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라는 뜻은 "결합하다"라는 의미로 작은 자아를 놓아버리고 큰나(신)과 하나됨이라는 뜻!!
파탄잘리 요가경에서
바가바드 기타 2장. 이론의 요가
삼자야가 말했다.
이렇듯 연민에 사로잡혀 눈물 가득 젖은눈으로 낙심하고 있는 그에게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귀급한 때 어디서 그대에게 이런 나약함이 생긴단 말이오
아르주나여. 이는 귀족답지 못하고 하늘로 이끌지도 못하며
수치를 가져올 것이오
나약하게 굴지 마오. 프르타의 아들이여
이것은 그대에게 걸맞지 않소
조그마한 심약함을 떨쳐버리고 일어서시오. 적을 괴롭히는 자여
아르주나가 대답했다.
어떻게 내가 전투에서 공경받아야 할 두 어른이신 비슈마와 드로나에 대항하여
화살로 싸우겠소? 크리슈나여
큰 존엄을 갖추신 스승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빌어먹는 편이 낫기 때문이오
스승들이 욕심많다 하나 살해한다면
나는 바로 이 땅에서 피에 젖은 음식을 먹을 것이오
우리가 이기는 것과 저들이 우리를 이기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에게 나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죽인다면 살고 싶지 않을 사람들인
트르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이 우리앞에 정렬해 있습니다.
저의 존재가 연민의 허물로 무너져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 마음이 혼미하여 당신께 여쭈오니
어느편이 더 좋은지 확실히 저에게 말해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제자이오니 당신께로 나아온 저를 가르쳐주십시오.
설령 제가 이 땅에 둘도 없을 번성하는 왕국과 신들의 통치권까지
얻는다해도 감각기관들을 마르게 하는 저의 이 슬픔을 무엇으로
없애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삼자야가 말했다.
이렇게 크리슈나에게 말하고
아르주나는 저는 싸우지 않겠습니다라고 크리슈나에게 말한 후
침묵에 빠졌습니다.
양군대사이에서 낙심하고 있는 그에게
바라타족의 자손이여
크리슈나는 미소짓는 듯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슬퍼해서는 안될 자들을 위해 슬퍼했으나
지혜로운 말을 하고 있도다.
산자를 위해서나 죽은 자를 위해서나
현명한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결코 없었으며
그대와 이 왕들도 그러하도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모두는 존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육신의 소유주가 이 육신에서 소년, 청년, 노년기를 보내듯
이같이 사후에 또 다른 육신을 얻을 것인 득
현명한 자는 이에 미혹됨이 없다.
그러나 감각세계와의 접촉은 쿤티의 아들이여
차가움과 뜨거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들은 왔다가 사라지고 마는 무상한 것인 즉
그것들을 참고 견디어라. 바라타 족의 자손이여
이러한 것들에 동여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평등하게 여기는 현명한 자는 인간황소여
불사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없어질 수 없나니
진리를 보는 자들은 이둘의 차이를 보도다.
세계만물에 펼쳐져 있는 그것은 파멸되지 않음을 알라.
그 누구도 불멸의 그것을 파멸시킬 수 없다.
영원하고 불멸하며 측량할 수 없는
육신의 소유주가 지닌 이 몸들은
유한하다 말하나니 그런즉 싸워라, 바타라 족의 자손이여
그가 살해한다고 생각하거나
살해된다고 생각하는 자는 둘다 알지 못하는 자로다.
그는 살해하지도 살해되지도 않는다.
어느 때든 그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생겨나지도 않았으니 앞으로도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불생이며 영원하고 항구적인 이 태고의 것은 육체가 살해된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그가 불멸하고 영원하며 불생불변임을 아는 사람이
프르타의 아들이여
어떻게 누구를 죽이거나 죽이게끔 하겠는가?
사람이 헌옷을 벗어 버리고
다른 새옷을 입는 것처럼
그와같이 육신의 소유주도 낡은 몸들을 던져버리고
다른 새로운 몸들로 간다.
