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운주사 雲住寺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운주사의 입구에 백일홍이 아담하게 피어 있다.
날씨도 더운데 운주사를 답사하였다. 노후에 즐겨하는 답사다 .
화순에 있는 운주사입구의 일주문이다. 영구산 일주문이라고 쓰여져 있다.
남도의 산간오지에 이렇게 운주사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일주문도 영구산 일주문이라 거북이가 만년을산다면 귀신이
된다는 설에따라 영구산이라했고 일주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이절은 그렇게 웅장하거나 화려하지가 않다 아담하다고 해야할까 .특히 千 佛 千 塔 이라고 할정도로 불탑과 석불이
사찰경내에 요소요소에서 찾아볼수 있다
운주사 경내로 들어가니 9층석탑이 위용을 보이고 있다.운주사는 이렇게 석탑이 요소요소에 세워져 있다
여기세워진 9층탑은 탑신(塔 身)의 높이가 10.7미터나되고 부여의 정림사지 5층탑과 유사함을 느겨볼수 있다.
여기 이탑은 운주사에서 제일 높은탑이며 탑의 좌대(座 臺 )는 자연석 좌대위에 세워진것이 멋이있고 다른탑에서
찾아볼수 없는 형태이다
경내로 들어가면서 산쪽으로 한곳에 여러가지 유형의 석불들이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기원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각각 그형태가 틀리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민족의 하나의 예술성을 엿볼수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우리중생을
사랑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여기도 여러형태의 석불들을 찾아볼수 있다 . 운주사경내의 한곳의 아담한곳에 이렇게 석불을 보셔 놓고
있으니 ,우리인간도 자연으로돌아가는 하나의 이부분임에 이렇게 석불도 그냥 자연의 품속에 모셔 놓은것
같다.
저석불은 서민적 석불형태를 보이고 있다 .여기이곳 운주사에 있는 석불들은 주로 그작품이 예술적이고
여러형태의 석불이며 해학적인 형태도보이고 있다
여기운주사는 크고작은 석탑이나 석불들이 저런형태로 경내에 배치되어 있다는데서 사찰의 특색을 볼수 있다
자연석의 위치에 어울리게 석불들을 모셔서 운주사내의 석불의 예술성을 느낄수도 있다.크고작은형태 그리고
모양도 여러가지 형태,마치 우리중생들의 모습과 같이 ....... 부처님도 우리의 먼곳에 있는것이나니고 우리 가까히
중생의 마음속에 부처의 마음도 있느것인지.........................!!1??
여기있는 석탑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내로들어가면서 오른쪽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세워져있다
여기도 바위밑에 석불 3개의 작품이 만들어져 있다.여기에 세워진 석불도 자연의 한모퉁이에 천년의
풍우에 시달리면서도 이답사객을 위해서 석양의 노을속에 자애로운 중생을위한 염원으로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다.
경내로 들어가면서 왼쪽의 언덕바위에 돌위에 7층의 석불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불교문화의 진수를 볼수
있는것 같다.우리민족의 불교문화의 예술서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리중생의 부처를 되고져하는 마음씨를
엿볼수 있다
여기에 세워진 석탑을 보수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아무리 석탑이라도 풍우에 시달려서 본래의 모습이 변모를
가져올것이다. 더 머얼리에도 석탑이 서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7층의 정교한 석탑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뒤로는 석불이 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운주사에 세워진 석탑과
석불을 보면 종종 불교의 야외 박물관같은생각을 들때도 있다.여기 운주사는 통상의 왕실사찰인 경기도 화성시에
정조대왕이 세운 용주사와는 완연히 틀리다.수많은 석불들도 그얼굴생김새도 가지각색이다
운주사내의 이러한 석불들이 千 基 나 있었다고 하니 감히 이운주사내의 석불과 석탑이 얼마나 자연속에서
우리네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신앙으로 염원하였는지를 가름해볼수 있다.
천불산 아래의 운주사의 경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좌로는 원형다층석탑이 보인다.
그앞으로도 2점의 석탑이 나무에 가리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 석불은 감실내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 797호이다. 운주사내의 불감은 석탑형식으로 감실을 만들어 그곳에
석불을 봉안합니다 감실안에 두개의 여래 좌상이 남북으로 서로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제작년대는 나말여초로
추정되고 높이는 5.3미터 재료는 화강석이다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의 모습과 비교하면 여러형태의 비교에서 차이가
나지만 각기 다른형태에서 가치를 가질수 있다.경주석굴암은 동해안을 바라보고 웅장한 석불을 볼수있지만
그리고 정교한 석굴암의 모습을 볼수 있지만 여기 감실에 좌대한 석불은 아담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석불임에는 틀림없다
여기 석탑도 국보798호이며 그형태는 원형으로 다른석탑에서는 볼수없는 형식이며 圓 形 多 層 石 塔이며
6층이다.밑에 좌석도 원형이다. 이러한 다양한 석탑에서 그리고 석불에서도 다른사찰에서도 전혀 찾아볼수
없는 불교사찰의 진수를 느껴볼수 있으며 백제문화권의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된다.
전노원구청장이시고 현노원구 국회원이신 이노근 위원님이 쓰신" 운주사로 날아간새" 이다층원형의 석탑을
한반도에서는 이곳운주사에만 있다고 평가를 하고 있다
여기는 운주사의 경내로 들어가는 곳이기도하다
이곳은 대웅전앞의 석탑이 훼손되고 풍우에 시달려서 세월의 역사앞에 한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뒤쪽에도 석탑이 있는데 보수 중인것 같다.마음한구석에는 아까운 보물들이 풍우에 시달리고 훼손되어서
보수를 하는구나 하면서도 마음이 썩좋지가 않다
운주사 뒤쪽으로 계속길따라 올라 가보았더니 고인돌인지 그모습을 볼수 있었다. 특히 화순은 고인돌이
집단적으로 보존되어오고 있다. 제가 알기로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다.
