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길의 대적들
(수 12:1-6)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 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이 시간에 “천국길의 대적들”이라는 제목입니다. 수 12장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의 총 결론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1-6절은 모세가 정복한 요단 동편의 두 왕에 대해서, 그리고 7절 이하는 여호수아가 정복한 서편의 삼십 일왕의 명단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가나안을 하나님 나라라고 볼 때 이스라엘을 막았던 이 동서편의 적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천국길의 대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하셨습니다. 그만큼 처리해야 할 것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 방해물을 처리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율법과 복음입니다.
즉 애굽에서 요단강 동편까지는 모세의 사역이고, 요단강 서편부터 분배까지는 여호수아의 사역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그리스도는 은혜와 복음의 대표이므로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1:17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모세가 정복한 요단강 동편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했지만 가나안에까지는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지만 율법도 믿음에 한 부분 기여하는 면이 있습니다. 갈3:24에 율법의 임무가 나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율법은 예수님을 믿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꼭 세례 요한 같은 역할입니다.
율법과 세례 요한과는 그 임무가 동일합니다. 둘이 다 죄를 지적하여 깨닫게 하지요. 둘이 다 자기들 스스로는 구원자가 아니라고 하지요. 둘이 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활동하지요. 또 둘 다 정죄의 능력이 탁월하지요. 또 둘이 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떨지요. 또 둘이 다 광야가 그들의 주 무대가 되지요. 또 둘이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지요. 또 둘이 다 새로운 인물에게 자신의 임무를 인계하고 생을 마치지요.
그리고 그들이 생을 마치지만 무언가를 서로 남기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산상보훈이라는 형태로 계속 남아 더욱 더 정교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세례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인계해서 계속적으로 한 차원 높은 주의 복음전도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마감도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세례요한도 헤롯왕의 목 베임을 통하여 마감합니다. 그의 탄생 기사, 성장배경 등등 모두가 비슷합니다. 대조해 보면 너무너무 정확합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함입니다. 율법이 인도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여러 예표와 상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가령 성막 3대절기 5대제사 기타 여러 사건들이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다음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들을 철저히 실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모리의 헤스본왕 시혼과 거인족인 바산왕 옥이 이스라엘을 막았듯 우리를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세처럼 철저히 실망시키고 쳐부수어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자기주장과 자기의 의(義)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1-2절에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했습니다. 헤스본은 사해 북동쪽 25km 지점의 고지대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입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건설된 도시인데도 이곳에는 양어의 연못까지 갖춘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아7:4).
그래서 '헤스본'이라는 이름이 '요새' '현명하다'의 뜻입니다. 요새란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절벽이나 방어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현명하다는 것은 고지대에 도시를 건설했으니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름만 봐도 자기 지혜를 내세우는 완악하고 고지식한 특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아름다움과 자기 의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미디안의 방백들과 긴밀한 연맹을 맺고 함께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나 생각을 현명하게 여깁니다. 온갖 철학이나 종교 등 잡된 자기주장 때문에 예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잡된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 믿는데 지장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 줌도 되지 않는 학력과 경력이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이것을 쳐부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도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예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성도들도 가만 보면 심성이 착한 성도들일수록 은혜를 속히 체험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착하다고 여기기에 하나님 앞에 애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인간의 의와 지식을 파괴시킴에는 율법만큼 탁월한 것이 없습니다. 율법의 거울에 자기 죄가 보일 뿐 아니라 안 보인다 해도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다 넘어짐을 통해 죄인임을 증명해줍니다.
그래서 롬3:19-20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했습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예수 믿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2. 우리 믿음을 막는 것은 육신의 풍요와 형통과 쾌락입니다.
이것은 바산왕 옥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4절에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여기 '바산'은 그 의미가 "부드럽고 비옥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요단강변에 위치하여 가나안의 밀의 최대 주산지요, 목초지도 많아 그곳의 소는 힘이 세기로 유명했고(시22:13), 산림도 울창했으며(사2:13), 결실이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사33:9). 이곳이 옥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신 3장을 보면 그의 나라의 성읍이 60이요 모두 문과 문빗장이 있는 견고한 성벽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옥'은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침상을 신3:11에서 소개하듯 길이가 9규빗, 1규빗을 45cm로 보면 약 4m, 50cm로 보면 4.5m입니다. 너비가 4규빗 1.8m였습니다. 거인 중의 거인입니다. 당시는 힘 있는 사람이 최고였습니다. 환경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넘쳤습니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막았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풍부와 형통과 건강과 쾌락이 우리 믿음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마19:23에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리라" 하셨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만하고 거만해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하나님 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인데 말 못할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미 예수 영접했어도 세상에 미련 못 버린다면 온전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딤후3:5-7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두 왕을 파했듯 이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은 예수 없이는 모두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이다.' 그리고 '네 맘대로 해봐라. 예수 말고 세상 것으로는 영원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자기 무능을 철저히 인식해야 만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율법과 복음을 사용하셨습니다. 먼저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 없이는 살 수 없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 기초를 잘 닦아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영생을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