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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기행 80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일주
고교 동기부부 모임인 <여명> 회원들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해외여행으로 일본의 북부 홋카이도를 선택했다. ‘북해도’로 불리는 홋카이도는 근래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2017년 9월 3일(일요일) 아침 7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2시간 30분 걸려서 아사히카와 공항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이었다.
*시키사이노오카의 화원과 비에이의 자연
인천공항에서 함께 떠난 일행이 30여 명 되는데 제일 처음으로 견학한 곳은 오토코야마 주조 공장이다. 홋카이도지방은 일본의 변방이어서 이렇다 할 유적이 없다 보니 전통 주조공장이 그나마 유명한 모양이었다. 주로 ‘사케’라는 일본 술 정종을 생산하는 곳이지만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음의 기회도 있었는데 한국 소주에 익숙한 입맛으로는 별로 특별한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약간의 귀국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주조공장을 견학하고 버스로 약 40분간 이동해서 ‘비에이’로 갔다. 이곳엔 ‘시키사이노오카의 화원’이 있는 곳이다. 비에이의 자연환경은 산과 들, 개울, 나직한 언덕 등으로 섬지방 특유의 풍경인데 크게 돌출한 지형이 아니어서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이 화원이 있는 언덕에 오르니 광활한 구릉지가 넓게 펼쳐져서 해안지방의 자연환경이 한 눈에 느껴졌다.
이 꽃 언덕은 구릉의 수천 평 밭에 꽃을 심어서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다. 이 곳은 예전에 화산이 빈발하던 화산지대라 지반이 약해서 농작물을 재배하기가 적당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꽃밭으로 개간한 것이다. 구릉지에서 몇 천 평 되는 밭에다가 여러 종류의 꽃들을 질서 있게 심어서 매우 찬란했다. 하지만 인공적이라 자연스런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라마단 기간의 몽골초원은 야생꽃들로 찬란했었는데 그 때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런 것도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일본인들의 상술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을 태우고 꽃밭 둘레를 한 바퀴 도는 협궤차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노인들 대부분은 그것을 타고 꽃밭 풍경을 즐겼다. 운임은 10엔 정도였다. 밭두렁을 한 바퀴 도는 정도의 짧은 코스라 특별한 감흥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그렇더라도 즐길 거리라고는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이용했다. 아무튼 별 것 아닌 것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면 놀라운 상품이 된다.
화원을 구경하고 언덕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일본 음식은 우리의 입맛에 맞고 깔끔해서 한국인들의 기호에는 맞았다. 접심식사 후에 식당과 붙어 있는 매점에서 선물을 골랐다. 일본 특유의 과자, 우유, 화장품 같은 것들이 주였다. 이곳 제일 특산이라는 로이스 초콜렛을 맛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이드의 선전이 워낙 그럴 듯해서 몇 푼 되지 않은 그런 군입거리들을 놓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한 후에 사진작가 ‘마에노 신조’의 전시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에노 신조는 평생토록 이곳에 살면서 이 섬지방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부드러운 곡선의 산들, 봄 들판의 풍경, 인상적인 나무들, 작은 여울, 아담한 집들 그런 풍경들을 렌즈에 담았다. 이 사진 전시관은 이곳 지방의 특색을 모두 드러내고 있어서 인기가 있고 지금은 이 지방의 주요한 관광 상품이 되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우리의 제주도나 남해안 풍경과 유사할 정도로 평지가 잘 발달되고 섬지방 특유의 벌판과 나직한 산들의 부드러운 능선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일본인들의 장점과 온천문화
약 2시간 30분 정도 이동해서 홋카이도의 중심도시인 삿포로로 이동했다. 호텔방이 정해지고 저녁식사는 제각기 선택을 했는데 우리는 노인들이고 지쳐서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고 호텔내의 뷔페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음식은 매우 좋았고 우리의 입에 맞았다. 1인당 10엔씩 더 내면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남자들은 10엔씩 더 지불했다. 함께 간 친구는 소주를 청했는데 나는 정종을 택했다.
