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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암 촘스키
1955년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가 된 그는, 1957년에 저술한 『통사구조론(Syntactic Structures)』과 1966년의『변형-생성문법의 이론』이 당대의 언어와 정신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명저로 평가받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976년에는 MIT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교수들에게만 부여하는 특별교수 즉, 언어학․철학 학부의 인스티튜트 프로페서(Institute Professor)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어학과 철학을 비롯하여 국제문제와 미국의 대외정책 등에 관한 정치분석가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의 저서로는 영어권 지역에서 30만 부 이상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촘스키, 9-11』과 『패권인가 생존인가』 등이 있다.
▣ Summary
노암 촘스키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인간본성의 궁극적 가치인 자유가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에 예속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를 아우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장갑이 벗겨진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적 권리와 조직체가 상실된, 상품의 가치가 극대화된 순수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원리를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 참정권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선거는 시장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며, 정치헌금은 궁극적으로 투자가 된다. 따라서 주요한 모든 정책에는 국민이 선거로 들여보낸 적이 없는 기업이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촘스키는 민주주의가 후기자본주의 즉,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적인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가장 근접한 사회형태인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옹호한다. 촘스키가 주장하는 사회형태는 인간본성의 궁극적 가치인 자유를 보장하면서, 모든 사회 기능이 공동체에 의해 관리되는 사회형태를 말한다. 이는 사회주의와 연결된 자본주의이기도 하면서 무정부주의와도 동일시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촘스키의 주장은 이제까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주류의 분석가들은 이를 금기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어떤 가치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촘스키의 주장은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소외되어 있다. 따라서 그 변화에 대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촘스키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정치사상가이므로 주류 정치권과 대기업 집단 그리고 매스미디어와 교육을 장악한 인텔리들의 선전 공세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보통선거권, 여성의 권리, 노동조합, 그리고 자유와 같은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는 조직화된 정치운동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진정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 차례
1장 제1개념, 고전적 자유주의
반인간적 제도, 국가
반자본주의
관료제와 독재국가에 대한 비판
2장 제2개념,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로 가는 길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미국에서의 혁명운동
3장 두 가지 반론
첫 번째 반론, 인간의 본성
두 번째 반론, 효율성
4장 제3과 제4의 개념,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사적 권력과 사적 제국들
미국의 군사화와 영구 전시경제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발명품들
이상과 혁명
보론 부시행정부와 제국주의 거대전략
세계 패권을 향하여
대국과 소국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금언
미국의 생사여탈권
최악의 예방전쟁
지배와 그 딜레마
부록 1 선진교수, 노암 촘스키에게 묻다
부록 2 세계 최고의 대중적 지식인, 촘스키와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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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1개념, 고전적 자유주의
반인간적 제도, 국가
선진 산업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의 네 가지 이상화된 사회형태를 논의의 틀로 잡고자 한다. 그것은 각각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이다. 이 개념들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나의 관점을 분명히 밝히자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구상이 기본적으로 올바르며 현시대에 적절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선진 산업사회에 맞게 확장한 개념이다. 그러면 이제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부터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 및 사회에 최소한의 국가 개입만을 허용하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제한적인 개입 이외의 모든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사람이 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이다. 그는 1792년에 쓴 『국가 행위의 한계』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국가는, 인간을 국가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으면서 개인의 목적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탐색적이며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결국 국가는 반인간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의 행위와 존재는 인간 잠재력을 풍부하고 조화롭게 개발하는 것과는 궁극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훔볼트는 루소나 데카르트 학파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주된 속성을 ‘자유’라고 파악했다.
훔볼트는 더 나아가 착취와 ‘노동 소외’ 이론의 원리를 전개하는데, 다음과 같은 논의로 이어나간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아닌, 자신이 행하는 바를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정원을 손질하는 인부는 정작 정원관리에는 무관심한 채 그 결실을 향유하기만 하는 집주인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원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노동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인간은 자신만의 재능과 기술로 노동을 개선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지성을 배양하고, 인성을 고귀하게 만들며, 자신의 기쁨을 고양시킨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이와 같은 유익한 영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연유하지 않은 일은 참된 인간의 에너지가 아닌 단지 기계적 정확성으로 수행된 일일뿐이다.”
