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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무엘상 17:1–58 (참조: 시편 9:1–10, 고린도후서 10:4–5, 히브리서 2:14–15)
핵심 명제: 세상의 위협과 사탄의 권세(골리앗)는 외적 스펙과 물리적 무력으로 결코 정복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들판의 훈련 속에서 연마된 물맷돌(할루케이 아바님)을 쥐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베-쉠 야훼 체바오트)으로 돌격하는 십자가의 역설적 믿음만이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정수리를 분쇄한다.
1. 서론: 엘라 골짜기의 거대한 대치와 마비된 군대
사무엘상 16장에서 베들레헴 들판의 붉고 눈이 빼어난 목동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의 뿔나팔을 통해 왕으로서의 은밀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을 받은 직후, 다윗이 곧바로 왕궁의 보좌로 직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는 무명의 목동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7장은 그 기름 부음 받은 소년이 온 민족과 온 우주의 무대 위로 폭발하듯 데뷔하는 성경 역사상 가장 전율스러운 전장을 펼쳐 보입니다.
무대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야가 맞닿은 군사적 완충 지대인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웨하-가이 베이네이헴)" (삼상 17:3)
남북으로 깊게 파인 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양국 군대 사이로,
블레셋 진영에서 온 땅을 뒤흔드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괴물 같은 전사가 걸어 나왔습니다.
가드 출신의 거인 ‘골리앗(Goliath)’이었습니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약 290cm에 달하는 3미터 거구)이었고,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으며,
몸에는 놋 오천 세겔(약 57kg)에 달하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그의 손에 들린 창자루는 베틀 채 같았으며 창날의 무게만도 철 육백 세겔(약 7kg)에 달했습니다(삼상 17:4–7).
그는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골짜기 한복판에 버텨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천둥 같은 조롱을 쏟아놓았습니다.
키가 백성들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던 초대 왕 사울(7강)과 정예 이스라엘 군사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와예하투 와이르우 메오드)" (삼상 17:11)
그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참호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습니다.
외모와 스펙을 자랑하던 사울 왕권의 완전한 파선이었습니다.
바로 그 굴욕과 공포의 현장에,
형들에게 볶은 곡식과 떡 열 덩이를 배달하러 온 10대 후반의 목동 다윗의 발걸음이 닿았습니다.
제1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한 자를 향한 거룩한 분노(헤레프), 형 엘리압의 살기 어린 시기심을 돌파한 언약적 안목, 사울의 놋 갑옷을 벗어던진 영적 분별력, 시냇가에서 주운 매끄러운 돌 다섯 개(할루케이 아바님),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의 사자후인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베-쉠 야훼 체바오트)"의 구속사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골리앗의 모욕과 이스라엘의 마비(1) 이쉬 하-베나임(אִישׁ הַבֵּנַיִם): 중간에 선 결투자 (삼상 17:4)
성경 기자는 골리앗을 '이쉬 하-베나임(싸움을 돋우는 자)'이라고 칭합니다.
베인 (בֵּין): '~사이에(Between)'를 뜻합니다.
이쉬 하-베나임:
고대 그리스나 고대 근동의 전쟁 관습에 따라, 양 군대의 전면전을 피하고 양 진영의 챔피언 한 사람씩이 나와 '두 진영의 중간 지대(No Man's Land)에서 일대일 단판 승부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대표 전사(Champion)'를 의미합니다.
