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제기/
벌써 상반기의 마지막 날이다.
우린 1/4분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해답임을 보았다.
그리고 지난 2/4분기를 통해 그에 반응해야 될 나에 대해서, 수직적 관계, 수평적 관계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 그 마지막으로 나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의 관계를 이웃으로 정의해보겠다.
우리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시는데 과연 나에게 있어서 이웃은 누구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관련성경/
(마태복음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6. 이웃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마22:37~40)
논지/ 하나님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벌써 상반기의 마지막 날이다.
우린 1/4분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해답임을 보았다.
그리고 지난 2/4분기를 통해 그에 반응해야 될 나에 대해서, 수직적 관계, 수평적 관계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 그 마지막으로 나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의 관계를 이웃으로 정의해보겠다.
우리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시는데 과연 나에게 있어서 이웃은 누구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이웃의 사전적 정의는 ‘가까이 있거나 접하여 있는 집. 또는, 거기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성경의 원어로도 ‘플레시온’은 가까이 있는 사람, 이웃, 동포, 친구를 의미한다.
그런데 솔직히 가족도, 친구도 잘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왜 하나님은 이웃 사랑을 명하셨을까?
이런 의구심을 안고 말씀을 따라가 보자.
오늘 본문은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묻는 중에 대답하신 말씀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신6:5), ‘이웃 사랑’(레19:18)이라고 요약해서 답하셨다.
구약의 율법을 연구해보니 613개의 율법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하지 마라가 365개, 하라가 248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율법들은 모세가 돌 판에 직접 받았던 10계명으로 요약된다.
그 중 위에 4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뒤에 6계명이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이는 예수님의 대답과 같이 요약된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누가복음에도 나온다.
이번에도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랬더니 이 율법교사도 예수님과 똑같이 대답했다.
이에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해라. 그러면 산다.
답하셨다. 그랬더니 우리가 한 질문과 똑같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서 답하신 말씀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한 강도만난 사람이 있는데 제사장, 레위인은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놓고도 피하여 지나갔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오늘로 말하면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예수님이 다시 물으신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셨다.
그러니까 이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 사람이 내 이웃이냐를 가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나아가서는 모두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마땅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두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의 요약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신 의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요한1서 4:20에서 말씀한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새번역)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당연히 이웃에게도 그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게 되느냐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님이 이에 대해 이렇게 풀어주신 적이 있다.
마7:1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니까 내가 소중하다면 그도 소중하다는 뜻이다. 나를 위해 예수님 피 흘렸듯이, 그를 위해서도 그러셨다.
남이 대해준 만큼 대해 줘야지가 아니라 그냥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돌려받을 것을 전혀 계산하지 않으면서
이런 관계라면, 이런 공동체라면 마치 천국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원받는 무리가 날마더 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역사상 실제로 일어났다.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제자들이 모여 기도했을 때 성령이 임하셨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서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 놓고, 모자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즉 법에 있으니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자원하여 즐거이 행했다.
우리 공동체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관련질문/
1. 현재 사는 집의 위, 아래, 옆집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요?
2. 과거에 비해 현재의 이웃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3. 하나님은 왜 하나님 사랑을 이웃 사랑과 연결시키고 있을까요?
4. 이웃과 다툼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5. 과연 이웃의 정의와 범위는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