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25호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慶州 鍪藏寺址 阿彌陀佛 造像 事蹟碑)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신라 제 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비이다. 1915년 주변에서 발견된 세 조각의 비석 파편에 새겨진 글을 통해 ‘무장사아미타조상사적비’임이 밝혀져 이곳에 무장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장사는 신라 제 38대 원성왕의 부친인 효양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비는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비몸돌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절터에는 부서진 비받침과 비의 머릿돌만이 떨어진 채로 남아 있다. 비받침은 얼굴형상을 알 수 없으나 2좌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등 중앙에 마련된 잘려진 비좌(碑座)는 비몸을 직접 끼워두는 곳으로 사각형이며, 네 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잘려진 머릿돌에는 용이 구름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는 조각이 있고, 왼쪽 면에는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석비는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경주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를 제외하고 그 이후 머릿돌이 남아 있는 예가 드문 상황에서 당시 머릿돌의 변화과정을 살필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무장사라는 이름은 태종무열왕이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비는 없어지고 비를 받쳤던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얹었던 용모양을 새긴 비머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1915년이 주변에서 "무장사아미타조상사적비"라는 비석의 조각을 발견하여 절 이름이 무장사였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장사비 귀부의 머리는 용모양인데, 두 마리의 거북이 등에 비를 받치던 자리 둘레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한
것이 특이합니다. 비머리에는 "아미타불□□"이라는 글자가 두 줄로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신라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무장사에 모신 내력을 새긴 것입니다. 비 조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박물관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