌 캠퍼밴(Campervan)여행’은 시작되었다.
인천공항을 출발, 호주 시드니를 거쳐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지(Christchurc)에 도착한다. 하늘은 맑고 공기도 상쾌하다. 2010년 9월과 2011년 2월,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1만 채 이상의 집을 철거하고 10만 채 이상의 집을 수리해야 했던 아픔이 있는 뉴질랜드 제2의 도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인 만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캠퍼밴이란? 그 자체가 낭만
김태훈(INL 대표·www.campervan.co.kr)은 설레발산악회 회원이자 뉴질랜드 교포다. 12년 전 뉴질랜드에서 캠퍼밴 여행이라는 새 장르를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번 여행은 이문세 선배가 제안했지만, 우리가 ‘무계획’이라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현지에 믿는 후배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캠핑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캠퍼밴 여행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캠핑문화가 발달한 뉴질랜드나 캐나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는 일반화된 여행 패턴이다.
캠퍼밴 여행은 발길 닿는 곳, 우리가 머물고자 하는 곳이 숙소가 된다. 인원수에 맞는 침구세트부터 화장실까지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고 가스스토브와 도마, 칼, 수저, 나이프 등 모든 주방용품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매번 개인짐을 정리하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동 중에 편안히 누워 풍경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여정을 같이 할 캠퍼밴은 6인용으로 5명이 여행하기에 넉넉하다. 또한 야영을 위해 텐트 한 동과 따뜻한 침낭까지 가져왔다. 커다란 남섬 지도를 캠퍼밴 내부에 붙이고 옆에는 형광펜도 달아 놓았다. 앞으로 우리가 지나칠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국마트와 키위마트에서 여정 동안 필요한 식량을 구매하고 남섬에서 가장 예쁜 도시 퀸스타운(Queenstown)으로 출발한다. 계획이 없는 우리에게, 퀸스타운에 사는 지인의 갑작스런 초대로 만들어진 스케줄이다. 보통 3일에 걸쳐 가는 거리인데, 이 코스 중간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카포호수(Lake Tekapo), 푸카키호수와 마운트 쿡, 그리고 와나카 같은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크라이스트처치부터 퀸스타운까지는 약 520km로 7시간 정도 예상되는 먼 거리다. 중간에 식사를 하기 위해 테카포호수 근처에 차를 세웠다. 바람이 불어 캠퍼밴 내부에서 라면을 끓이는 동안 멀리 보이는 뉴질랜드 최고봉 마운트쿡과 빙하가 녹아 에메랄드빛을 띠는 엄청난 크기의 호수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신발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본다. 한기가 느낄 정도로 차갑지는 않다. 호숫가에 둘러 앉아 먹는 라면 맛, ‘쥑인다!’
퀸스타운에서 레벨 6의 고난도 래프팅
뉴질랜드 여행객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작은 마을 퀸스타운. 와카티프호수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고 카약, 래프팅, 스카이다이빙, MTB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이 자유로운 곳이다. 상주인구가 5,000명인데 항시 2만5,000~4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퀸스타운에 왔으면 그 여러 가지 중에 하나 정도는 체험하는 게 예의(?)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중 온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래프팅에 도전하기로 한다. 시내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차량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하니 안전교육을 시킨다. 숙련된 강사가 6명을 1조로 하여 약 2시간 동안 레벨 6까지 나온다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환상 코스다.
일단 출발하는 지역까지 가는 길이 ‘예술’이다. 구불구불한 벼랑 끝의 비포장도로를 어찌 이리 운전을 잘 하는지. 2012년 7월에 다녀온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페어리메도(Fairy Meadows) 가는 길이 연상되는 난코스 길이다. 차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안 들어갈 수 없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우리와 한 조가 된 가이드 케이시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일행을 환영하면서 래프팅에 대한 안전 교육과 노 젓는 요령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준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오늘 물살이 세서 레벨6 가까이 경험하게 됩니다. 기대하세요”라고 한다.
래프팅에서 레벨 6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 강원도 인제 내린천에서 여름에 두어 번 래프팅을 한 경험이 있지만 한국 물살의 레벨이 잘 기억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용감히 배에 올라 ‘하나, 둘, 하나, 둘’ 노를 저어 계곡으로 보트를 띄우고 뛰어 들었다. 우리 일행을 포함한 8대의 보트가 계곡 속에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형! 이 계곡물 색깔이 이래도 그냥 마셔도 돼요.”
