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5-5)성찰의 경
1.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수행승은 성찰할 때에 의식이 밖으로 산란하지 않고,흩어지지 않고,안으로 고착되지 않고,집착을 여의고,혼란을 여의도록,그와같이 성찰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그의 의식이 밖으로 산란하지 않고,흩어지지 않고,안으로 약화되지 않고 집착을 여의고,혼란을 여의면,미래의 태어남,늙음,죽음의 괴로움의 원인이 생겨나지 읺는다."
2.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의취를 설하셨고 그와 관련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이 일곱 가지 집착을 끊고 존재의 통로를 부수었다면,
그에게 생의 윤회는 부수어진 것이고
다시 태어남은 없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의취도 역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
성찰의 경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 것)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생각하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마음을 스쳐 지나가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사라지지만 또 어떤 것은 오래도록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불러오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그려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습성입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리면,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그날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되살려 냅니다.
말은 이미 그 순간에 끝났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 말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오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과연 그때 들었던 말 자체일까요,
아니면 그 말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자신의 마음일까요.
상대는 이미 그 말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마음속에 다시 세워놓고,
스스로 상처를 입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놓지 못하는 마음의 습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생각이 많아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미리 걱정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를 상상하며 두려워합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그 일을 몇 번이고 겪어버립니다.
생각 하나가 일어나면 그 위에 또 다른 생각이 얹히고, 그 위에 다시 감정이 포개집니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작은 생각 하나에 지나지 않던 것이, 어느새 마음 전체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괴로움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억이 떠오르고,
걱정이 생기고, 화가 일어나고,
서운함이 생겨나는 것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면 피할 수 없습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억지로 없애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그 생각을 따라 끌려가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는 '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서운함이 생길 때는 '지금 마음이 서운하구나' 하고, 걱정이 찾아올 때는 '걱정하고 있구나' 하고 그저
알아차립니다.
좋은 생각이라 하여 붙잡지 않고, 싫은 생각이라 하여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일어난 것은 일어난 그대로 바라보고,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을 사띠, 곧 알아차림이라 합니다.
그것은 생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과 나 사이에 조용한 거리를 두는 지혜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지켜보다 보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생각에 우리가 덧붙이는 감정과 해석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스스로 상처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마음입니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불러오는 것도,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끌어당겨 걱정하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른 성찰은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지나간 말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끝나버린 관계에 여전히 마음을 매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옳다'는 하나의 생각을 끝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물음을 조용히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 그것이 곧 성찰의 시작입니다.
수행이란 새로운 무엇을 얻어 채워 넣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놓고, 한 감정을 놓고, 한 집착을 놓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놓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다만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끌려다니지 않으려 하면 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자리에 두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그곳에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더 이상 그것을 붙잡지 않을 때, 그 순간 비로소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생각을 없애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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