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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의 치유
고후 5:17, 2023.02.26.늘찬양교회
자화상이란 자아 개념을 의미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자신이 평가하는 자기 모습입니다. 자신에 대한 모습이 긍정적으로 설정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성공적으로이끌어갑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화상은 자신에 대하여 자신이 수집한 자신의 역사와 삶의 과정들, 그리고 모습과 감정들을 종합해 놓은 정신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자화상은 자신의 성격과 철학, 더 나아가 삶의 방향까지 바꾸게 하며 그의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이라고 했습니다.
자화상은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릇된 자화상을 갖게 되면 열등의식, 패배주의, 비관주의, 원망과 시비, 배타와 비판적인 의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며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체념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인생 실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자화상을 갖게 되면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됩니다.
Ⅰ. 자신에 대한 환상과 실제
1. 그릇된 평가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사단의 치명적인 무기는 낮은 자존감, 열등감, 무력감, 스스로에 대한 그릇된 평가로 출발합니다. 마귀는 인간을 스스로 무력감에 휩싸이게 합니다. 자화상이 잘못되면 내면을 마비시킵니다. 나아가서 꿈을 파괴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하여 미리 포기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나아가서 인간관계마저 파괴합니다. 결국, 자화상의 파괴는 자신을 스스로 고립화시키는 것입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늘 그릇된 평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무력감, 열등의식, 비교의식, 혹은 잘못된 우월의식을 가지고는 바른 신앙생활과 영적인 승리를 갖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2. 수반되는 증상들과 반응
부정적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많습니다.
① 고립감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건전한 만남과 즐거운 교제를 갖지 못합니다. 우정이나 교제의 가치를 모릅니다. 인격적 교류가 안 되며 상대방에 대하여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대하기 꺼립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② 성격에 문제가 생깁니다. 초조합니다. 성급합니다. 불안합니다. 내면의 아름다운 모습이 깨졌습니다. 감정이 망가진 것입니다. 의지도 망가졌습니다. 판단능력도 상실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모두 남의 잘못으로 돌립니다.
③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망상입니다. 그래서 반감이나 분노가 지나친 적개심과 보복으로 이어집니다. 파괴적인 사람이 됩니다. 더 발전하면 반사회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④ 정체성과 집중력의 상실을 가져옵니다. 진리를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사실로 믿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설정해 놓은 형식에 맞지 않으면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이 거짓이라고 합니다. 콩을 아무리 콩이라고 해도 팥이라고 우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사물에 대하여 그렇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부정적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자신의 가정과 교회와 더 나아가 사회를 어둡게 하고 파괴합니다.
고쳐야 할 모습입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 열두 정탐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패배주의, 열등의식, 무력감, 비교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을 블레셋에 비교하여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서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신앙심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불신앙 수준이었습니다. 사단이 그들에게 부정적 자화상을 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 사울왕, 이세벨과 아합, 여로보암이 대표적인 부정적 자화상의 인물들일 것입니다.
Ⅱ. 자화상 회복의 방해요소
1. 점검하지 않음
자화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자화상을 점검해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문제 대부분은 자화상을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항상 자신의 자화상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점검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 상담사례입니다. 어느 자매님이 자신의 딸에 대하여 상담해왔습니다. 그 자매님의 딸은 가출하여 술집에서 일하며 많은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딸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볼 수가 없다고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딸에 대한 자화상을 바꾸라고 권면을 해주었습니다. 딸이 소중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서 집으로 그 딸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딸이 자신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대해주는 어머니의 달리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을 경험한 딸은 자기가 세상에서 방황했던 모습들이 추하게 느끼기 시작하고 가치 있는 자화상을 가지게 되며 어머니를 따라서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자화상 회복을 통한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자화상이 달라지면서 그 어머니는 딸을 용서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르게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자포자기
자포자기로 자신의 자화상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의지의 부족이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밝고 맑고 환한 모습을 위하여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를 개선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화상이 바뀌면 행동도 긍정적으로 바뀌어집니다.
Ⅲ. 회복의 과정
1. 자아 인식의 변화
자기를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고향이 북한 평양입니다. 남한에 북한의용군 포로로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있다가 남한에 남은 후예입니다.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어서 곧바로 군에 입대하셨고 상사로 만기 제대하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동생 고향은 논산, 남동생 고향은 연천 그렇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도 없고 또 대학갈 형편도 안 되고 그래서 공고로 진학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고2 때 의무적으로 현장실습을 나가야 하기에 경기도 시흥에 있는 모회사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얼마나 개고생을 하며 인격 모독을 당하였던지…. 치가 떨립니다. 그때 저는 “내 인생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나도 대학 나와서 떳떳한 사람으로 당당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부모님께 “나 대학갑니다”. 그렇게 말하고 홀로 독학하며 무섭게 입시공부를 하여 대학에 합격하였고 지금의 내가 있게끔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환경에 부딪히고 돈에 막혀서 포기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자아 인식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더욱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긍정적 자화상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화상을 갖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자화상입니다. 이런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화상은 그 사람을 자화상대로 행동하게 합니다. 매일 자화상을 위하여 기도하게 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십자가와 자화상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회복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누더기에 생베 조각을 기운 것이 아니라. 용광로에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시 창조된 것입니다. 질그릇이 깨어져 다시 빚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우리의 옛 자아를 못 박고 새 자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새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내 모습은 어떤 것일까?
첫째,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사탄의 절망적인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희망적인 자녀가 된 것입니다. 신분이 바뀌면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위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셋째, 능력이 바뀌었습니다. 나 자신의 연약한 힘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크신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사는 위대한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신분의 변화, 자격의 변화, 위치의 변화, 상급의 변화, 축복의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전에는 죄인이었습니다.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을 운명이었습니다. 저주의 삶이었습니다. 지옥 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 모든 불행을 일거에 해결하였습니다. 은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성령을 보내 주셨고,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모든 어두움의 세력은 내게서 떠나가고 나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영원한 기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3. 훈련과 회복
자화상의 회복은 많은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훈련과 기도 가운데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은 지워지고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밝은 자화상을 확실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북한에 살던 사람이 탈북하여 남한에 귀순하였습니다. 귀순하는 순간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국가는 그에게 국적을 줍니다. 정착금을 줍니다. 직업교육을 시켜 줍니다.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정서와 생활습관, 언어, 문화는 아직 대한민국 국민이 못 됐습니다.
북한 사투리, 북한 정서, 북한 생활습관이 모두 바뀐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세월 동안 남한에 살면서 적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화상이 바뀌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모두 지우는 데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지워야 합니다.
긍정적 자화상, 그리스도 중심의 자화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1)
사실 저처럼 많은 실패와 넘어짐의 역사를 경험해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십자가의 힘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실패의 현장, 넘어짐의 현장, 고난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십자가의 은혜가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참으로 위로할 수 없습니다.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십자가 주님을 체험해 보십시오!
복음은 생명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변화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흙수저라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면 부정적인 자화상이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바뀝니다. 겉치레의 만남으로는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내 모든 연약함을 대신 지시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선포하시는 주님의 음성과 능력을 내가 덧입어야 합니다. 그 음성을 듣는 자가 여호수아가 갈렙처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적군을 몰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듯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 안에 해답이 있고 능력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화상을 바꾸어 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됩니다.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것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은혜의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