반자본주의
훔볼트가 보기에 인간은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창조에 임할 때, 생산도구가 아닌 한 명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인간 본성에 관한 훔볼트의 발상의 요체이다. 이러한 설명을 마르크스의 ‘노동의 소외’와 비교해보면,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부정이 생길 때, 또한 그로 인해 육체가 소진되고 정신이 타락할 때 노동의 소외가 발생하며, 과학이 노동과정에 도입될수록 지적잠재력을 노동자에게서 떼어놓는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훔볼트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대해서는 급진적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그것이 전개된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은 대단히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훔볼트는 자신의 책에서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문제는 강조하고 있지만, ‘사적’ 권력의 위험에 관해서는 우려하지 않았다. 훔볼트는 사적 인간의 개념이 나중에 법인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시대에 이르러 기업과 같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해석되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즉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모두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라는 현실 앞에서 난파선처럼 가라앉게 되리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 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인간 존재를 보전하고 물리적 환경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는 점도 내다보지 못했다.
관료제와 독재국가에 대한 비판
훔볼트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이론을 표현하고 있지만, 루소가 찬양한 ‘자기 자신 속에서 사는 미개인’과 같이 원시적인 개인주의자는 아니었다. 그것은 훔볼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인간 사회의 모든 속박을 깨뜨리면서도 가급적 그만큼 많은 새로운 사회적 결속을 맺으려고 애를 쓴다. 즉 고립된 인간은 속박 당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훔볼트는 국가나 여타 권위적인 제도의 강압이 없는, 자유로운 결사의 공동체, 즉 자유로운 인간들이 창조하고, 자기가 가진 힘을 최고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를 고대한다.”고 했다. 기실 훔볼트는 자기 시대를 훨씬 지나친 산업사회에나 어울리는 무정부주의적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라는 틀 안으로 모아지는 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회형태이지만, 오늘날 대중의 의식을 각성시키고 새로운 사회적 참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 즉, 서구 민주사회에서 지금까지 실현되고 있는 개인의 권리 보장이라든가,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 집단공동체),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평의회 등과 같이 권위주의적 관행과 공존하고 있는 여러 노력 등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의 요소들을 감지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내가 판단 기준으로 세우고자 하는 국가에 대한 첫 번째 개념은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관점은 국가의 기능을 철저하게 제한하여 다양성과 자유로운 창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간 본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속박을 제거하고 경쟁적 탐욕이나 약육강식의 개인주의가 아닌 사회적 결속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관점은 산업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즉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이루는 소유 중심 개인주의와는 정반대 입장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사상이 산업자본주의의 이해와 결합될 경우,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로 곧바로 통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2장 제2개념,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로 가는 길
「1886년 5월 4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노동자 집회가 열렸다. 집회 취지는 8시간 노동제 요구와 경찰의 노동자 살해에 대한 항의였다. 집회는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경찰이 해산을 명령했고,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폭탄이 터져 순식간에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그 뒤 경찰관 살해를 교사했다는 혐의로 어거스트 스파이즈, 아돌프 피셔를 비롯한 무정부주의자 8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받았다. 그러나 1893년 일리노이 주 신임 주지사는 재판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금고형을 받은 3명을 특별 사면했다. 오늘날 5월 1일 노동절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이 사건의 순교자 가운데 한명인 아돌프 피셔(Adolph Fischer)는 “모든 무정부주의자는 사회주의자이지만 모든 사회주의자가 반드시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좌익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톤 판네쿠크(Anton Pannekoek)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관된 무정부주의자라면 정부에 의한 생산의 조직화에도 반대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목표는 착취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므로 생산에 대한 국가 관료들의 지휘와 공장의 관리자, 과학자 등의 지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대목은 급진 마르크스주의가 무정부주의의 흐름과 합류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국가가 관료주의적 전제정과는 다른 무언가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했다.