푸짐한 식사 후에 온천욕을 택했다. 일본 여행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은 온천이 잘 발달되어 있고 목욕문화가 한국과 같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 온천욕으로 몸을 풀어서인지 잠도 편했다.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영원한 이웃이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태생적인 이웃사촌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년을 그러니 1970년대, 80년대를 ‘잃어버린 20년’이란 말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을 능가할 정도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다가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되면서 경제가 급격히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근면하고 단결력이 강한 일본 국민들은 소박하고 검소하며 실질을 숭상하는 태도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큰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자가용 경차는 660CC 급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경차의 기준을 1000CC 급으로 잡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차를 소유한 집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예 자가용을 두 대 구입해서 평소에는 경차를 이용하고 손님을 접대하거나 할 때만 큰 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세금 제도가 대수를 기준한 것이 아니라 사용량에 대한 세금, 그러니 휘발유 소비세 같은 것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절약 제일주의로 생활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는 1억 2천 7백만 되는데 남한의 두 배가 넘는다. 내수 위주로 정책이 짜여 있어서 일본 국산차가 수출 차 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고 한다. 그러니 국민의 대다수가 국산차를 이용하게 된다. 근래 우리나라에 외국산 수입차 붐이 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일본의 시골길은 도로 폭이 좁아서 한국 차처럼 폭이 넓은 차량이 다니기가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는 한국 차의 수입도 거의 없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과연 일본의 길거리에는 한국 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차가 수두룩한데 말이다.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이웃이지만 문화적 차이가 크다. 한 예로 우리의 무속신 같은 일본 고유의 신사(토신)가 일반 종교처럼 널리 발전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예전에 많이 사라지고 교회로 대체된 것들이 일본은 고유의 신으로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엉이 신(일본 이름으로 행복을 의미) 개구리 신, 나무 신, 산 신, 곡식 신, 하는 식으로 4000 여 가지 신을 신사에서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작 기독교는 인구의 0.01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꾸가와 시대부터 천주교의 탄압이 있어왔는데 일본인들은 전통적인 관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는 정신체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온천문화가 발달된 곳이다. 물의 온도가 원래는 천연온천이어서 100도에서 90도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을 식혀서 20도- 30도 정도의 온도로 목욕물로 만든 것이라고 하다. 재미있는 현상은 남녀 목욕탕이 매일 바뀐다는 사실이다. 저녁 때 들어갔던 남탕이 아침에는 여탕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본은 원래 남녀혼탕도 자연스러웠던 나라인데 이런 식의 변화로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가이드는 한국인이지만 일본 문화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는 듯했다. 일본인의 기능은 세계적이어서 화산과 지진이 잦은 곳이지만 토목건축에 내진기술이 잘 축적되어 사고를 극히 줄이고 있고 해저터널 같은 경우도 일본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약품을 생산하는 제약기술도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이런 기술과 학문의 발달로 근래에 약 20년간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것이다. 집념이 매우 강해서 스케이팅 선수인 ‘아사다 마오’ 한 명을 키우는데도 여러 명의 트레이너가 수십 년간 집중적으로 매달린 결과물이라고 한다.
* 삿포로 시가지와 사이로 전망대
다음날은 삿포로 시가지를 관광했다 삿포로는 일본 5번째의 도시라고 하는데 역사적 전통이 별로 없고 일본의 외곽지대로 소외되다가 일본에 편입된 도시여서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삿포로의 가장 번화가는 ‘스스키노’ 거리로서 각종 식당과 맛집 또는 숙박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고 건물로는 ‘삿포로 TV타워’가 147M의 위용을 자랑했다. 밤에는 탑의 찬란한 불빛이 볼만했다. 오도리 공원에는 맥주 축제로 유명한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린다고 한다. 약 5천 여 개의 상점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최대의 유흥가도 있어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 잘못 알고 들어갔다가 큰 봉변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라 한다.
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물로 구 홋카이도 청사가 있다. 붉은 벽돌 건물로 우리나라의 옛 서울역 건물이나 조선총독부건물을 연상케 했다. 지금은 고서적이 주로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 구실을 하는 곳이라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삿포로시가지를 대충 구경하고 1시간30분쯤 달려서 ‘사이로 전망대’로 향했다. 사이로 전망대는 예전에 목장이 있던 곳이었는데 사이로에 건초를 저장하던 건물을 개조해서 식당을 만들고 전망대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했다.
