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은 명백히 거짓된 것으로 확실하게 경험한 것인 양 모두 멀리하자. 그리고 확실한 어떤 것을 만날 때까지, 아니 하다못해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이라도 확실히 인식할 때까지 계속 나아가자. 아르키메데스가 지구를 그 자리에서 움직이기 위해 확고부동한 일점밖에 찾지 않았듯이, 나 역시 확실하고 흔들지 않는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온 것은 모두가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감각이 비록 아주 작은 것과 멀리 떨어진 것에 대해 종종 우리를 속일지라도 감각으로부터 알게 된 것 가운데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겨울 외투를 입고 난로가에 앉아 있다는 것, 이 종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두 손이 그리고 이 몸통이 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미치광이의 짓과 다름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미치광이는 검은 담즙에서 생기는 나쁜 증기로 인해 두뇌가 아주 혼란되어 있기 때문에 알거지이면서도 왕이라고,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붉은 비단 옷을 입고 있다고, 머리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고, 몸이 호박이나 유리로 되어 있다고 우겨댄다. 그렇지만 내가 이들의 언행 가운데 몇 가지만이라도 흉내낸다면 나 역시도 미치광이로 보일 것이다.
----데카르트, {성찰}에서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셸 푸코가 꼴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였을 때, 자크 데리다는 미셸 푸코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었다. 미셸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기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는 그 이성중심주의를 통하여 광기를 억압하고 배제했다고 역설한 바가 있었다. 사회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며, 이성이 광기에게 헛소리를 하는 시대라는 것이 미셸 푸코의 진단이었던 것이다.
미셸 푸코의 말대로, 이성과 광기, 정상과 비정상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오히려, 거꾸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던 이성중심주의자들보다는 미쳤다는 것이 더 정상적인 인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는 모든 기원을 흔적으로 보며, 그 어떤 동일성도 부정하는 해체주의의 선구자였던 만큼, 데카르트의 “그러나 감각이 비록 아주 작은 것과 멀리 떨어진 것에 대해 종종 우리를 속일지라도 감각으로부터 알게 된 것 가운데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겨울 외투를 입고 난로가에 앉아 있다는 것, 이 종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두 손이
그리고 이 몸통이 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미치광이의 짓과 다름없을 것이기에 말이다”라는 이 문장을 예로 들면서,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를 그처럼 이분법적인 잣대로 재단한 미셸 푸코의 오류를 비판했던 것이다.
{광기의 역사}를 썼던 미셸 푸코에게는 하나의 편리상 역사의 단절이 필요했던 것이고, 역사의 기원과 역사의 단절을 부정했던 자크 데리다에게는 그 역사의 기원과 그 역사의 단절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대사상가로서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는 그 사제관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논쟁의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