태훈이 노를 젓다가 손으로 계곡물을 떠서 입안으로 가져간다. “안 따라 할 수 없지”
하면서 마셔 본 물맛. 약간 회색빛이 돌지만 이런 큰 계곡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끓이거나 정화하지 않고 그냥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수질을 유지한다는 것이 마냥 부럽다.
물살이 세지는 구간이 수시로 나타난다. 사방에서 물이 튀고 가까이 접근하는 바위지대에서는 노를 배 안으로 빨리 들여 놓고 위아래 요동을 그대로 느낀다. 내린천과는 또 다른 맛이다.
멀리 보트들이 모여 있고, 안전요원이 바위 위에 올라가 계곡 상태를 살핀다. ‘뭐지?’하며 다가가니, 이곳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레벨 6 정도의 급류가 흐르는 구간이란다(레벨 5가 유료 손님에게 맛뵈는 최고 수준의 급류라고 함).
짧은 래프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모험을 즐기더라도 사고가 난다면 도전하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 역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중간 중간 안전요원이 로프를 들고 바위 위에서 쳐다보는 가운데 보트를 한 대씩 급류를 보낸다.
“와우!”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패들링이 빨라지는 가운데 하얀 포말 속으로 보트가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솟구쳐 오르는 보트. 정신없이 급류를 벗어나는 순간 기어이 기철 형이 보트에서 떨어져 계곡물에 빠진다. 급하게 양어깨를 잡고 보트 위로 끌어 올리니 표정이 굳어 있다. 놀란 표정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다음날 스케줄은 늘 그 전날 저녁에 세우기로 했다. 저녁식사가 술자리로 연결되거나, 전날 일정이 피곤하면 아침 늦게 출발해서 무리 없이 관광 모드로 좀 얌전하게 하루를 지냈고, 그러면 다음날은 뭔가 센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리듬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산 위 빙하호에서 수영을!
내일은 마리안호수(Lake Marian)라는 곳에 가 보자는 제안에, “그럼 우리 빙하물에서 수영이나 한번 해볼까?” 누군가 장난 비슷하게 제안을 한다. 빙하호에서 수영을? “좋지”라고 받는 반농담의 한마디에 코스가 바뀌고 밀포드사운드 가는 길목의 마리안호수를 찾는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트레킹을 하는 상미는 신이 났다. 모델 출신답게 등산복 코디를 예쁘게 하고 발걸음 가볍게 산행 초입에 들어선다. 국내와는 전혀 다른 고목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계곡마다 넘치는 물소리, 그리고 이름모를 풀들로 산하가 아름답다. 뉴질랜드에서 터전을 잡은 태훈이 중간 중간친절하게 이름 모를 풀과 작지만 아름다운 새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이 트레킹의 묘미를 더해 준다.
길을 잃지 않도록 나무의 작은 표식을 주의 깊게 살피며 오르기를 2시간여. 우리 앞에 푸른빛을 반사시키는 크고 멋진 호수가 나타난다.
“형님, 여기가 아침에 이야기 한 마리안호수입니다. 500평보다는 좀 크죠.”
오르는 동안 일행에게 호수 크기가 500평 정도라고 조크를 던진 태훈이 마리안호수에 대해 설명한다. 키 서미트(Key Summit) 정면에 마운트 크리스티나 서쪽의 U자 협곡에 위치한 마리안호수는 해수면 고도 약 700m에 2,000m 넘는 고봉들이 둘러싸여 있다. 정상 부위에는 만년빙하가 그대로 남아 있고 기암절벽과 정상 부위의 만년빙하가 호수에 투영되는 아름다운 호수다.
칠레에서 왔다는 두 젊은 여행가는 이곳에서 전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단다.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오르는 동안 흘린 땀이 식기 전에 문세형이 먼저 수영복 차림으로 변신해 있다. ‘날씨도 쌀쌀한데 용감하게 호수물에 뛰어 들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멋진 포즈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바로 물 밖으로 나오고 만다. 이유는 물론 “추워도 너무 추워!”
