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문학회 카페에서: 선정자 이선희
--안정옥, 김정원, 류흔의 시
콘크리트에 관한 굳은 생각
안정옥
무엇과 섞이기 전에는 시멘트라 부르고
섞이고 난 후에는 콘크리트라 부르지요
거기에 철근까지 끼워 넣는다면
이 좋은 배합, 이 같은 다정함이 어디 있나요
그러나 이 좋은 관계도 점점 부식될 때가
세상에서 아무리 다정하게 합해져도
그저 한 때의 후광이었다는 거
내게 단 한사람으로까지 지칭되던 그도
그저 한 순간의 후광이었다는 것을
남들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이 물질들도
서서히 상해 가는 과정을 비껴갈 수 없듯
가을이 잠깐 생각 할 여분을 보태주어
이리와 봐, 여기 벤치에 등을 맞대고 앉아
왜 이렇게 덧없는 후광 속에 제 몸을
보태줘야 하는지는 잠시만 접어두고
그저 뜻 없이 불어오는 건들바람에게
당분간만 맡겨 봐요
누구와 혹은 무엇과도 섞이기 전의 나로
남아있게 혹은 그것에 못지않게
그러면 내가 담쟁이덩굴의 몸체 같이
휘둘려 쓴 삶을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요
╶안정옥 시집 『다시돌아 나올 때의 참담함』에서
(화 )접도
김정원
봄이 왔으니
나비 그림 한 점 보냅니다
꽃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나비가 지금 내려앉는
빈 곳이 꽃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당신이
남국에서 온 여왕처럼 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이 완성됩니다
화창한 뜨락에서 당신과 함께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없어서
봄이 서러울 따름입니다
애지문학회 사화집 『북극 항로』에서
등골
류흔
양파 속같이
뽀얀
등짝에 빨대를 꽂고 쭉
빨았는데
입안에 무언가 고였어
괜찮으니 더 빨라고
엄마는 말했지
그래서 더 빨다가
동생에게 빨대를 물려주고는
수돗물로 입을 헹궜지
비릿해서
비릿해서
울컥, 했어
╶월간 《모던포엠》(2023, 3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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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문학회 카페에서: 선정자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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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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