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지파의 미래(1)
49: 1-18
○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신33:1, 민24:14, 렘23:20, 단2:28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찌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신21:17, 시105:36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35:22, 대상5:1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창29:33-34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시26:9, 64:2
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수19:1-9, 대상4:24-39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시18:40, 대상5:2, 욥16:12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호5:14, 계5:5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민24:17, 슥10:11, 시60:7, 시2:6-9, 시72:8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사63:2
12.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잠23:29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신33:18, 수19:10-11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삿5:16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수16:10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창30:16, 신33:22
17.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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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야곱은 너무 다른 두 인생을 살았습니다.
전반기는 욕심쟁이로 남의 기득권까지도 빼앗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후반기는 전혀 다릅니다. 남에게 축복을 베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살펴 본대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다시 자신의 열두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죽기 전에 축복합니다. 좀 좋지 않게 출발하는 것 같던 그의 인생이, 이런저런 사건들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바뀌어 결국은 남을 축복하는 인생으로 마감하려 하고 있습니다. 잘 출발했다가 좋지 않게 끝나는 사람보다는 야곱처럼 잘못 출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잘 끝내는 인생이 보기 좋습니다.
이제 두 시간을 할애하여 야곱이 자신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을 살펴봅니다. 이 축복은 후에 이뤄지는 예언입니다. 열두 지파의 미래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큰아들 르우벤부터 시므온과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까지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정확히 나이순은 아닙니다. (15절)까지 레아의 여섯 아들이고, (21절)까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 (22절)부터 라헬의 두 아들이 기록됩니다.
르우벤
르우벤은 원래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태어난 장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능력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등급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구구절절이 그의 장자 됨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 부분의 “-하도다마는”에 있습니다. 앞의 장자 됨을 반전시키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모 빌하를 범한 죄입니다.
(3절)은 (4절) 말씀에서 반전됩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막중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는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실수 때문입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결정적일 때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러나”라는 말을 하는 인생은 그리 명쾌한 마침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전에 어땠느냐, 지금 어떠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끝날 것인지가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
비교적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두 사람을 예언합니다. 그들은 형제라고 강조합니다. 비슷한 성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잔인성을 강조하는 예언이 이어집니다.
(5절)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디나의 사건으로 세겜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창34:25-31)을 야곱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사건이지만 바로 시므온과 레위의 성정을 잘 나타낸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야곱 족속 중에서 흩어지는 사명을 받습니다.
(7절)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별로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예언대로 시므온은 그 지파의 수가 가장 적었고(민26:14), 레위는 전국 각처에 흩어져 살았습니다.(수21:1,40) 그러나 그 흩어짐은 저주의 결과가 아니라 복된 흩어짐입니다. 백성들 속에 흩어져 살면서 제사장 일을 하였으니까요. 교회의 기능도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시므온은 몰라도 레위는 그 운명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모세나 아론이 다 레위 가문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모세 같은 위대한 사람이 나와 그 가문을 정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도는 운명을 바꾸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유다
유다는 실질적인 장자로서의 복을 받습니다.
(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며느리를 범한 사람입니다.(38장) 유다의 후손은 그러니까 며느리가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 후손들이 복 받을 만한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극복했습니다. 레위자손처럼 운명을 바꾼 지파입니다.
갈렙이 이 가문 사람입니다. 갈렙은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잃고 모세를 원망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만을 신뢰했던 사람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바로 유다 가문입니다. 유다의 손이 원수를 목을 잡는 일은 이들이 했습니다. 왕위를 이은 유다의 후손들 앞에 다른 아들들이 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9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이 예언은 왕권으로 이웃과 전투를 하게 될 것을 예언함입니다.
(10절) 말씀도 바로 왕권에 대한 예언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런데 그 왕권은 단순한 나라의 통치권이기도 하지만, 메시야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실로”란 무엇일까요? 정확히 꼬집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메시야를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실로’란 말은 ‘안전하다, 편안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평강의 왕”은 분명 메시야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유다는 그러니 이스라엘의 왕일 뿐 아니라 메시야인 예수님을 낳는 집안이 됩니다. (12절)은 유다 가문의 풍요로운 사람을 예언함입니다. 운명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불론, 잇사갈, 단
이 세 지파는 별로 두각을 나타낸 지파들이 아닙니다. 스불론은 해변에서 살 것을 예언합니다.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하였습니다.(수19:10-16) 잇사갈은 건강한 나귀로 비유되었습니다. 즉, 농사짓는 일을 했습니다. 주로 나귀처럼 육체노동을 하며 지낸 지파입니다. 한 번도 지배하는 지도력을 발휘해보지 못했습니다.
단은 심판자로서의 예언을 성취한 지파입니다.
(16절)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삼손이 이 가문 사람입니다. 삼손은 약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블레셋을 격퇴시키며 이스라엘을 지도했습니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사사로 다스림으로 “심판하리라”는 예언을 이룹니다.
(17절)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좀 난해한 해석이 있는 구절입니다. 다른 지파에게 해를 끼치는 뱀처럼 될 것이라는 해석인데,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의 구원의 소망으로 끝이 납니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물론 오늘 말씀이 열두 아들을 다 축복한 끝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함으로 야곱의 지금 심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주님의 구원을 구하는 심정으로 아들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축복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이루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야곱은 그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축복권은 있으되 축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그 예언대로만 산 지파와 그 예언을 뛰어넘어 잘된 지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단은 예언 이상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레위와 유다는 다릅니다. 야곱이 준 축복 이상으로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극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저자| 김학현목사(예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