영국 공산당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폴(William Paul)은 1917년에 쓴 <국가 : 그 기원과 기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미래의 정치적 국가는 ‘지배계급의’ 정부를 의미하는 반면, 사회주의 공화국은 전체공동체를 위해 관리되는 ‘산업의 정부’가 될 것이다. 전자의 정부가 다수의 경제적 ․정치적 종속을 의미하는데 반해, 후자의 정부는 만인의 경제적 자유를 뜻한다.” 폴의 이론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자유지상주의 이론과 닮았다. 특히 국가가 소멸되어야 하며 사회가 산업적 조직화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원칙도 매우 유사하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이것이야말로 무정부주의 혁명가들의 근본사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에 대한 인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상이 1차 세계대전 뒤의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1936년 스페인 카탈루냐(스페인 내란) 등으로 펼쳐졌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우리는 앞장에서 국가가 왜 산업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상적 산업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산업은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들 가운데서 선출한 산업관리위원회를 통해 민주적 소유와 통제를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회적 활동과 사회의 여러 산업을 수행하는 사람들 또한 지방 및 중앙의 산업평의회를 통해 대표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자들은 공동체의 필요와 소통을 담당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정치와 국가는 사회주의개념의 산업관리위원회로 대체될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윌리엄 폴과 같은 사람들은 평의회 공산주의야말로 산업사회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의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자 한다. “평의회 공산주의라 할지라도, 독재적인 엘리트 집단이 산업 체제를 좌지우지할 경우에,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란 한낱 속임수에 불과할 것이다. 즉 권위주의적 지배라는 조건 아래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은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위로부터 지시를 받는 생산 과정의 한 도구로 남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흥미로운 부활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영국의 노동자관리 운동은 지난 몇 년 동안 대단히 중요한 세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운동은 기계공․주물공의 통합노동조합과 같은 몇몇 대규모 노동조합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노동자관리라는 원칙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이 운동은 일련의 성공적인 회의를 개최하여 흥미로운 소책자들을 여러 번 선보인 바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의 혁명에서 비롯된 평의회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이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혁명운동
현재와 같은 억압의 물결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선에 입각하여 산업사회를 조직할 수 있는 문제를 가장 중심적인 지적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향한 대중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관념적 고찰은 이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 어느 곳에서든 급진적인 종류의 민주적 사회변혁이 일어날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으려면 미국에 강력한 혁명운동이 존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소한 세계 제국주의의 거대한 중심지에서 반혁명의 개입을 저지하는 국내의 압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능성을 통해서만 자국의 강압적인 국가기관을 타도하고 경제를 민주적 통제 아래 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국가를 논의하기 위한 두 가지 판단 기준인 고전적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언급했다. 이 두 사상은 국가의 기능이 억압적이며 따라서 국가의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산업사회의 민주적 조직화를 위해 국가권력을 제거해야 하며, 모든 국가기관을 그 기관의 작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직접 통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평의회, 소비자평의회, 코뮌의회, 지역연방 등의 공동체 조직이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체제에서 각 조직의 대표자들은 사회집단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고 그 집단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소환 가능한 대의제도라 할 수 있다.