잠시 가져 온 간식과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면서 호수 옆에 누워 본다. 행복하다. 그 이상 표현할 게 없을 정도로 호수와 함께 펼쳐진 파노라마 풍경이 환상적이다.
오늘 드디어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로 갈 예정인데 유일한 통로가 오후 7시 이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서둘러본다.
오후 6시 45분, 겨우 시간 맞춰 ‘호머터널(Homer Tunnel)’에 도착한다. 깎아지른 악산(岳山)으로 둘러싸인 밀포드사운드로 가기 위해 인공적으로 뚫은 1,219m 길이의 터널로, 암벽이 노출되고 조명도 거의 없다. 그래도 이 길이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유일한 통로다. 무사히 늦지 않고 통과.
“홀리데이 파크(Holiday park)를 예약하지 않았는데 주차 공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캠퍼밴을 이용한 뉴질랜드 여행에선 도심 혹은 외곽에 위치한 홀리데이 파크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을 주차하고 시설 내에 있는 주방이나 샤워 시설에 필요한 물을 보충하는 한편 여행 동안 발생한 오물 등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행히 우리 일행을 위한 공간이 딱 하나 남아 있단다. 얼른 사용료를 지불하고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면서 밀포드사운드의 하룻밤을 보낸다.
깊이 463m 호수의 깊은 정적에 빠지다
밀포드사운드에 가면 트레킹을 좋아하는 트레커들은 루트번 트랙이나 케플러 트랙, 밀포드 트랙 중의 한 곳을 걸어 보기를 원한다. 자기 어깨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며칠간 원상 그대로의 자연 속으로 동화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아쉽게도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 물론 짧은 당일 코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껍질만 핥고 가기보다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밀포드사운드의 바다를 두어 시간 도는 ‘모닝 크루즈’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마도로스 모자가 멋진 선장이 빨간 크루즈선의 경적을 울리며 여유롭게 해협을 빠져 나간다. 바람이 차갑다. 해발고도 ‘0’에서 시작된 절벽이 2,000m에 육박하는 높이로 좌우에 우뚝 서 있다. 중간 중간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하늘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올라간다. 장관이다. 너른 바위에는 물개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있다.
갑판 위의 바람이 얼마나 센지 문세 형과 태훈이 양팔을 벌리고 비행 자세를 잡고 앞으로 한참을 기울여 서 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던 크루즈선을 선장이 어느 순간 절벽 사이로 바짝 붙인다. 뭘까 하는 순간 하늘에서 많은 물줄기가 쏟아진다. 선장이 엄청난 수량을 가지고 있는 150m 높이의 폭포 밑에 크루즈선을 바짝 댄 것이다. 바람에 날린 폭포물을 온몸으로 맞아 본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 싶은 심정으로…. 그런데 물에 흠뻑 젖은 카메라는 어떻게 하지?
테아나우로 나와 두 갈래 길에 섰다. 북으로 갈 것인가? 남으로 갈 것인가?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다가 태훈이가 너무 좋아한다는 호젓한 호수로 가기로 했다.
“호수 깊이가 400m가 넘는다면 믿겠어요? 오늘 그곳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요.”
호수 깊이가 400m가 넘는다고? 그렇다면 넓이는? 모든 것이 궁금한데 우리를 태운 캠퍼밴은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하우로코호수(Lake Hauroko)에 도착한다.
뉴질랜드 남섬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의 산골짜기에 있는 하우로코호수는 면적이 63㎢, 길이는 40㎞이며, 가장 깊은 곳이 태훈이가 말한 것처럼 463m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깊은 호수란다. 일행이 도착했는데도 정말 아무도 없다. 호수에 물보다 더 가득한 것은 정적(靜寂)이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보는 이런 정적…. 조용하지만, 이번 여행 중에 특히 진하게 남은 기억 중 하나다. 이 넓은 호수가 오늘 우리 일행에게 모든 것을 내주나보다.