골리앗은 단순히 덩치 큰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는 세상 제국,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을 대변하는 '적그리스도적 대표자'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2) 헤레프(חֵרֵף):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함 (삼상 17:10, 25, 26)
골리앗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외침은 단순한 군사적 도발이 아니었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헤라프티 에트-마아르코트 이스라엘)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삼상 17:10)
하라프 (חָרַף $\longrightarrow$ 헤레프):
'조롱하다, 멸시하다, 수치를 안기다, 신성모독하다(Defy, Reproach)'는 뜻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으나, 다윗의 귀에는 그것이 이스라엘을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엘로힘 하이임)을 향한 사탄의 신성모독'으로 들렸습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의 3미터 거대한 체구와 번쩍이는 놋 갑옷만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수평적 시선(골리앗 vs 나)'에 갇혀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3. 거룩한 의분: 다윗의 질문과 엘리압의 정죄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온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벼락같은 고함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패잔병처럼 웅크리고 있는 군사들을 향해 다윗의 입에서 거룩한 분노의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키 미 하-펠리쉬티 하-아렐 하-제 키 헤레프 마아르코트 엘로힘 하이임)" (삼상 17:26)
{כִּ֣י\ מִ֠י\ הַפְּלִשְׁתִּ֤י\ הֶֽעָרֵל֙\ הַזֶּ֔ה\quad כִּ֣י\ חֵרֵ֔ף\ מַעַרְכ֖וֹת\ אֱלֹהִ֥ים\ חַיִּֽים׃}
{"키 미 하-펠리쉬티 하-아렐 하-제, 키 헤레프 마아르코트 엘로힘 하이임"}
하-아렐 (הֶעָרֵל, 할례받지 않은 자):
다윗은 골리앗의 3미터 키나 57kg짜리 갑옷을 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영적 엑스레이에 비친 골리앗은, 하나님과의 언약(할례)의 표징이 없는 '언약 밖의 짐승, 멸망받을 한낱 저주받은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엘로힘 하이임 (אֱלֹהִים חַיִּים, 살아계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을 교리적으로는 알았으나, 현실의 골리앗 앞에서는 하나님을 죽은 신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 숨 쉬며 전장 한복판을 통치하시는 '생생한 실재(Living God)'였습니다.
형 엘리압의 독설과 내면의 공격 (삼상 17:28)
이 거룩한 믿음의 포효 앞에, 가장 먼저 칼을 빼 든 자는 적군 골리앗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었습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와이하르-아프 엘리아브 베-다위드)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 17:28)
가장 가까운 자의 상처:
10강에서 사무엘의 기름 부음 후보에서 탈락했던 엘리압은, 동생 다윗을 향한 열등감과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순수한 신앙적 열정을 "교만(자돈, זָדוֹן)"과 "마음의 완악함(로아 레바브, רֹעַ לֵבָב)"으로 매도했습니다.
다윗의 영적 분별력:
다윗은 형과 감정싸움을 벌이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29절) 단 한마디로 받아넘기고, '몸을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했습니다(와이스וב 메-에첼로, 30절).'
사명자는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내부의 비난과 비아냥에 휘말려 진짜 원수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4. 깊은 내면 해부: 사울의 놋 투구를 벗어던지다
다윗의 말이 사울 왕의 귀에 들어갔고, 사울은 다윗을 불러 대면했습니다.
다윗은 왕 앞에서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32절).
사울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3절).
(1) 들판에서 검증된 영적 야성 (삼상 17:34–37)
다윗은 왕의 불신앙적 평가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베들레헴 들판에서 사자와 곰을 찢었던 자신의 살아있는 간증을 꺼내놓습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삼상 17:34–37)
다윗의 믿음은 온실 속의 관념적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에서,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맹수의 아가리를 찢으며 체험했던 '피 튀기는 야전의 영성'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거대한 거인이 아니라, 들판에서 쳐 죽였던 사자와 곰의 또 다른 한 마리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2)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라 (삼상 17:38–39)
사울은 다윗의 결기를 보고 마지못해 자기 군복을 입히고, 놋 투구를 씌우며, 갑옷을 입히고 칼을 채워주었습니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와예시렘 다위드 메-알라이브)" (삼상 17:39)
와예시렘 (וַיְסִרֵם):
'수르(סוּר, 벗어 던지다, 제거하다)'의 미완료형입니다.
사울의 갑옷은 당대 최고 권력자의 무기이자 인간적 방어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에게 사울의 거대한 갑옷은 몸을 짓누르는 거추장스러운 쇠사슬에 불과했습니다.
