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름에는 부르기도 민망한 식물이 여럿 있다. 큰개불알풀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 토종식물은 아니고 유럽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언제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지 않은 세월 우리와 함께 했을 것이다. 현삼과에 속하는 두해살이식물로서 밭이나 밭두렁 또는 길가나 빈터 어디든지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자라며 대표적인 잡초로 취급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잡초는 꽃이 작아서 화려한 큰 꽃에 밀릴 수밖에 없고 딱히 인간에게 어떤 대단한 쓰임새가 있지 않는 한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잡초의 운명은 그야말로 참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뽑히고 짓 발피고 갈아 업히고 무시무시한 제초제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용케 생명력을 이어가기에 그 생명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큰개불알풀은 이른 봄 3월 경 잎겨드랑이 마디에 돋아난 꽃자루 끝에 한 송이 씩 꽃을 피우며 추위가 심하지 않은 제주도에서는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울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10-30 센티미터 정도 옆으로 자라면서 비스듬히 서고 잎 모양은 세모꼴이다. 꽃이 작아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큰 꽃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청초한 인상을 주는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4개의 꽃잎 중 하나는 약간 작으며 선명한 하늘색(코발트색)이고 꽃잎마다 짙은 색의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고 꽃 중심부는 흰색이다. 꽃받침 4개, 수술 2개, 그리고 암술 1개이며 수술 끝에 꽃 밥은 검은 색을 띄고 있어서 하늘색 꽃잎과 잘 어울린다. 저녁이 가까워 오면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다음 날 아침에는 꽃봉오리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큰개불알풀의 유사종으로 개불알풀이 있는데 꽃의 색깔이 옅은 홍색을 띄고 있고 꽃의 크기가 큰개불알풀보다 작다. 큰개불알풀의 이름은 일본의 식물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식물도감에는 ‘큰개의 음낭’(大犬の 陰囊)로 되어있다. 이러한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은 열매 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콩팥 모양의 열매는 중앙부가 세로의 깊은 홈으로 갈라져 양쪽의 둥근 모습이 생긴다. 열매 모양에서 영락없이 개 불알이 연상된다. 열매에는 8-15개 정도 종자가 들어 있다. 개불알풀에는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도 있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인식되어있기에 봄까치꽃은 봄소식을 전해 주는 봄의 전령사 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봄꽃에는 안성맞춤인 훌륭한 이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이 귀여워서인지 봄까치꽃에 대한 시가 많다. 저명한 이혜인 수녀의 시 한 구절을 옮겨보면 ‘까치가 놀러 나온/잔디밭 옆에서/가만히 나를 부르는/봄까치꽃/하도 작아서/눈에 먼저 띄는 꽃/어디 숨어 있었니.....’ 이다. 라틴명의 속명 베로니카(Veronica)는 전설상의 성녀(聖女)다. 서양 사람들은 딸이 태어나면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많이 지어준다. 서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예수가 골고다 언덕 사형장으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갈 때 이마에 흐르는 피땀을 손수건으로 닥아 준 여인이 베로니카였고 순간에 기적이 일어나 예수얼굴이 손수건에 각인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종명 페르지카(persica)는 라틴어로 복숭아를 의미한다. 서양 사람들은 열매모양에서 복숭아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학명은 ‘복숭아 모양의 베로니카’라는 뜻이다. 한자명으로 지금(地錦)이라고 하며 ‘땅을 덮은 비단’이라는 뜻이다.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이 또 하나 있는데 ‘개불알꽃’이다. 이 두 식물을 동일종으로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개불알풀은 현삼과 식물로서 잡초취급을 받지만 개불알꽃은 난초과 식물로서 멸종 위기 종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개불알난’ 또는 복주머니난 이라고도 부르며 커다란 홍색 꽃을 피운다. 큰개불알풀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한방에서 식물 전체 말린 것을 파파납(婆婆納)이라 하고 요통, 백대하 치료에 사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