사이로 전망대에서는 ‘도야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둘레가 36Km가 되는 넓은 호수 가운데에 ‘나카지마섬’이 있어서 호수의 운치를 더했다. 이 호수는 화산과 관련된 ‘칸데라 호수’로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에서는 아직 화산재가 솟고 있다고 한다.
버스의 차창으로 보이는 산의 나무들은 주로 자작나무와 편백나무 종류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개 2층이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정갈하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어서 대부분 검거나 회색의 목조 건물이다 모두 비슷한 구조로 여겨진다. 일본인들의 소박한 성품과 남의 눈에 특별히 띄기를 꺼리는 민족성을 엿볼 수 있었다.
*도야 국립공원
관광버스는 ‘도야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 407미터 되는 활화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돈산’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부터 땅이 자꾸 부풀어 오르자 그곳 우체국장이 그 산을 사서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땅이 자꾸 부풀어 오르는 정도를 측정하고 관리했는데 근래까지 407미터나 솟았다고 한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소문이 나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해서 ‘쇼와신잔’ 이라 불리고 있었다.
도야호수 옆으로 큰 활화산이 있는데 화산이 자주 폭발한다고 한다. 케이블카가 설치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서 ‘쇼와신잔’을 관광했다. 이곳도 온천이 발전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호수와 더불어 보다 큰 활화산도 있어서 관광지가 되고 있었다. 요구르트, 마유(피부약) 등이 관광 상품으로 많이 팔리고 있었다.
길의 위쪽 계곡으로 지옥압, 지큐사카이 (전망대, 등대) 등의 관광로가 따로 발달되어 있었다. 지옥계곡에는 유황덩어리가 지표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하고 유황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코를 찌르는 독한 유황냄새도 피어올랐는데 그런 열악한 조건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재능은 참으로 놀라웠다.
*해산물 뷔페 음식점과 삿포로 유흥가
저녁때는 삿포로 시내로 들어와서 해산물뷔페로 안내되었다. 뷔페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해산물 뷔페는 각종 해산물과 가리비, 조개 골벵이 등과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도 뒤섞여 있어서 제각기 필요한 만큼 덜어다 불고기로 또는 탕으로 즉석요리를 해서 먹었다. 술은 무료였다.
우리 일행은 특히 삶은 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 종류가 다양해서 대왕게, 털게, 꽃게는 물론 바닷가제 등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매우 비싼 음식이어서 마음껏 맛보기가 쉽지 않은 터였는데 이런 기회가 쉽지 않아서 부지런히 게살을 발라냈다. 옆의 친구는 소주를 택했는데 나는 포도주를 신청해서 몇 차례나 술을 청해 마셨다. 두어 시간 동안 삶은 게에 대해 여한이 없을 정도록 실컷 먹었다.
술이 제법 취한 터여서 길거리 관광에도 자신감이 생겼는데 가이드가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이곳에 ‘무료안내’ 간판을 단 유흥주점이 널려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복덕방 같아서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야쿠자들이 경영하는 것인데 여자 여행객들이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등학생이 수학여행을 왔다가 멋도 모르고 이곳의 안내를 받아 유흥점으로 갔다가 큰 봉변을 당한 일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삿포로는 일본 5위의 부자 도시로 근래까지도 후쿠시마 등에는 외부에서 이주민들이 이주해 오면 정착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래서 근래에 들어 급격히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북해도의 면적은 한국 남한의 80% 정도에 이르는데 인구는 6백만 미만이다.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은 도시다. 이곳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찡꼬에 몰두하는데 빠찡꼬가 도박장이라기 보다 게임장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돈일 잃는 빈도도 크지 않아서 보통사람들이 즐길만 하다고 한다. 장바구니를 든 부녀자들이 시장엘 갔다가 한두 시간씩 즐기다가 오는 서민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오타루 운하와 오르골 전시장
제 3일 째는 오타루로 이동했다. 삿포로에서 약 1시간 걸렸다.