옛날에 화순의 고인돌도 답사를 한적이 있다
천불산 계곡따라서 정위치에 자리를 잡은 운주사는 저기 00산을 안산으로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아 천년의 역사속에 우리민족의 불교문화의 발전상을 볼수 있어서 이답사객의 마음한구석에
마음흐믓하함을 느낄수 있었다.여기서 고려말의 나옹선사의 시(詩)하나가 생각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바다는 나를 보고 청청히 살라하네
대지는 나를 보고 원만히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없이 살라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운주사 경내의 대웅전을 뒤로하고 뒷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앞에는 큰나무가있고 그옆에도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석탑이 3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한마디로 운주사는 가는곳마다 석불이고 석탑이다
이 답사객도 여름철에 남도의 산간오지의 운주사를 찾아서 땀을뻘뻘 흘리면서 답사를 하여 그기념으로 석탑앞에서
모습을 잡아보았다.정말 무더운 날씨였다
여기도 대웅전 옆의 선원이다.여기도 석탑이 또하나가 세워져 있다.
여기는 대웅전안에 모셔진 부처를 한번 모습을 담아보았다.여기운주사는 다른사찰과 틀리게 야외 석불들이
요소 요소에 자연속에서 모셔져 있으니 운주사는 전사찰의 경내가 부처님의 마음으로 가득차있어서 우리 중생들의
마음을 이끄는데 전력을 다하나보는것 같다.
운주사의 불상중에서는 역시 백미가 와불구역이다. 여기는 와불성지(臥 佛 聖 地 )로가는 길목이다
위쪽으로 올라가 면서 2개의 석탑이 정결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으며 더위로 조금올라 가면 입불이
서있다.
여기는 칠성단과 와불의 성지로 가는도중에 그곳에서 운주사 대웅전을 향하여 모습을 담아보았다.
주위에 노송들과 백일홍이 경내를 더욱더 운치를 더해주고 이답사객을 더반갑게 맞이하여 주는것 같다
와불성지를 미쳐못가서 5층석탑이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또하나의 석탑과 같이 운주사의 석탑의
사찰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문화권의 긍지를 보여주는 사찰이라고 평가를 해도 틀린이야기는 아닌지?
와불성지로 가기전에 저렇게 자연석을 이용한 좌대를 이용하여 7층석탑을 세웄는지 !
한마디로 석탑과 석불을 둘러쌓인 운주사는 우리중생들에게 불국정토(佛 國 淨 土)의 사상에의해
극락왕생의 염원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날씨가더워서 화순에서 3시경에 운주사가 있는 천불산으로 향했다.몇시간을 답사를 하고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비오는듯하게 온몸이 젖어 있었다.그러다 보니 석양이 기울어져 여기에서있는
일명 머슴부처가 입불로써 주군인 대와불을 위해 천년세월을 한결같이 꼿꼿히 서있다고 하니 경탄해
마지않는다.신장이 6미터정도 속칭머슴부 처ㅡ라고 하는데 운주사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군주부처(와불)
머슴부처 --입불 을 볼수 있을것이다
여기 있는 불상이 세우지못하고 누워있는 군주불이라고 하는 쌍와불이다.천부산 산중턱에 저렇게
와불이 있으니 어떤연유에서 부처가 와불로 모셔저 있을까 천년의 세월을 두고도 명백한 이유를
찾아내지못하고 있으니 .... 원래 와불의기원은 석가모니의 입멸(入 滅 )에서 찾는다.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풍수지리학자로 고려왕실,민중들과 소통을하여 민심을 잡았다.전남 영암출신으로 월출산의 도갑사와
광양의 욱룡사 그리고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세웠지요.화순에다세우는 것은 화순땅에서 왕이 나온다는
것이다.천불천탑을 세우는데는 하룻밤에 세워야하는데 무슨사고가나서 일어났어요. 그래서 999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1000기를 끝내려고하는데 그순간 잠에 빠졌지요.그래서 얼마않있어 새벽닭이 울어대자 행자는
작업을 그만두고 달아났답니다.그래서 운주사는 미완성불이 남게되지요.
저기가 오늘의마지막 답사의 칠성바우이다.초대형 맷돌판석이 7개나있다 옆에는 미완성의 석탑이 같이 있다
언뜻보면 7층석탑의 옥개석 자재가 땅에 깔려 있는것 같다.당초 원형7층석탑을세우려 했다.여기서도
무슨일이 일어나서 ㅇ원형의 7층석탑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되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운주사경내의 답사를 마치고나니 온몸에서는 땀이 흠벅젖어서 몸이 상당히 불편할정도이다.
답사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를 서둘렀으나,나는 운주사를 2번에걸쳐서 답사를 하였지만 처음에는 가족들과
관광답사였고,이번에는 현장을 확보해서 정리를 할려고 하였다.그러나 사찰과 특히석불과 석탑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이사람이 답사기를 정리하느라고 이노근 노원구 전구청장을 하셨고 현재는 노원구 국회위원을 하신
이분이 쓰신 "운주사로 날아간새"라는 책을공부하면서 답사기를 정리하였음을 밝혀두며,부족한 이사람이
혹시 내용을 잘못알서 정리한점이 있더라도 많은 이해를 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림니다.
2012년 삼복더위에 도봉산 만장봉아래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