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덕에 하루를 쉴 수 있는데, 예수님은 겨울방학 때 태어나셔서 도움이 안 된다?... 불교는 무신론에 종교도 아닌데...
<‘부처님 오신 날’ 소고>
[1]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때문에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 어제 동료 교수 한 사람이 단톡방에 이런 짧은 글을 올렸다. “부처님 덕에 하루를 쉴 수 있는데, 예수님은 겨울방학 때 태어나셔서 도움이 안 돼요.” 그 글을 보고 웃고 말았다. 예수님은 도움이 안 되신단다.
국가에서 공휴일로 정한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어떤 사람의 탄생일을 기념해서 나라 전체가 하루를 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2]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한 대통령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 중 한 분을 기려서 국가 공휴일로 정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대한민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임에도 매년 공식적인 공휴일로 하루를 쉰다. 이유는 그가 불교라고 하는 세계 4대 종교의 교조이자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3] 왜냐하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인들이 이 글을 보면 항의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불교 대학의 교수나 스님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사실이다.
중앙승가대 교수인 자현 스님은 “붓다는 불교도의 이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한국일보 (2020년 12월 2일자)라고 말했다. 과거 도올 김용옥이 티벳 불교의 최고 수장인 달라이라마와 대화한 내용이 <시사뉴스>(2002년 8월 24일자)에 실린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김용옥: “불교가 무신론이냐?”
달라이라마: “그렇다.”
김용옥: “그럼 불교는 종교가 아니냐?”
달라이라마: “그렇다.”
김용옥: “그럼 불교는 무엇이냐?”
달라이라마: “불교는 과학이다.”
[5]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형조 교수 역시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교리’가 아니라 ‘과학’이고, ‘신앙’이 아니라 ‘지식’이다”(불교와 문화 (2008년 12월호))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 숭산 스님의 제자인 현각스님이 1990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잘생긴 외모에다 하버드 출신인 그가 1999년에 출간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은 밀리언셀러가 됐다.
[6] 그 역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종교가 아니라 ‘테크놀로지’(Technology·기술), 즉 ‘마음을 찾기 위한 테크놀로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게 진짜 불교의 진면목이다. 이런 불교를 ’세계 4대종교‘나 ‘세계 5대종교’ 속에 집어넣어, ‘부처님 오신 날’을 국가 전체가 쉬는 공휴일로 삼은 것은 심히 잘못된 일이라 본다.
석가모니는 진리를 찾으려다 못 찾고 세상을 떠난 인물에 불과하다.
[7] 인간적으로야 존경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공휴일로 정해서 한 국가가 기념해야 할 존재는 못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한때 성탄절을 앞두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랭카드를 사찰 정문에 걸어두어서 9시 뉴스에 등장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때 앵커의 한 마디가 날 씁쓸하게 했다. “내년 ‘부처님 오신 날’에 한국 교회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8] 불교가 넓은 마음으로 먼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해줬으니, 기독교도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럴까? 피조물과 창조주 중 한 분이신 예수님을 동급으로 해서 축하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한때 불교에서 제일 존경받는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의 글을 가지고 기독교계에서 ‘기독교의 유일성과 불교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잘못 활용한 일들이 있었다.
[9] 성철 스님의 열반송 중 한 대목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간 기독교의 많은 설교자나 부흥사들이 이 내용을 인용해서 지옥에 갈 것을 고백한 ‘성철 스님의 유언’이라고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성철 스님의 애제자인 원택 스님은 혀를 차며 발끈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 “반어적인 긍정이 선(禪)적 표현의 묘미인데, 진의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선교의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남의 글을 잘못 인용하는 것은 실례이자 무지를 드러내는 처사가 될 수 있으므로 삼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성철 스님이 남긴 아래의 글에서는 그가 평소 추구하며 닦아온 수행의 한계로 인한 고뇌와 허무함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11] 그의 유일한 혈육인 딸 필히와는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는 찾게 되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금강경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똑같은 말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경에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93/11.9. 조선, 동아, 일간신문들 중)
[12] 아무리 선(禪)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해도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 죄를 해결할 자가 없고 구원도 없다는 게 참 불교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교회와 신학교 안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위기의 상황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
[13]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만 믿고 따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아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음을 믿고, 아직도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과 영생의 길임을 당당하게 전했으면 좋겠다.
- 신성욱 교수(아신대) 페이스북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