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누구지? 아는 사람 전화 외에는 거의 받지 않는 생활이다 보니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서 다시 전화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는 소문도 어지간히 났는가 보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전화 드렸는데 안 받데요.” 불만 섞인 소리를 해대는 경우도 있다. “아, 그랬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수업 중에는 전화를 못 받아요.” 그렇게 둘러댔다. 정치 지방생도, 사업가도 아닌 나로서는 굳이 모든 사람의 전화를 받아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을 한 지 오래 되다 보니 용건 있는 사람이 나와 친한 사람의 전화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때도 있다.
그랬다. 한 때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과거는 으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각색으로 화려한 면만 부각시키는 경우가 있다. 과거란 시간을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문자로 알릴 내용을 알리고, 연락을 하지만 예전에는 전화만큼 중요한 연락 수단은 없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예전 그럴 때의 풍경을 복귀하다 보면 내 못된 행동을 남들이 볼 수 없는 뒤편으로 슬며시 숨기려 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소인배로, 위선자로, 때론 시정잡배의 주인공처럼 행한 행동의 결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그런 행위를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하며 덮어주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개인을 떠나 사회적 문제나 집단일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과거의 일이라도 공론화, 재조명시키면서 바로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역사 위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 말이다. 전쟁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군부 독재에 의해 행해진 고문치사라든지, 기업과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라든지, 기업의 이익 챙기기에 동조해서 노조를 탄압하든지……. 과거의 역사에서 잘된 것과 못된 것을 확연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세월의 이끼에 덮여 쉽지 않다. 그것을 걷어내고, 재해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안의 문제 본질이 호도(糊塗)된 경우도 숱하기 때문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란 뜻이다.
개인이지만 나 역시 내 행동이 바르지 않았을 때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려 힘썼다. 특히 그것은 오래 전 직장 생활할 때, 단체 모임에서 봉사할 때 있었음을 발견한다. 직장생활이든, 직장 밖 모임이든 인간관계라는 것은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활동을 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경쟁과 갈등과 쌓인 일거리로 빨리 그만 두고 싶은 경우가 있었다. 나는 교사로서 명예퇴직의 유혹의 물리치고 정년까지 유지했다. 직장 생활할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다. 수직, 수평 관계의 직원들과 갈등보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 학생들의 학교폭력 때문이었다. 학생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는 종종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뒷배경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면서 갈등과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잊으면서 긍정의 맘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긍정의 맘을 키울 수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시 읽기였다. 압축된 상징의 시(詩) 안쪽으로 숨은 의미를 찾는 일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궁리 끝에 해결하는 과정과 같았다. 시의 해석은 정답을 벗어나 내 멋대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즐거움이기도 했다.
은퇴자로 생활하면서 나름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하루를 맞이한다. 감사, 독서, 창작, 운동, 봉사. 이 다섯 가지는 내가 은퇴 후 추구해야 할 생활 지향점이다. 그러면서 종교인으로 매일 기도도 빠뜨릴 수 없고, 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뉴스를 접하다 보면 정치적인 일로 열 받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다. 독선적인 정치가의 언행과 편 가르기 식의 행태에 화가 치밀 때도 있다. 객관적 안목을 가지려 하지만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발을 들여놓으면 나도 모르게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지성인으로서 정치를 외면할 수도 없지만 결국 핵심 타이틀만 읽고(보고) 다른 지면(채널)으로 넘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에 나는 최선을 다 했나 반성하게 된다. 오늘의 우리나라,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의 나를 들여다보며 내 자리를 생각할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앞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은퇴 전 생활할 때 힘들고, 지칠 때 시를 읽으며 좋아했던 구상 시인의 ‘꽃자리’는 지금도 종종 읽으며 내 자리를 생각한다.
꽃자리/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과거 한 때, 아니 직장 생활할 때였다. 종종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가 ‘꽃자리’라는, 아무리 힘들어도 ‘꽃자리’라고 믿으려 노력했다. 구상 시인의 잠언 같은 시구를 읽으며 긍정의 맘으로 현실을 바라보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년까지 채우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은퇴 후 귀향하고, 책을 보관하는 서고 ‘시월서고(詩月書庫)’ 한쪽에는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꽃자리니라‘란 이길상 서예가의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그것을 마주보고 책을 펼치다 보면 앉은 자리가 정말 꽃자리란 생각이 든다. 나이 들면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한 살 나이 더 먹어도 책 욕심, 글 욕심을 내려놓기 힘들다. 더욱이 그것이 내 삶의 주춧돌 같은 것으로 절대로 내려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매일 서고에 들어가 책을 훑어보며 한쪽에 걸린 ’꽃자리‘를 읽어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꽃자리니라
지금의 가치는 ‘꽃자리’로 과거나 미래보다 월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하루하루의 생활이다.
그것에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 2022년 8월 3일(수) 카페 ‘시월(詩月)’에서
첫댓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쾌청한 날들 보내세요
회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