오타르는 예전 운하가 있던 지역이어서 오타루운하(小樽運河)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번영을 누렸던 시절의 웅장한 석조건물과 88개의 가스등이 늘어서 있어 일찍이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했던 항구의 이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다. 메이지 말기의 많은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관광지로 인기가 높았다.
오타루 운하는 1914년에 착공되어 9년 걸려 완공되었다. 이 시기 오타루는 항구도시로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었고 운하는 '하시케'라고 불리는 소형선이 항구에 정박한 본선으로부터 화물을 옮기는 교통로의 구실을 했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현대적인 항구 도크시설이 마련되고 대형선박의 화물을 하역하는 시스템이 개선되자 운하는 원래의 운송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어 매립될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시민들의 복원운동에 힘입어 운하의 복원사업이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초반에 운하를 따라 건설되었던 창고들은 쇼핑점, 박물관, 레스토랑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오타르에는 시가지를 따라 늘어선 오르골 전문 매장이 많다. 건물의 외벽이 어두운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인상적이다. 은은하고 신비로운 오르골소리를 들으며, 유럽 건물 양식의 오타루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 관광 일정이다.
오타루의 동쪽 끝 지점에 위치한 오르골 전시장은 오르골을 판매하는 상점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각국의 모든 오르골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판매하는데, 무려 3만여 점에 달한다. 건물 앞에는 증기 시계가 있는데, 1시간마다 시각을 알리고 15분마다 5음계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이곳에는 ‘키타이치가라스 공방’이 유명하다. 오타루의 특산품중 하나인 유리제품을 영어로는 글라스라 하는데 일본식 발음으로는 가라스라고 발음한다. 기타이치 가라스 공방은 ‘北一glass’란 뜻으로 유리 공방을 말한다. 유리제품의 전 공정을 관찰할 수 있고 크리스탈로 만들어지는 많은 유리제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기타이치 가라스 공방거리는 10만 종류가 넘는 유리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리지널 제품을 비롯한 전 세계의 유리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관광들이 유리 공예품 관람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오타루는 아이누족의 중심 거주지여서 길거리를 거니는 인파 중의 상당수는 키가 매우 작고 까무잡잡한 아이누족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왜(倭)라고 할 때 그런 뚜렷한 특징을 지닌 일본의 한 종족이 아이누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이셰츠산(大雪山) 국립공원과 쇼운코(層雲峽) 협곡
오타루를 관광하고 나서 저녁 숙소는 다이셰츠산 국립공원에 있는 산장호텔로 향했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예약이 되어 있어서 그곳까지 안내되었다. 다이셰츠 국립공원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여서 홋카이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산이 높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지역인데 우리나라의 설악산국립공원쯤 되는 곳이라고 하겠다.
이 지방은 겨울에 눈이 많아서 눈축제가 열리는 곳이고 스키가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여행 간 때는 아직 가을이어서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산장에 들었을 때는 매우 한가하고 조용했다.
다이세츠산 국립공원 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계곡이 쇼운코(層雲峽) 계곡인데 산장은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위로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고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어서 설악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쇼운코 협곡에는 여러 개의 폭포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부부폭포로 알려지고 있는 유성(流星)폭포와 은하(銀河)폭포가 유명했다. 유성폭포는 낙폭이 90미터에 이르고 은하폭포는 낙폭이 120미터에 이르렀는데 유성폭포가 굵은 하나의 물줄기인데 비해서 은하폭포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는 물줄기였다. 그래서 유성폭포를 남성에 비유하고 은하폭포를 여성에 비유하여 두 폭포를 ‘부부폭포’라 이름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온천수가 유황성분이 매우 우수해서 그것도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저녁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협곡의 폭포를 구경하면서 젊은이들은 등산까지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관광지였다. 특히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라 잠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숙박하는 자체가 행운이라고 자랑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협곡의 개천따라 이어지는 웅대한 폭포의 경관과 우뚝우뚝 솟은 아름다운 산세를 구경했다. 사진을 찍고 즐기면서 아침시간을 보내고 비행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홋카이도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는데 아사히카와 공황과 신치토세 공항이다. 귀국길에는 입국 때와는 다른 신치토세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2시 15분에 인천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