그는 칼로도 베지 못하고
불로도 태우지 못하며
또 물로도 적실 수 없고
바람으로도 말릴 수 없다.
벨수도 없고 태울수도 없으며
적실수도 말릴 수도 없나니
그는 영구하고 무소부재하며 확고부동하고 영원하도다.
그는 드러나 있지 않고 사유될 수 없으며
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런즉 그를 이렇게 알고 그대는 그로인해 슬퍼해서는 안된다.
설령 그가 끊임없이 태어나고
끊임없이 죽는다고 그대가 생각할지라도
오 그대한 팔을 지닌 자여
그를 슬퍼해서는 안된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죽은 것은 반드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즉 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그대는 슬퍼해서는 안된다.
만물의 시작은 드러나 있지 않으며 중간은 드러나 있고
끝은 또 드러나 있지 않으니 바라타족의 자손이여
거기에 무슨 슬픔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그를 본다는 것은 희귀한 일이고
어떤 사람이 그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희귀하며
어떤 사람이 그에 대하여 듣는 것도 희귀하도다
들었다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도다.
누구의 육신에서도 바라타 족의 자손이여
이 육신의 소유주는 영원히 살해될 수 없은 즉
그대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슬퍼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의 의무를 생각해서라도
그대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무사에게는 의무에 따른 싸움보다
더 좋은 다른 것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도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행운으로 주어진 하늘 문을 열어주는
이런 전쟁을 맞이한 무사들은
그러나 그대가 만약
의무에 따른 이 싸움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무와 명예를 저버리고 자신에게 악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그대의 불명예를 이야기 할 것이다
존경받는 자에게 불명예는 죽음보다 더한 것이다.
그대가 겁이 나서 전쟁을 그만두었다고
거대한 전차를 모든 자들은 생각할 것이며
그대를 존경하던 자들도 그대를 업신여길 것이다.
그대의 능력을 비방하면서
그대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들은 해서난 안될 말들을 마음껏 지꺼릴 것인즉
무엇이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인가?
죽임을 당하면 그대는 하늘을 얻을 것이요
승리하면 땅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쿤티의 아들이여
싸움을 위해 결당하고 일어서라.
고와 낙, 득과 실, 승과 패를 동등하게 여기며
싸움을 위해 자신을 가다듬어라.
그러면 그대는 악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지혜가 이론으로 그대에게 말해졌으니
이제 실천에 대해 이를 들어보라.
이 지혜로 제어되어 프르타의 아들이여
그대는 행위의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여기에는 어떤 노력도 헛되지 않고
퇴전도 있을 수 없나니
이 법을 조금만 알아도 커다란 위험에서 그대를 구해줄 것이다.
결단적 성격의 지성은 크루의 자손이여
여기서 하나이지만
결단력없는 자들의 지성은 여러갈래이며 끝이 없기 때문이다.
베다의 말을 즐거워하며
프르타의 아들이여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무지한 자들의 이 화려한 말
욕망을 본성으로 하고
하늘의 복락을 최고로 삼는 자들의 말
행위의 결과로 환생을 초래하며
향락과 권력을 지향하는 각종 의례로 가득 찬 말에 정신을 빼앗기고
향락과 권력에 집착하는 자들의 결단적 성격의 지성은
삼매로 향하는 일이 없도다.
베다들은 세 요소를 대상으로 삼노니
이 세요솔ㄹ 벗어나라. 아르주나여
모든 이원적 대립을 초월하여 항상 선에 굳게 서서
부를 얻고 지킨다는 생각없이 그대 자신이 되어
사방에 홍수가 날때 우물이 필요없듯이
통찰력있는 바라문에게는 모든 베다가 그 정도뿐이로다.
그대가 관여할 일은 오직 행위일뿐
어느 때이건 결과가 아니다.