영적 무장의 원리:
성도는 세상의 방식, 남의 갑옷을 흉내 내어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무기(학벌, 인맥, 물질, 권력의 갑옷)를 입고 나가면 세상의 골리앗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인간적 보호막이었던 사울의 갑옷을 단호하게 벗어 던졌습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할루케이 아바님(חַלֻּקֵי אֲבָנִים) — 매끄러운 돌 다섯 개
갑옷을 벗어던진 다윗의 손에 들린 것은 칼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마클로)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와이브하르-로 하밋샤 할루케이-아바님 미ן-하-나할)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우-칼로 베-야도)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삼상 17:40)
{חַלֻּקֵי־אֲבָנִים֙\ מִן־הַנַּ֔חַל}
{"할루케이-아바님 민-하-나할"}
{"시냇가로부터 건져 올린 매끄러운 돌들!"}
(1) 할루크 (חַלֻּק): 물살에 깎인 매끄러움
원어적 의미:
'미끄럽다, 매끄럽다(할라크, חָלַק)'에서 유래하여, 오랜 세월 급류의 물살에 부딪치고 깎여 모난 모서리가 완전히 둥글게 다듬어진 '물맷돌 전용의 매끄러운 자갈'입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돌은 물매를 떠날 때 바람의 저항을 받아 궤도를 이탈합니다.
그러나 물살에 모난 부분이 다 깎여나간 매끄러운 돌은, 공기를 가르고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표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갑니다.
사명자의 영적 빚어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교만과 혈기의 모난 돌이 아닙니다.
고난의 시냇물 속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깎여나가, 하나님의 장중에서 거침없이 날아갈 수 있도록 다듬어진 '매끄러운 돌'입니다.
(2) 왜 하필 돌 '다섯 개'였는가?
일부 알레고리적 해석가들은 이를 '믿음, 소망, 사랑, 순종, 인내'라고 풀거나, 훗날 다윗의 용사들이 죽인 '골리앗의 네 형제(삼하 21장)까지 합친 다섯 거인'을 대비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가장 자연스럽고 탁월한 구속사적 의미는 '철저한 준비성(Prudence)'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100% 신뢰했으나, 결코 방자하거나 나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첫 번째 돌이 빗나갈 경우를 대비하여 목자의 주머니에 예비의 돌을 침착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믿음은 무모한 모험주의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영적 준비를 다하는 거룩한 성실함입니다.
6. 결전의 사자후: 베-쉠 야훼 체바오트(בְּשֵׁם יְהוָה צְבָאוֹת)
골리앗은 방패 든 자를 앞세우고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삼상 17:42–44).
이 저주의 폭언 앞에서, 소년 다윗의 입술에서 온 인류의 역사를 진동시키는 가장 장엄한 믿음의 선언이 터져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앗타 바 엘라이 베-헤레브 우-베-하니트 우-베-키돈)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웨-아노키 바-엘레이카 베-쉠 야훼 체바오트 엘로헤이 마아르코트 이스라엘)" (삼상 17:45)
{אַתָּה֙\ בָּ֣א\ אֵלַ֔י\ בְּחֶ֖רֶב\ וּבַחֲנִ֣ית\ וּבְכִיד֑וֹן}
{וְאָנֹכִ֣י\ בָֽא־אֵלֶ֗יךָ\ בְּשֵׁם֙\ יְהוָ֣ה\ צְבָא֔וֹת\ אֱלֹהֵ֛י\ מַעַרְכ֥וֹת\ יִשְׂרָאֵ֖ל\ אֲשֶׁ֥ר\ חֵרַֽפְתָּ׃}
{"앗타 바 엘라이 베-헤레브 우-베-하니트 우-베-키돈,}
{웨-아노키 바-엘레이카 베-쉠 야훼 체바오트, 엘로헤이 마아르코트 이스라엘 아쉐르 헤라프타!"}
(1) 칼과 창 vs 여호와의 이름
골리앗의 삼중 무기:
칼(헤레브, 근접 백병전용), 창(하니트, 중거리 투척용), 단창(키돈, 청동 표창).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치명적이고 완벽한 살상 무기의 총집합이었습니다.
다윗의 유일한 무기: '베-쉠 야훼 체바오트'
다윗은 무기의 싸움을 '신들의 전쟁, 영적 언약의 전쟁'으로 순식간에 차원 이동시켰습니다.