3장 두 가지 반론
첫 번째 반론, 인간의 본성
복잡하고 고도로 기술적인 사회에서 내 주장과 같은 사회구조가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그 반론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 범주는 자유로운 사회조직은 인간 본성에 반대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범주는 이런 조직은 효율성의 요구와는 양립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주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자유로운 사회조직은 인간 본성에 반대되는 것인가? 일찍이 2백 년 전에 루소는 자유야말로 본질적이면서도 인간을 규정짓는 인간의 속성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궤변을 일삼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비난했다. “자유란 순결이나 미덕 같은 것으로서 그것을 스스로 향유할 때만 가치를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 맛도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루소의 말처럼 자유인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박당한 채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식을 찬양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이 멸시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서는 쾌락과 안식, 부와 권력, 심지어 생명까지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볼 때, 자유에 대한 논의는 노예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릇 자신이 가진 힘을 자유롭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로워야 한다. 훔볼트도 루소와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내가 보기에 자유란 인간의 본성 자체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무능력은 도덕적․지적 힘의 결핍에서 생겨나므로 이런 힘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자유의 결핍을 메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도덕적․지적 힘이 행사되어야 하며, 이런 힘의 행사에는 그 활동을 일깨우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루소나 훔볼트가 표명한 견해의 정확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과 직관에 의해 이를 평가해 볼 수는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이 독재자를 추종하거나,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았는가.
두 번째 반론, 효율성
평의회와 같은 대의 공동체가 산업 체제의 가장 작은 기능까지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연 효율성과 양립할 수 있는가의 반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어떤 이들은 중앙집중적인 관리가 기술상의 필수요건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허약한 주장임이 드러난다. 중앙집중적인 체제에서는 경제 엘리트 집단조차도 일정한 목표를 위해 생산을 조직하는 체제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즉 그 목표에 권력, 성장, 이윤 등은 포함되지만, 공동체의 필요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만이 이런 필요와 이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엘리트들의 결정까지도 반영하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효율성이란 개념 자체가 이데올로기로 흠뻑 젖어 있기 때문이다. 즉 상품의 극대화가 인간다움의 유일한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4장 제3과 제4의 개념,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사적 권력과 사적 제국들
이제 마지막으로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국가의 역할과 향후 있음직한 진화, 그리고 이런 현상과 동반하며 때로는 이를 위장하는 이데올로기적 가정 등에 관해 몇 가지 초보적인 관찰을 해보려고 한다. 우선 권력의 두 체제, 즉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구별할 수 있다. 정치체제는 원칙적으로 국민이 선출한,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대표자들로 이루어진다. 반면 경제체제는 공적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사적 권력의 체제로서 여기에는 몇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
첫째, 위로부터 선포되는 자의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권위주의적 기질이 절대다수에게서 미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명령에 순종하고 권위에 동의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 양상은 민주적 통제에 종속되는 의사결정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다. 가령, 법률상으로나 원칙상으로나 선진 산업사회의 중앙기관, 즉 상업, 산업, 금융제도 등에 대중의 의사결정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양상은 사적 권력의 중심부들이 언론 통제를 통해서든 정치조직의 통제를 통해서든 지나치게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리처드 바넷의 연구에 의하면 국가안보체제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최상위 4백 명의 인사 대부분이 뉴욕, 워싱턴 디트로이트, 시카고, 보스턴 등지에서 크게 소리치면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두고 밀집해 있는 기업의 중역실이나 법률사무소 출신이라고 했다.
