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물은 하나 없는데 이상하기는 커녕 흥미진진한,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안동은 서울에서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평소 실제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느끼고 살았던 것 같다. 안동이 주는 이미지가 워낙 고고했던 탓이다. 턱 아래까지 기른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향해 '여봐라~'를 외칠 것 같은, 내 머릿속 어딘가 있었던 시대 착오적인 상상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막상 도착한 안동은 창밖으로 브랜드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여느 도시와 비슷했다. 그리고, 여기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라는 다시 한 번 얼토당토 않았던 내 상상에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박물관 하면 유물을 고히 모셔놓은 곳인데 여기는 그런 유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요상하고 재미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컴퓨터에 이름과 자신의 이메일을 적는다. 그리고 들어오면서 플라스틱 카드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그 카드에 자신의 정보가 자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카드를 갖고 다니다가 박물관 내를 구경하다 소유하고 싶은 정보를 발견했을 때 카드만 갖다대면 자동으로 본인의 이메일로 그 내용이 자동 전송되게 된다. 볼펜과 수첩이 필수였던 옛날도 있었고 요즘은 팜플렛을 잔뜩 집어들고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참 다르다. 특히 입체영상관은 꼭 들려봐야 한다. 안동의 역사를 에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는데다 3D입체라 마치 반지의 제왕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웅장함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 450년 전 그리움이 사무치는, 월영교
달빛이 호수에 비치면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 것 같다고 하여 2009년 운치를 더하고자 만들어진 다리인데, 450년 전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택지 조성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다 분묘를 이장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원이엄마)의 사연이 담긴 편지 한 장도 나왔다. 이응태는 명종 11년(1556)에 태어나 선조 19년까지 31년을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사랑도 그리움도 원망도 절절히 느껴진다.
당신 일찍이 제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희도록 함께 살다가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저를 두고 당신 먼저 가셨습니까.
저와 자식들은 누가 보살피며 어찌 살라하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셨습니까.
당신은 저에게, 저는 당신께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습니까.
항상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도 당신께 제가 말하기를,
'이 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가엽게 여기며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은 가요.' 하고
당신께 말했는데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지 아니하고 저를 버리고 먼저 가셨습니까.
당신과 사별하고 아무려나 저는 살 수가 없으니 어서 당신께 가고 싶습니다.
저를 당신 곁으로 데려 가소.
당신 향한 마음 잊을 날이 없고 서러운 뜻은 끝이 없습니다.
이 내 마음 어디다 두고 자식들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 하며 어찌 살아야 할까요.
제 편지 보시고 내 꿈에라도 찾아 오시어 자세히 알려주소.
꿈에라도 당신 말씀 듣고자 이리 적으니 자세히 보시고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 뱃속에 있는 자식 낳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며 살아야 합니까.
어찌한들 이 세상 이 하늘 아래 내 마음 비할 데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다만 저 세상에 계실 뿐이니, 어찌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이 설움 끝이 없어 다 쓰지 못하니 이 편지 보시고 제 꿈에 꼭 오시어 자세히 일러주소.
저는 꿈에라도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 몰래 오십시오.
할 말은 그지 없으나 이만 적습니다.
무덤안에서는 편지와 함께 남편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삼은 미투리도 있었다고 한다. 미투리는 보통 삼이나 모시 또는 노끈 따위로 삼은 신으로 일반적으로 서민층의 남녀가 사용했는데 월영교의 나무 색상이 미투리 색과 비슷하고 난간과 휴게공간이 미투리 윗 부분과 뒷꿈치 부분과 닮은꼴로 만들어 놓았다. 이외에도 월영교에는 자동 감지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월영교 방문인원을 체크할 수 있는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천광운영대
도산서원으로 가는 발길 옆으로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라는 천광운영대. 이름 참 잘 지었다. 그 아득한 과거부터 지금에까지 강물과 하늘은 변하지 않고 그 시대 사람과 나를 엮어주는 끈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있으려나, 10년 전 쯤 찾았던 하늘을 닮은 호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한 까페가 문득 떠오른다.

