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3차 평창 계방산(2023.1.19.)
오늘은 강원도 평창의 계방산을 다녀왔습니다. 계방산(桂芳山), 달에서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를 찧는다는 그 계수나무 桂 자에, 녹음방초(綠陰芳草)라는 말에 들어있는, 금방이라도 꽃향기가 불어올 것 같은 그 芳 자로 된 산 이름, 산 이름치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이 어디 있을까요?
산을 오르면서 역시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산에 오르니 연무가 옅게 깔리고, 정상에 가까워지니 연무는 더 짙어지고, 이 연무들이 부는 바람에 지나가면서 나뭇가지에 만든 상고대는 대단한 장관은 아니었을지라도 작은 가지가지마다 맺혀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지난주 고헌산 꼭대기에 두고 온 내 등산복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추운 바람을 맞고 있을 등산복을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다가 짙은 연무 속에 있으니 내가 정말 이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고 내가 자연과 일체가 되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인간에게 대자연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 책 ‘우주를 만지다’에서도 많이 얘기했지만, 별을 보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 같은 감정에 젖어 들고, 별을 보면 인생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춥고 안개 자욱한 산에 있으면 어머니 품속 같은 신비함에 젖어 드는 것도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나와 이 대자연이 일체가 된다면 죽음조차도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나와 이 대자연이 하나이고, 나아가 나와 이 우주가 하나라면 죽음은 그 하나 됨이 완성되는 것인데 그것이 왜 두려우며 더구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가 이디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빛나는 저 별에서 왔습니다. 저 우주에서 와서 이 자연 속에 잠시 머물다 더 큰 대자연, 저 우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어쩌면 제 등산복은 큰 축복을 받은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에게 붙어 있어 보아야 1주일에 한 번 외출하고는 옷걸이에 걸려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 헌 옷 수거함에 갈 것이고, 재수가 좋으면 어느 가난한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갈 운명인데, 저 영남 알프스라고 하는 고헌산 꼭대기에서 자연을 만끽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옷에 대해서 짠한 미안함을 갖는 것은 저의 이기심의 일단일 뿐이지 옷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산행일지를 쓰는지 제 넋두리를 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네요. 양해 바라겠습니다.
추운 날씨이지만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지난주부터 광고한 우리 대원 4분(권혁봉, 김인식, 안형준, 유근형)의 팔순 잔칫날입니다. 하산하니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빌려서 삼겹살과 생일떡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성대한 팔순 잔치가 어디 있을까요? 특히 팔순에 등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잔치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일축하 노래에 이어 촛불 끄기가 있고, 회장님의 건배사가 있었습니다. 춥기도 하고, 삼겹살 많이 먹을 생각에 대부분 산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내려와서 그런지 이렇게 맛있는 삼겹살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삼겹살 이렇게 많이 먹어본 것은 처음입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집에 오지마자 소회제 먹었습니다.
네 분 팔순 축하하고 또 축하합니다. 제 기억에 우리 산악회 팔순 잔치는 방석하 선생님이 하고 이번이 두 번째 같은데, 총무님 말씀처럼 어쩔 수 없이 팔순 잔치는 우리 산악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저는 두 분에게 구순 잔치는 더 성대하게 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두 분을 보니 구순 잔치는 물론 백수 잔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 10년 뒤의 구순 잔치가 벌써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구정을 앞둔 마지막 산행이라 마치 연말 산행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장님 인사에서 구정맞이 인사가 없었다는 대원들의 성화에 회장님이 두 번이 앞으로 나가서 인사를 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안형준 전회장님이, "헌년 보내고 새년 맞이하시라."는 말에 모두 웃엇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분마다 설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회원님들 설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팔순을 맞이하시는 네 분, 부디 건강하기고 더 성대한 구순 잔치를 기대하겠습니다.
회원님들, 오늘도 너무나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첫댓글 총장님의 등산복 행방이 궁금했는데 그나마 대자연, 우주로 돌아갔을거라는 결말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산행도 선배회원님들의 따뜻한 베풂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팔순을 맞으신 선생님들과 모든 회원님들 더욱 건강한 계묘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