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경북 * 영주.봉화 답산을 마치고
회원님들 安寧 하시지요.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산이 어우러진 봉화와 나지막한 산과 강과 흙과 나무에서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영주에서, 先賢들의 유택도 찾아보고, 우리 전통 한옥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새벽길마다 안고
나오신 회원님들에게 거듭 감사함을 전하면서 하루의 답산을 회고하려 합니다.
風水論에 `人傑은 地靈이요, 地靈은 回天命 改造化`라고 하였다.
가는 곳마다 名穴와 名地가 모두 수려한 곳에 있고, 한 시대를 풍미한 人物들이 이런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사후의 幽宅도 이런 곳에 있으니, `좋은 땅에서 좋은 인물이 태어난다.`라는 우리 속담이 답산을 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주곤 하니 오늘도 그 욕구를 억제할 수 없어 `俗師不可見之地` 을 찾아서 가슴 벅찬 즐거움을 맛볼 기회를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회원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아침 8시 미끄러지듯 출발하여 도착지 영주나들목에 10시경 도착, 첫 답산지 溪西 成以性 墓所로 향했다.
溪西公이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봉화군과 연접한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뒷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푯말이 없어
처음 찾아가는 사람에겐 찾기 어려운 곳이다.
<성의성 묘>
나직한 산이 앞뒤로 휘감아 양지바른 마을 뒷산 東南向인 乾坐로 안산은 아미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청룡 백호가 잘 감싸주었고, 破口는 乙破, 右水到左로 定穴하였다.
묘역엔 간소한 석물과 상석, 청백리의 내용이 음각으로 새겨진 묘비가 세워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매게한다.
일생을 權勢에 同調하지 않았고, 관직에 있는 동안 直言으로 일관하였으며, 평생 公私 구별 없이 청렴, 결백,
검소하게 살았으며, 평생 술을 과음하지 않았으니 선생의 행동과 성격이 얼마나 엄격하였을까 생각하면서,
사후의 유택도 소박하고 간소하면서도 자연의 조화를 최상으로 택하였으니 이것이 風水에서 말하는 積德의
결과로 훗날에 부제학(副提學)으로 추서 받고 淸白吏로 녹선(錄選)되었 다고 보인다.
최근 설성경 교수가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로 <춘향전> 이몽룡의 실재 인물이 成以性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성안의 묘>
다음은 4km 거리의 돌고개 근처 두월 2리에 있는 成以性의 부친이며 南原府使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
(芙蓉堂 成安義) 墓를 看山했다. 마을 뒷산 정상부분 西向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산은 좋으나 경사가 심하고 전순이 받쳐주지 못하니 來龍이 洩氣가 심할 듯 案山에 애물단지가 있으니
여자들의 바람기 어이하랴. 차라리 좌편 10m 윗부분에 한자리 定 했다면 靑白 에워싸고 案山 金山에
貴한 孫 영원할 것을 !.
朴여사께서 장만해온 쑥떡 덕분으로 시장한 줄 모르고 오전 看山을 마쳤다,
중식은 봉성에서 봉화의 특미 돼지불고기를 위해 출발이다.
구비 돌아 봉성읍 숯불 구이 전문점 "청봉" 식당에 도착하니 고기 굽는 냄새가 허기진 배를 자극한다.
드디어 술과 불고기가 등장했다. 고기맛과 술 맛은 !.
<청봉식당>
*오후 일정의 첫 번째인 안동권씨 충재 권벌 묘역과 石泉精舍를 향해 출발이다.
석천정사에 기거하는 후손의 안내로 정사 안에 앉아 보기도 하고 샘물도 마시며 정사의 내용도 들으면서,
자연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이 건물 뒤편 큰 바위에 새겨놓은 '석천정(石泉亭)'
'청하동천(靑霞洞天)'처럼 신선이 되어 보는 기분은 누가 있어 알리오.
<석천정사>
이곳 석천계곡과 石泉精舍는 닭실마을의 주산인 문수산(1.205m)을 분수령으로 남서로 흐르는 창평천이
종택 앞 들판을 빙 돌아 환포하고 빠져나가는 水口 處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개울로 동막천과
합류하여 맑은 물과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기 그지없다.
이곳을 石泉이라 하고, 충재 선생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가 부친의 뜻을 기리고자 亭子를 지었는데 石泉精舍다.
< 충재 묘역>
충재의 墓所는 古宅에서 가까운 좌측 편 유곡리 내유곡 큰재 궁골에 있다.
입구에는 재실 追遠齋가 있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神道碑와 墓所로 오르는 대리석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다.
단분(單墳)으로 정경부인 화순 최씨와 합장이다.
묘갈에는 ‘충정공충재권선생지묘(忠定公沖齋權先生之墓)’라고 쓰여 있다.
부친인 의정공 권사빈(權士彬)과 모친인 파평 윤씨, 숙부인 교수공 권사수와 부인 봉화 금씨,
아들 권동보와 권동미 등 後孫들의 墓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산세 수려하고 龍脈의 地氣가 旺하며 멀리 안산 석천계곡과 유곡천이 환포하여 子孫과 財福이 충만하니
더 무엇을 희망하리오.
유곡천을 따라 2km 정도에서 좌회전 샛길을 통하여 물야면 쪽을 향하니 溪西堂 宗宅 푯말이 좌측 편을 가리킨다.
昌寧成氏 成以性 종택과 溪西堂은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에 있으며 조선 중기 문신인 성이성(1595~1664)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건립되었다.
<가평리 계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