# 공부 좀 해라~ 하는 음성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아, 도산 서원
천광운영대부터 도산서원까지의 공간은 무척 넓은데다 안동에서의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하루종일 여기에 머문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을만큼 느낌까지 좋았다. 옆구리에 두툼한 책을 끼고 여기저기 발 닿는대로 거닐다가 따스한 마루에 앉아 나무향 맡으며 책 속에 빠져들고 싶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람을 취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퇴계 이황 선생께서 나를 보시고는 '얘는 공부 좀 해야겠군'하고 나를 콕 찍어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산서원 현판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들었다. 선조는 한석봉에게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쓰라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것이라 짐작하고 불러주는 글자를 뒤에서부터 앞으로 써야한다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석봉은 아무것도 모른채 글을 한자씩 적다가 마지막 한 자인 도(陶)를 듣고는 자신이 도산서원의 현판들 쓴다는 사실에 손이 떨려 글자가 흔들렸다고 한다. 지금도 질그릇 도(陶)자가 떨린 것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자세히 봐도 내 눈에는 어디가...? 하는 정도였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되는데, 도산서당이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 조선시대 여행길의 쉼터 두솔원이 있던 자리, 안동학가산온천
따끈하게 몸을 데우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게 온천이나 찜질 가마가 있는 곳은 그야말로 관광명소가 된다. 그래서 2008년 9월에 개장한 학가산 온천이 그간 58만여명의 입장객이 들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나, 그만큼 안동시 자체에서도 다방면으로 홍보를 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 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건물 내에는 안동시 농특산물 직판장이 있는데 규모는 작아도 안동 고유의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어 쇼핑하는 재미도 볼 수가 있다.

오후 4시 54분. 낮게 내려앉은 구름, 다음날 친절하게도 비가 추적추적...

#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참 다른 인간사.... 하회탈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의 류필기 선생께 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갖었다. 우리의 탈에 이런 사연이 담겨있었다니 이럴 때 모르는 건 약이 아니라 안타까움 그 이상이다. 5세 이하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나까지도 재미있는 말 솜씨와 카리스마에 흠뻑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으니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만큼 류필기 선생의 탈놀이에 대한 아낌없는 마음이 크다 느껴졌다. 참고로 콘텐츠박물관에 가 보면 류필기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잘 찾아보시길... 모든 공연이 그렇겠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배워보니 알고 봐야 재미있는 것이 탈놀이지 싶다. 각각의 탈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듣다가 할미탈에서는 코 끝이 찡해 혼났다.
"하회탈"은 하회마을에서 전해져 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탈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탈은 양반, 선비, 백정, 초랭이, 중, 할미, 이매, 부네, 각시, 총각, 떡다리, 별채탈 등 12개와 동물형상의 주지2개(암주지 숫주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총각, 떡다리, 별채탈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수곡고택의 밤이 무르익어간다.
수곡고택 마당에 불을 지피고 둘러앉았다. 불 위에 올려놓았던 고구마를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었더니 따스함이 은은하게 전해져오고, 입 안에는 졸깃하고 차진 문어가 기분좋게 씹히고 있었다. 새까만 밤 하늘을 파고든 대금 가락에서는 아련하니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서울에 올라가면 문어를 사다가 가족들과 나눠먹어야지, 밤이 무르익어 갈수록 사람이 그리워진다.
첫댓글 사진도 글도 편안~~합니당~~잘보고 갑니당~~*^^*
ㅋㅋ "공부 좀 해라~" 이 글에 폭소ㅎㅎㅎ 맞아요ㅋㅋ 공부를 해야합니다ㅎㅎ
월영교가 너무 아름답네요^^
포스트를 보면서 안동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자세한 설명과 함께 잘 ~~봤어요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안동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안도의 밤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