잠언 18장 10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다윗은 골리앗의 무기보다, 온 우주의 별들과 천군 천사를 호령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야훼 체바오트)'의 거룩한 임재의 깃발을 높이 든 것입니다.
(2) 전쟁의 영적 신학 선언 (삼상 17:46–47)
다윗의 설교는 계속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웨-예데우 콜-하-아레츠 키 예쉬 엘로힘 레-이스라엘)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키 라-야훼 하-밀하마)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 17:46–47)
싸움의 목적:
다윗 자신의 영웅적 출세나 사울의 사위가 되는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 "온 땅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참으로 계심을 똑똑히 알게 하는 것(하나님의 영광의 현현)!"
키 라-야훼 하-밀하마 (כִּ֣י לַיהוָ֣ה הַמִּלְחָמָ֗ה):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라!"
승패의 주권은 군사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다는 구약 거룩한 전쟁 신학의 정점이 선포되었습니다.
7. 정수리의 분쇄와 목 베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다
골리앗이 다윗을 향해 육중한 철갑을 울리며 마주 걸어올 때, 성경 기자는 다윗의 번개 같은 기동력을 포착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대열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와이마헤르 다위드 와야라츠 하-마아라카)" (삼상 17:48)
다윗은 뒤로 물러서거나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인을 향해 '정면으로 맞받아 전력 질주(와야라츠)'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내 물매로 던졌습니다: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와티브카 하-에벤 베-미츠호) 땅에 엎드러지니라" (삼상 17:49)
{וַתִּטְבַּ֤ע\ הָאֶ֙בֶן֙\ בְּמִצְח֔וֹ\quad וַיִּפֹּ֥ל\ עַל־פָּנָ֖יו\ אָֽרְצָה׃}
{"와티브카 하-에벤 베-미츠호, 와이폴 알-파나이브 아르차"}
타바 (טָבַע $\longrightarrow$ 와티브카):
진흙탕에 발이 푹 빠지듯, '뼛속 깊숙이 완전히 박혀 파고들다(Sunk into his forehead)'는 뜻입니다.
골리앗의 온몸은 놋 투구와 갑옷으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과 눈썹 사이, 놋 투구의 틈새인 '단 몇 센티미터의 노출된 이마(미츠하)'를 향해, 하나님의 손길이 장악하신 물맷돌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해골을 깨뜨리고 뇌수에 박혀버렸습니다.
3미터의 거인이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습니다.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다 (삼상 17:50–51)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달려가 쓰러진 거인의 몸을 밟고 서서, 골리앗의 칼집에서 거대한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와이크라트-에트-로쇼 바흐)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삼상 17:51)
골리앗의 무기가 골리앗의 사형 도구가 됨:
골리앗이 다윗을 도륙하겠다고 벼르던 바로 그 칼로, 자신의 목이 잘려 허공에 들렸습니다.
거인의 머리가 잘리는 순간, 기세등등하던 블레셋 군대는 공황에 빠져 도망쳤고, 이스라엘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가드와 에그론 문턱까지 원수들을 추격하여 전면적인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8. 구속사적 절정: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엘라 골짜기의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단순한 '소년 영웅의 입지전적 성공담'으로 설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이 본문은 "너도 다윗처럼 용기를 내어 세상의 골리앗을 이기라"는 식의 도덕주의적 처세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 인류가 죄와 사망의 공포에 질려 사탄의 참호 속에 마비되어 있을 때, 우리의 참된 대표자이자 챔피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신 '원복음(창 3:15)의 성취'입니다!
| 엘라 골짜기의 다윗 (삼상 17장) |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와 히브리서) |
|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홀로 골짜기로 내려간 대표자 | 온 인류를 대신하여 홀로 십자가의 저주를 짊어지신 대표자 |
| 형제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음 ("네 교만을 아노라") |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 조롱당하심 |
| 사울의 세상 갑옷을 벗어던지고 비천한 막대기를 쥠 | 세상의 영광을 거절하시고 수치스러운 십자가 나무를 지심 |
| 골리앗의 이마를 깨뜨리고 그의 머리를 베어버림 | 창세기 3:15의 성취: 사탄(옛 뱀)의 머리를 짓밟아 상하게 하심 |
|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벰 | 사망의 권세(죽음)를 사용하여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를 멸하심 (히 2:14) |
| 다윗의 홀로 된 승리로 온 이스라엘이 승리의 전리품을 거저 누림 |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믿음으로 교회가 영생의 구원을 거저 누림 |
히브리서 2장 14–15절은 이 승리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우리는 엘라 골짜기에서 용감하게 돌을 던진 다윗이 아닙니다.
