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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이’ 무늬를 반복해 그린 ‘호박(Pumpkin)’.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야요이 쿠사마 작품이다. 크기는 29.7×22.7cm로 3호 정도. 각기 색을 달리한 시리즈 3점의 총 가격은 17일 1시 현재 58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옥션 4월 온라인 경매에서다.
사실 그의 작품은 지난달 열린 K옥션 경매에서 1995년작 ‘인피니티 스타스(Infinity Stars)’가 12억원에 낙찰, 전체 출품작 낙찰액 중 최고가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1호(15.8 x 22.7cm) 크기 ‘호박’ 시리즈 작품이 2천500만~3천500만원에 이른다.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이 싼 이유는 판화이기 때문이다. 판화는 원화보다 가치는 다소 떨어지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유명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이번 경매에서 이 작품은 총 18명이 응찰, 가장 높은 응찰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경매에 나온 중견 서양화가 박향률의 작품 ‘파랑새(Blue Bird)’는 1호(15.8 x 22.7cm) 크기.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린 이 작품은 50만원에서 출발해 같은시각 현재 가격은 135만원, 응찰 수는 18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시장에서 작은 그림이 인기다. 초보 콜렉터를 겨냥한 작은 그림을 파는 전시회ㆍ경매 또한 활기를 띠고 있다. 작품 판매 또한 호조세다. 여기엔 박수근ㆍ이중섭 등이 그린 작은 그림처럼, 혹시 이 그림도 훗날 그림가격이 크게 뛸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은 그림의 인기 비결과 투자 매리트를 살펴봤다.
◆작은 그림, 그 인기의 비결은?
지난 2월 맥향화랑과 수성아트피아는 봄맞이 기획 ‘생활 속 작은 그림 큰 감동-소품컬렉션’전을 공동 기획해 14점을 판매했다. 개관 이후 5년 동안 단일전시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판매한 것이었다.
최근 가창창작스튜디오 내 스페이스가창과 메트로갤러리에서 각각 열렸던 ‘스몰 사이즈’전과 ‘작은 그림, 큰 감동전’ 또한 대구현대미술협회와 메트로갤러리가 매년 열며 인기를 끌고 있는 소품전이다.
최근 봉산문화협회도 소품전을 준비 중이다. ‘봄, 미술을 만나다’란 이름으로 24일부터 29일까지 봉산문화회관 제1전시장에서 진행하는 이 전시는 협회 소속 9개 화랑이 참여 100만원 미만의 작은 그림 위주로 작품을 전시한다. 또 26일을 ‘직장인의 날’로 정해 관람객에게 브런치를 제공하고 특별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게 협회의 계획이다.
이처럼 소품전이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뭘까. 이미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국내 유명작가와 해외작가의 판화작품을 소개하다보니 작품가격이 10만원대부터 50만원대가 대다수였다”며 “콜렉터들의 구입 부담을 덜어준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지역 한 갤러리에서 100만원대 소품을 구입한 A씨는 “큰 부담 없이 작가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뿐더러, 크기가 작아 집이나 사무실 등 어디에 걸어도 ‘똑 떨어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했다.
소품 위주의 기획전은 미술시장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의미로 봤을 때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옥선 봉산문화협회 회장은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국이 급성장하고 미국ㆍ유럽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국내 시장은 오랜 불황으로 수년째 침체에 빠져 있다”며 “소품전은 ‘미술품=고가’라는 고정관념 등으로 한 번도 그림을 산 적 없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 없이 미술품을 구입하도록 하면서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장기적으론 미술시장의 중추적 콜렉터 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그림도 ‘돈’ 될까?
2011년 3월 서울옥션의 119회 정기경매에서 이대원의 1978년 작 ‘농원’은 추정가 하한액 1억4천만원의 2배가 넘는 2억9천만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의 종전 최고가는 이보다 5천만원 낮은 2억4천만원(2007년 7월 K옥션 경매)이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작품은 시장 상황의 좋고 나쁨에 관계 없이 경매시장에 나오면 좋은 결과를 낸다.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미공개작이던 이중섭의 ‘황소’가 35억6천만원에 낙찰, 3년 만에 30억원이 넘는 낙찰가를 기록하며 작가의 기록과 미술품 경매 2위 기록을 갱신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고가의 그림은 일반인들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렇다면 작은 그림은 어떨까. 아무리 크기가 작은 소품이라도, 쉽게 그린 그림은 아니다. 작은 그림일수록 더욱 구체적고 압축적이어야 하는만큼, 작은 그림에서도 작가의 개성이나 특징은 다 묻어난다. 장담할 순 없지만 이들 소품 중 훗날 높게 평가받을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술품 구입, 특히 소품 구입에 있어서는 ‘문화 향유’에 방점을 두라고 말한다. ‘그림이 돈 된다’는 식의 ‘투자’적 사각보다는 그림을 즐기기 위한 대상으로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화 소비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좀 더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신승헌 서울옥션 온라인경매 담당은 “‘아이들 방에 걸어놓을 그림을 찾겠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과 처음 인연을 맺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 구매 전 전시도 보고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보면서 미술품 구입의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만약 재태크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리스크에 대한 생각 등으로 미술품 구입이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이 돼 재미가 없어지지만, 문화를 향유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재미 있는 취미이자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결국엔 투자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미술품을 당장 투자대상으로 여기기 보단 입문하는 첫 수순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술품은 ‘눈’으로 보고 사면 실패를 하지 않지만, ‘귀’로 듣고 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할 때는 보다 엄밀한 검증을 통해 신중하게 골라야 하기에, 미술품 구입을 취미로 만들어 노하우를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hoon@idaegu.com
사진-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야요이 쿠사마의 ‘Pumpkin’
초보 콜렉터, 이것만은 알아두자
미술작품은 전시장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해본다면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 마음에 즐거움이 밀려오고, 자기만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또 작품구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벽이 무너지며 자신감도 생긴다.
초기엔 1천만원대 이상의 작품을 사기보다 소품을 구입해 미술에 취미를 붙이는 게 바람직하다. 너무 싼 작품은 가볍게 생각돼 안이해지고, 너무 고가의 작품은 부담이 크다. 따라서 100만~200만원대 작품이 적당하다. 개인의 여건에 따라 그 이하의 작품도 고려해볼 만하다.
마음을 정했다면, 전시회를 둘러본 뒤 가장 좋은 작품을 할인하지 않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 한 점만 사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할인을 자주 요구하는 사람은 딜러나 갤러리스트로부터 좋은 작품을 구입할 때 후순위가 된다.
만약 작품 선택에 자신이 없다면 갤러리의 전문 딜러나 아트 컨설턴트 등 전문가의 안목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작 혹은 좋지 않은 작품을 구입하는 등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 구입해 집안에 걸어뒀다고 해서 콜렉터라고 할 수 있을까. 감상과 투자 모두를 알아야 진정한 콜렉터다. 따라서 보기좋은 작품에만 연연하지 말고 꾸준한 학습을 통해 미술에 대한 안목을 높여 좋은 작품을 구입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투자를 염두에 둔자면 단기간에 되팔려 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세월을 묵혀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장의 환금성에만 연연하면 차라리 아트펀드를 드는 편이 게 낫다. 이상을 지킨다면 적어도 성공 콜렉터를 향한 안전 주행은 시작된다.
원창호 갤러리 소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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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