캠퍼밴을 주차하고 텐트를 꺼내 호숫가에 설치한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마른 장작을 주워 모닥불을 피운다. 맛깔난 김치볶음밥으로 저녁을 마치고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뉴질랜드산 붉은 포도주를 목에 흘린다. 자연스럽게 문세 형 입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중략),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텐트에서 조용히 물결소리 들으며 잠을 잔 문세 형이 아침에 느닷없이 “야, 텐트 좀 털어”하고 소리를 지른다. 텐트에 가보니 하얀색 텐트에 샌드플라이(Sandfly)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샌드플라이의 악명은 이미 뉴질랜드 오기 전부터 들었는데 이곳 하우로코호수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개체수가 보인다. 오염된 지역에서는 절대 살지 못한다는 샌드플라이가 많다는 것은 이곳이 오염이 안 된 순수 청정지대임을 알려 주는 것이긴 하지만, 멋모르고 반팔 반바지로 다닌 나는 온몸이 근질거린다. 작지만 물리면 그 가려움이 최소 한 달은 간다는데…. 샌드플라이를 핑계로 호숫가를 걷는 짧은 트레킹은 포기하고 도시로 가서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큐리오베이는 사람과 동물들이 교감하는 곳
남섬 제3의 도시인 인버카겔에서 캠퍼밴 대청소를 한다. 차량 실내에 죽은 벌레들을 쓸어내고, 비포장도로 주행 중 뒤집어쓴 먼지를 이불에서 털어낸다. 마리안호수에서 적신 옷가지들도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막내 상미를 위해 기름진 피자에 콜라도 마시고,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i-Site에서 내일의 각별한 일정도 소개받았다. 이곳 뉴질랜드 남섬에서만 서식한다는 옐로아이드 펭귄(Yellow-eyed Penguin)을 만나러 큐리오베이(Curio Bay)로 이동하는 것이다.
“옐로아이드 펭귄은 이곳에서만 서식해요.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바다에서 주로 해질녘에 나오지만,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오늘 우리 일행이 운이 좋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큐리오베이. 뉴질랜드 남섬 최남단에 있는 만(灣)으로, 약 1억8,000만 년 전 숲의 나무 밑동들이 그대로 화석화되었다는 곳이다. 운전석에서 내린 태훈을 따라 조금 걸으니 멋진 해안이 나타난다. 그런데 태훈뿐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의 손마다 망원경이 들려 있다. 왜지? 하는 마음에 이곳을 소개한 팻말을 보니 ‘펭귄이 나타나면 접근하지 말라’는 문구가 보인다. 자연을 그대로 놔두고 조금 멀리서 관찰하라는 배려다.
파도치는 해안을 한참 동안 걸어 봐도 기대한 옐로아이드 펭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두가 한 곳을 지목하고 입에 손을 갔다 댄다. “쉿!” 바위 위에 펭귄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멀리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앙증맞다. 카메라 셔터에 손이 자주 간다. 예쁘다. 한참을 쳐다보고 하룻밤 묵을 해안가로 돌아오려는 순간 “야! 바다에서 한 마리 더 올라온다!” 이런 횡재가! 바다를 배경으로 올라오는 옐로아이드 펭귄이 너무 예쁘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큐리오베이 해안가 홀리데이파크에 여장을 푼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금액은 저렴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설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풍광이나 서쪽 하늘로 지는 노을이 환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친구가 된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쿠바 등에서 온 젊은이들이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하루 해가 진다.
내 서핑보드 아래로 돌고래가 지나간다!
“이곳 큐리오베이에 또 다른 명물이 있어요. 매일 오후가 되면 먹이를 먹고 돌아오는 헥터돌고래(Hector's Dolphin)죠. 이래저래 이곳은 생태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죠.”
그러면서 하루 더 머물 것을 태훈이 제안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목적 없이 캠퍼밴을 타고 여행을 떠나왔다. 이런 좋은 풍경에 돌고래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다는데 그냥 떠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무한정 돌고래만 앉아서 기다릴 우리가 아니다. 해변가 멀리서 보니 파도가 좋다. 그리고, 홀리데이 파크 안에서 운영하는 서핑 스쿨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그렇지만 왠지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중년의 동양 남자들에겐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는 서핑. 그래서 우린 서핑을 해보기로 했다.
뉴질랜드 특유의 발음이 멋진 니콜라스가 우리 일행을 맡아 서핑 교육을 한다. 자기 키보다 큰 서핑보드 타는 요령을 모래 위에서 알려 주더니 바로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면서 올라타는 법을 상세히 알려 준다. 처음에는 계속 보드에서 떨어지면서 바닷물을 많이 마신다. 그러기를 10여 차례. 10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파도 위에 내 몸이 섰다. 와우! 옆에서 같이 교육을 받은 문세 형과 태훈, 상미도 곧잘 올라 파도를 즐긴다.