요컨대, 이른바 민주주의 체제란 기껏해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협소한 범위 내에서만 작동되며, 이런 협소한 범위에서조차도 그 작동은 사적 권력의 집중에 의해, 그리고 기업들과 독재적인 기관들에 의해 주입된 권위주의적이고 수동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크게 편향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소리이다. 오늘날 정치체제와 산업 체제에 있어서도, 비단 미국뿐 아니라 모든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의 정책 형성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의회의 역할이 축소될수록 행정부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몇 년 전, 하원 군사위원회는 이러한 의회의 역할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빗대어 말했다. “의회는 미친 듯이 파이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불만을 토로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기대하듯이 굴복하고 예산을 양도하고, 때로는 투덜거리지만 본래 인정 많은 아저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투표로 악당들을 몰아낼 수 없다. 이 악당들을 투표로 들여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행정부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기업중역과 기업고문변호사 등은 우리가 선거에서 누구를 찍든 간에 여전히 권력의 자리에 남아있지 않은가.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명석한 지식인으로 널리 찬양 받는 로버트 맥나마라의 견해는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맥나마라는 “정책 문제와 같이 극히 중요한 의사결정은 상층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하늘이 내린 정언명령이라고까지 말한다. “하느님은 지적 능력을 공평하게 나누어주었지만, 우리가 이 소중한 선물을 가지고 뭔가 효율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 관리(Management)야말로 바로 이러한 것이다. 관리는 모든 기예 가운데서도 가장 창조적이다. 인간의 재능 자체를 매개물로 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은 관리의 부실에서 기인한다. 현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함은 이성이 아닌 다른 어떤 힘이 현실을 형성하게 놔두기 때문이다.” 맥나마라의 말처럼 이성에 의한 의사결정이 상층부에서 이루어지길 기다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시대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화와 영구 전시경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소수의 대기업이 전체 제조업 기업이 보유한 총 자산의 70퍼센트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그 나머지 기업들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도 연결되어 있어서 시장에서의 독립적인 행동을 가로막거나 저지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력 집중현상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세계 3위의 경제를 이룬다. 이 다국적기업들은 연방정부에 의한 자원동원의 수혜자이며, 이들의 전 세계적인 활동과 시장은 궁극적으로 미국 군대의 지원을 받는다. 다국적 독점 기업들이 미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군대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다음의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과 같은 제국의 기획에 대한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한 선전도구로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것이 냉전 이데올로기와 국제 공산주의 음모이다. 여기에 덧붙일 요소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사회의 군사화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2차세계대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는 대공황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런데 2차세계대전을 통해 중앙정부가 세심하게 통제하는 경제에서 정부가 유도하는 생산을 통해 대공황이 야기한 여러 가지 결과를 극복할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은 중요한 경제적인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경영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Chandler)는 2차세계대전의 경제적 교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부는 뉴딜 정책 주창자가 제안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재정 지출을 했다. 그리고 정부 지출을 통한 생산품의 대부분은 유럽과 아시아의 전장에서 파괴되거나 그대로 남겨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증대된 수요는 이제껏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번영기로 미국을 이끌어주었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군수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국가경제에 대한 엄격하고 중앙집중화된 통제가 필요했다. 알프레드 챈들러가 보수적인 성향의 전문가라는 점을 지적해야겠지만, 뒤이어 벌어진 냉전이 미국 국민의 탈정치화를 더욱 조장하여 국가에 의존하게 하는 한편,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또 공공사업과 공익기업을 통해, 그리고 대부분은 방위비 지출을 통해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심리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 역시 덧붙여야겠다. 사실상 정부 개입은 자본이나 유용한 상품같이 경쟁적인 것이 아니라 사치재의 생산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신속하게 노후화되고 빠르게 소모되며 사용량에 제한이 없으면서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사치재여야 하고, 군수품 생산이 바로 그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발명품들
정부의 가장 설득력 있는 호소는 조국의 방위이다. 실제로 냉전은 통제의 한 기법으로 기능했다. 냉전은 미국의 체제를 지배하는 산업과 기업의 첨단 기술 부문에 납세자들이 기꺼이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게 만들었다. 이데올로기는 이처럼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낸다. 소련 제국주의는 미국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은 아니다. 발명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용된 방법, 즉 이를테면 베트남전쟁을 소련 제국주의에 대한 본보기라고 시치미를 뗀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또한 지식인들이 냉전 시기의 긴장에 현혹되어 베트남 민족혁명의 승리가 모스크바나 베이징의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것도 발명품에 해당된다.
이른바 식자층 사람들이 현혹당한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유진 로스토(Eugene Rostow)를 들 수 있다. 그는 1968년도에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세계질서에 대한 일련의 도전을 제시했다. “소련은 무력으로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고 노력하면서 … 우리를 한국과 베트남 같은 가혹한 시험에 들게 했다. 악의 세력은 한없이 강하며, 우리는 용감하게 이들에게 저항해야 한다.” 이 책은 당시 자유주의 성향의 상원의원 및 학계 지식인들로부터 매우 널리 찬양받았다.