우리는 골리앗의 조롱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며
참호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무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망의 공포 속에 떨고 있던 우리를 대신하여,
참된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골고다 골짜기로 내려가셨습니다!
주님은 사탄이 휘두르던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인 '죽음(사망의 칼)'을 친히 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바로 그 사망의 칼로 사탄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리셨습니다!
다윗이 홀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온 이스라엘이 거저 승리의 함성을 질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홀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기에,
오늘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영원한 죄와 사망의 결박에서 해방되어
승리의 전리품을 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네 삶을 짓누르는 '세상의 골리앗' 앞에서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보라
당신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현대판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거대한 암 진단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부채와 재정적 위기, 직장에서 나를 조롱하는 거대한 장벽 앞에 사울처럼 벌벌 떨고 계십니까?
문제의 덩치에 압도당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문제만을 묵상하면 골리앗은 30미터 거인으로 커 보이지만,
만왕의 왕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엘로힘 하이임)을 묵상하는 순간, 세상의 어떤 골리앗도 한 방의 물맷돌에 쓰러질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수평적 시선을 끄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언약적 시선을 회복하십시오.
(2) 남의 갑옷(세상의 스펙과 방법)을 벗어던지라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는 이유는 세상의 사울의 갑옷을 입고 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술수를 부리고, 거짓말을 타협하며, 물질의 힘과 인간적 인맥을 무기로 삼으려 합니다.
사울의 갑옷을 벗어던지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의 발걸음을 옭아맬 뿐입니다.
초라해 보일지라도 말씀의 막대기, 눈물의 기도의 물맷돌을 쥐십시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의 능력은 세상의 무기를 모방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장)를 취하는 거룩한 순결함에 있습니다.
(3)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영적 전쟁터로 돌격하라
원수 마귀는 밤낮으로 참소하며 외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끝났다, 네 미래는 파멸이다!"
골리앗의 저주 앞에 위축되어 뒷걸음질 치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대열을 향해 앞으로 달려 나가십시오(와야라츠)!
당신의 연약함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이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입술로 크게 선포하십시오:
"너는 실패와 정죄와 두려움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자 앞에서, 사탄의 모든 견고한 진은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처럼 완벽하게 고꾸라지게 될 것입니다.
10. 결론: 손에 들린 골리앗의 머리와 질투의 전운
사무엘상 17장의 마지막은 피 묻은 골리앗의 머리채를 손에 쥔 채 사울 왕 앞에 불려 온 소년 다윗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로(웨-로쉬 하-펠리쉬티 베-야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벤-미 앗타 하-나아르)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벤 아브드카 이샤이 베이트 하-라흐미) 하니라" (삼상 17:54, 57–58)
온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었고,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 다윗은 하룻밤 사이에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 뒤편에서,
또 다른 어두운 영적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울려 퍼진 여인들의 노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노래를 들은 사울 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뒤틀렸고,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지옥의 살기와 질투의 불길!
그러나 바로 그 살얼음판 같은 어둠 한복판에서,
왕위 계승권자였던 사울의 아들 ‘요나단(Jonathan)’은
자신의 왕의 겉옷과 칼과 활을 벗어 다윗에게 건네며,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혼의 언약적 결속(니크쉐라 네페쉬)을 맺습니다.
권력자의 광기 어린 질투의 창날,
그리고 왕관을 버리고 다윗을 목숨 걸고 지켜낸 요나단의 십자가적 사랑!
제2강: 요나단의 사랑과 질투의 창 — 십자가적 우정과 언약의 결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