“잠깐! 서핑보드에 올라타세요.”
니콜라스가 교육을 중단하고 한 곳을 쳐다본다. 그리고 우리 일행과 50m 정도 떨어진 파도를 바라보니 우리에게 헥터돌고래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카메라가 없는데 어쩌지?’ 하는 순간 내 보드 밑으로 4마리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내 발 밑에서 일어난 것이다. 손으로 잡고 싶었지만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간다. 그리고는 다른 서퍼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해안가 파도 사이로 한참동안 유영한다.
서핑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감동이다.
“뉴질랜드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물론 사람들에 의해 사육되는 소나 양 같은 가축도 있지만, 그보다 자연 그대로 그들의 영역을 지키면서 사는 동물들도 많답니다.”
그렇다. 뉴질랜드는 전체 인구가 450만 명 정도이지만 양들이 많을 땐 4,700만 마리다. 그외 펭귄과 물개, 바다사자 등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도 많다고 한다. 그중에 물개들이 많이 산다는 너겟포인트(Nugget Point)를 찾아간다.
“잠깐! 저건 무슨 동물이지?”
해안가에 TV를 통해서 본 낯익은 동물이 나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캠퍼밴을 길가에 세우고 가까이 가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가가서 보니 바다사자 암컷이다.
양껏 물고기를 잡아 배를 채웠는지 사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즐긴다. 장난기가 발동한 문세형이 물개와 동등한 포즈로 모래에 눕는다. 똑 같다!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는 포스가 당당한 바다사자 수놈도 보인다. 말로만 듣던 야생동물이 눈앞에 마구 나타난다. 신기할 뿐이다.
우리가 찾아가는 너겟포인트는 뉴질랜드 남섬의 오타고 남단에 있다.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형태(Nugget)로서 펭귄, 개닛, 스푼빌 등의 조류와 바다사자와 물개들의 중요한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너겟포인트까지 걷는 오솔길이 절경이다. 좌측으로 푸른 바다, 우측으로는 예쁜 숲, 그리고 멀리는 하얀 등대…. 천천히 걸어 너겟포인트에 도착해 파랗다 못해 푸른 바다 암초 위를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물개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어미 물개들의 보살핌 속에 새끼물개들의 자맥질이 힘차다. 또한 하얀 날갯짓을 하는 물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자연 그대로 이들이 평온한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2주일, 그리고 2,000km 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뉴질랜드 남섬 투어를 우리와 같이 한 캠퍼밴의 편리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해 주었다. 여행 내내 남섬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이 호사했다. 또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경험했다.
여행 중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하지만, 캠퍼밴 여행은 분명히 다른 ‘맛’이 있다.
하우로코호수의 정적은 몇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내 마음의 심연을 마주하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창조주의 의도가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건강하게 공존하는 야생동물들. 몇 주 전 뉴질랜드에서 샌드플라이에게 물린 발등을 아직도 벅벅 긁으며 글을 쓰지만,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번지곤 한다.
교통 한국에서 크라이스트처치는 직항편이 없어서, 경유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인천~오클랜드(대한항공)+오클랜드~크라이스트처치
(에어뉴질랜드항공, 잿스타항공)
■인천~시드니(아시아나항공)+시드니~크라이스트처치
(에어뉴질랜드항공,에미레이트항공, 콴타스항공)
■인천~시드니(콴타스항공)+시드니~크라이스트처치
(콴타스항공)
■인천~싱가포르(싱가폴항공) + 싱가포르~ 크라이스트처치(싱가폴항공)
한국~퀸스타운 또한 직항 편이 없어서 대개 북섬 오클랜드를 경유한다.
필자 정용권
평소 등산과 스키를 즐기는 아웃도어 마니아.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7차례의 히말라야 등반을 취재했으며, 2003년에는 북극점(Northpole) 원정도 다녀왔다. ㈜밀레 마케팅이사를 거쳐 지금은 아웃도어 전문 여행사 엠투어(M-Tour, 02-773-5950)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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