이 경우와 같이 냉전은 군사화 된 국가자본주의에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면에서 미국사회는 열려있으며 자유주의의 가치가 보호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 사람들은 이런 자유주의의 겉치장이 아주 얄팍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사회의 이런 문제점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로 마크 트웨인의 글을 들 수 있겠다.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세 가지를 누리고 있다.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그리고 이둘 중 어느 것도 실천하지 않는 신중함이 그것이다.”
이상과 혁명
현대 민주주의 이론가인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오늘날의 민주정치를 다음과 같은 말로 꼬집었다. “무릇 정당은 정치권력의 획득을 위해 일치단결해서 행동하기로 작정한 성원들의 집단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서로 다른 정당들이 정확히 또는 거의 똑같은 강령을 채택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슘페터가 본 것처럼,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개인들은 기본적으로 이런저런 기업 엘리트 집단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표명한다. 이들이 기업을 대변함으로써 그 기업의 이익이 곧 국익이 되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압도적으로 수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익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선전과 속임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사실은 여전히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동물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기술적․물질적 자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부와 힘을 인간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도덕적 자원 또는 민주적 형태의 사회조직은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의 형태로 표현되고 발전된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계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기관과 사적기관 모두를 제거하는데 헌신할 수 있는 대중적인 혁명운동이 있어야만 한다. 이런 운동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야만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이다.
보론 부시행정부의 제국주의 거대전략
세계 패권을 향하여
2002년은 세계정세에서 중대한 한 해였다. 그 해 9월, 미국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이라크 침략에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이 정책의 가이드라인은 “대국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행하는 반면, 소국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인다.”고 했던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의 금언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전략은 미국에 대항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동맹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유용한 부수 효과를 발생시켰다. 전통적으로 군사비용을 감당해온 민간 경제 부문에 장차 치러야 할 비용과 위험을 전가시켰고, 국가 재정이라는 열차에 대형 사고를 일으킴으로써 연방지출 삭감 등의 압력을 조성하여 부시 행정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9월 17일,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거대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균전에 반대하는 ‘생물학 무기협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거부했다.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향후 4년 동안 생물학 무기협정에 관한 추가 논의를 유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 달 뒤에는 유엔군축위원회의 결의안 의결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유엔군축위원회는 ‘독가스 및 세균을 이용한 전쟁수단의 사용을 금지’하는 1925년의 제네바 의정서’를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두 결의안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권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미국의 기권은 거부권 행사나 다름없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미국의 기권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금지하고 동시에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최악의 예방전쟁
일부분이 유출된 2002년 5월의 국방부 전략 입안 문서에는 ‘우주공간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면 거의 즉각적으로 불시에 공격이 가능하다’는 전진 억제(forward deterrence)의 필요성이 언급되어 있다. 즉, 미국은 위협이 감지되면 언제 어느 곳이든 불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고, 자국은 미사일 방어망에 의해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아무런 경고도, 신뢰할 만한 근거도 없이 이루어질 미국의 자의적인 공격에 생사여탈권을 내맡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새로운 거대전략은 워싱턴 당국에 “예방 전쟁 (preventive war)을 수행할 권한을 부여한다.
패권을 발휘하는 강대국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정책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본보기가 되는 행동을 통해 이 정책을 국제법의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하게 된다. 그러면 저명한 전문가 몇몇이 나서서 유창한 논리로 이를 보증하게 된다. 어쨌든 오로지 총을 가진 자만이 규범을 확립하고 국제법을 수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날조된 위협이나 상상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예방’이라는 용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예방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일이어야 하고, 수고를 감당할 만큼 중요성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존을 가로막는 절박한 위협이면서 궁극적인 악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라크는 모든 면에서 두루 들어맞았다. 앞의 두 조건은 분명했고, 세 번째 조건은 부시 일파의 연설로 충분했다.