행위의 결과를 동기로 삼지 말며 행위하지 않음에 집착하지도 말라.
요가에 굳게 서, 아르주나여
성공과 살패를 평등하게 여기며
집착을 버리고 행동하라
요가는 평등성이라 일컫는다.
행위는 지혜의 요가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아르주나여
지혜를 피난처로 삼을지니
결과를 행위의 동기로 삼는 자들은 가련하도다.
지혜로 제어된 자는 이 세상에서
잘된 일이나 잘못된 일을 둘다 버린다.
그러므로 요가를 위해 가다듬어라.
요가는 행위의 기술이다.
지혜로 제어된 현명한 사람들은 행위가 낳는 결과를 포기하고
태어남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고통없는 곳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대의 지성이 미망의 수렁을 건너면
그대는 베다에서 들은 것과 듣게 될 일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계시에 의해 오도된 그대의 지성이
흔들림없이 삼매에 굳건히 서면 그대는 요가에 이를 것이다.
아르주나가 말했습니다.
삼매에 굳건히 서서, 크리슈나여!
확고한 지혜를 지닌 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굳건한 통찰력을 지닌 자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앉고 어떻게 걷습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자아에만 스스로 만족하여
마음이 다가오는 모든 욕망을 버릴때
지혜가 확고하다고 한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괴로움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즐거움 속에서도 욕망이 사라지고
탐욕과 두려움, 노여움을 떠난 사람은
확고한 통찰을 지닌 성자라고 부른다.
어떤 것에도 애착을 품지 않으며
좋은 것을 얻든 나쁜 것을 얻는
기뻐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사람의 지혜는 확고히 서 있나니
거북이가 사방에서 사지를 거두어들이듯
감각기관들을 대상으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사람의 지혜는 확고히 서있도다.
음식을 취하지 않는 육신의 소유주에게는
감각 대상들이 그 맛외에는 사라져버린다.
지고의 것을 보았을때는 그 맛마저 사라져버린다.
현명한 사람이 아무리 애쓴다 해도, 쿤티의 아들이여
괴롭히는 감각기관들은 강제로 마음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기관들을 제어하면서
나에게 열중하여 제어된 채 앉아 있을지어다.
감각기관들을 지배하는 사람의 지혜는 확고히 서 있기 때문이다.
감각의 대상들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집착으로부터 욕망이 생기고
욕망으로부터 분노가 생긴다.
분노로부터 미혹이 일어나고
미옥으로부터 기억의 착란이 일어나나니
기억의 착란으로 인해 지성의 파멸이 오며
지성이 파멸되면 그는 망하도다.
그러나 애욕과 증오를 벗어나 자신의 통제아래 있는 감각기관들로
대상들을 오가며 자신을 다스린 자는 청정함에 이르리니
청정함 속에서 그는 모든 고통의 종식을 이룬다.
청정한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는 지혜가 속히 확립되기 때문이다.
제어되지 않은 자에게는 지혜가 없고
제어되지 않은 자에게는 수정이 없나니
수정이 없는 자에게는 평안이 없으며
평안이 없는 자에게 어찌 행복이 있겠는가?
배회하는 감각들에 이끌리는 마음은 폭풍이 물위의 배를 삼켜 버리듯
그의 지혜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사방의 감각 대상들로부터
감각기관들을 거두어들인 사람은
지혜가 확고히 서 있는 자이다.
모든 존재의 밤에 자제의 소유자는 깨어 있으며
존재들이 깨어 있을때 진리를 보는 성자에게는 밤이다.
물이 바다로 들어가 채우나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욕망이 들어간 자는 평안을 얻지만
욕망을 갈구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욕망을 던져버리고
아무런 갈망없이 행하는 사람
내것과 나라는 생각이 없는 자는 평안에 이르나니
이것이 브라만의 경지이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이것을 얻으면 미혹됨이 없나니
마지막 순간에라도 거기에 확고히 서면
그는 브라만의 열반에 이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