부시의 동료들 중에는 미국의 결정적인 지원 아래 후세인이 이란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지지한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워싱턴 당국은 이라크가 지시를 어기고 쿠웨이트를 침략하자 지지를 비난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걸프전 직후 후세인이 반란을 진압하자 다시 후세인을 지지했다. 당시 뉴욕타임즈의 외교 담당 수석 통신원은 워싱턴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담 후세인이 빠진 이라크의 철권 군사정부이지만 이런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차선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미 1991년에 모두 알려졌으나 반란이 성공했다면 이라크는 이라크 국민들의 손에 넘겨졌을 것이다.
선전 공세는 최소한 단기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9․11이후, 온 세계의 동정의 물결이 미국에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미국인들의 대다수는 사담 후세인이 미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긴박한 위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라크가 9․11 테러의 배후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지지는 이런 믿음과 관련이 있다. 선전공세로 인해 유권자들은 당면한 관심사는 제쳐 둔 채 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권력의 우산 밑으로 앞 다투어 밀려들었다. 그리하여 부시 정부는 중간 선거에서 겨우 과반수를 넘어설 수 있었다.
집요한 선전 공세는 이처럼 간신히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좀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국민들을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다수 국민들은 국제적 위기상황에서 미국보다는 유엔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쪽을 선호했고, 유엔이 이라크의 재건을 지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오만과 군국주의에 대한 증오의 물결이 전 세계에서 밀려들었고, 사담 후세인보다 오히려 부시가 평화를 헤치는 커다란 위협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이라크 점령군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는 ‘잠재적으로 무기 생산에 이용될 수 있는 장비를 발견했다’며 입장을 정당화했다.
지배와 그 딜레마
부시 행정부의 가장 눈부신 선전의 성과는 중동에 민주주의를 안겨 주겠다는 대통령의 비전이었다. 또한 유럽을 옛 유럽과 새 유럽으로 편가르기 한 것도 부시행정부 입장에서는 성과였다. 편가르기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2003년 1월에 한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즉, 유럽연합의 중핵이면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 독일 등이 옛 유럽이고, 영국과 이탈리아 및 동유럽 국가 등 이라크 전쟁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쪽에는 새 유럽이란 딱지를 붙였다. 럼스펠드는 옛 유럽에는 욕설을 퍼부었고 새 유럽에는 용감한 결단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옛 유럽은 자국민의 절대 다수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 정부들로 구성되었으며, 반면 새 유럽은 대부분 훨씬 더 많은 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국가들이었다.
이때는 정치평론가들까지 떠들어대는 통에 미 의회는 저질 코미디로 전락했다. 리처드 홀브룩은 ‘새 유럽의 인구가 옛 유럽 인구보다 많다’면서, 이는 프랑스와 독일이 고립되어 있음을 증명한다고 지적하고, 토머스 프리드먼은 프랑스를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인즉, 아직 ‘유치원생’인 프랑스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로 판단해 보면, 새 유럽 국가들은 아직 놀이방에 있어야 했다.
미국은 언제나 유럽통합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럽이 국제 문제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케네디 행정부 시절, 유럽 통합을 주도적으로 지지했던 외교관 데이비드 브루스는 ‘유럽을 미국의 지휘를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동반자로 대하라’고 워싱턴에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는 ‘유럽의 해’ 연설에서 ‘미국이 관할하는 전반적인 질서의 틀’내에서 ‘지역적 책임’을 지켜줄 것’을 유럽인들에게 권고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주축으로 한 산업 및 금융심장부를 기반으로 유럽이 독자 행보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이런 우려는 아시아까지 확대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지역인 동북아시아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훨씬 능가하는 3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외환보유고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선진 산업경제와 풍부한 자원을 지닌 잠재적 통합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에게 큰 위협이다. 그것은 미국의 전반적인 질서의 틀에 도전하는 위협으로 간주되어 불장난을 야기할 수도 있다. 즉, 워싱턴 당국이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영원히 관리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강력한 지배도구였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지배의 딜레마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