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요! 할배요!
박경선
"할배요! 할배요!"
누가 부르는 소리에 눈이 부리부리한 할아버지가 밀창 문을 밀고 내다본다.
"누고? 끝순이가?"
"예, 둘째 손녀 왔니더."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질끈 동여맨 처녀가 댓돌 위에 올라서며 대답한다.
"그래, 오늘이 너거 아베 제삿날이제?"
"야, 절 받으시소."
끝순이가 씩씩 웃으며 두 손을 이마에 갖다 댄다.
"괜찮다. 마. 그양(그냥) 앉거라."
"절 안 해도 되니껴? 나중에 또 버르장머리 없다고 흉볼라꼬요? 절 받으시소."
끝순이는 억지로 꾸역꾸역 절을 한다.
"오냐, 그래 객지 생활한다꼬 힘들제?"
"아니라예. 그래도 촌에서 밭 매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돈도 많이 벌어예. 어메는 어디 갔능교?"
"다양장 갔다."
"어메는 왜 또 장에 가시노, 내가 다 준비해 온다 캤는데. 힘 들거러."
끝순이는 혼자말로 어머니를 나무랍니다.
" 힘들긴 뭣이 힘들어. 자주 댕겼는데(다녔는데)."
할아버지가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인다.
"누구고? 누구 왔나?"
밖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어메 퍼뜩(일찍) 다녀왔네. 단양장에 갔다디(갔다더니)."
하며 끝순이가 할아버지 방에서 나와 어머니의 장바니를 받아든다. 그리고 어머니와 끝순이는 부추를 다듬는다.
"우째, 나올 시간이 되더노?"
"예."
"참. 니 일자리 어데로(어디이지)? 옮겼다 그라더니만."
어머니가 끝순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응, 옷감에 물들이는 데로 옮겼제. 옷감 짜는 공장은 베틀 수도 줄이고 사람도 확 줄였거든."
"그기 뭣이냐? 그것도 아이 엄 에푼강 뭐 그런 걸 타나 보구만."
"아이 엠 에프 안 타는 게 어딨다꼬. 다 그래."
끝순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거기는 저번 일 하던 데보다 고생 덜 되냐?"
열려진 문으로 할아버지가 내다보며 참견을 한다.
"고생 안 하고 돈 버는 데가 어디 있니껴?"
끝순이 대신 어머니가 대답한다. 끝순이는 말없이 미나리 단을 풀어 다듬는다.
"내 장에 가서 불콩(붉은 콩)내고 왔다. 한 되에 사천사백원씩 쳐 주더라."
어머니가 시장에 왜 가셨는지를 안 끝순이는 어머니를 나무란다.
" 어메는 콩은 왜 내다 파노? 용돈 필요하믄 내 보고 카지. 나도 돈 벌이는데……"
"아따, 푸지게 버는 돈으로 어디 생활비나 자래가는강(돌아가는가)? 종수 학원 갈라꼬 맘 묵는데 담 몇푼이라도 가져가야 되잖애."
"무슨 소리고. 종수 학원은 내가 벌어 대면 되는 기라."
끝순이는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종수와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여동생 끝님이를 뒷바라지하는 언니답게 든든한 대답을 한다.
"너들 넷이 자취하는 데 드가는(들어가는 ) 돈만 해도 얼만데……."
"어메는, 내가 벌로 갔으만 고 정도는 벌어야제. 고것도 못 벌만 우째 살라꼬."
끝순이는 괜히 목에 힘을 주며 농을 한다.
"하기는 월급 받는 데 댕기니 요새같이 안 벌리키도 상관는 없제?"
어머니는 또 시집간 큰딸이 생각이 나서 그러는 가 보다..
"참, 언니네는 장사가 잘 된다 하더나?"
끝순이도 어머니 마음을 알아차리고 언니 안부를 묻는다.
"도통 안 벌리킨단다. 일하는 아(아이)도 내보내고 그랬다더라마는. 차라리 국밥집 문 닫아 두는 게 낫 단다. 요즈음은."
어머니가 큰딸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문닫는 것보다는 몇 푼이라도 벌어야 살제. 지금은 다 어려운데 뭘."
끝순이는 눈을 내리깔고 궁시렁거린다.
" 니도 인제 곧 졸업인데 공부를 이어(계속)해야제?"
"대학교 말이가? 우리 집 형편 다 아는데. 그깐 대학교 안 댕길 끼다.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시험만 쳐봤으니 내 걱정은 마시소. 그라고 어메, 돈이나 있나 뭐."
하며 어머니를 보고 웃는다.
"야야, 니가 야간 고등을 댕기면서 낮에 공장 댕겨 돈 벌어 준 것 내사 한푼도 안 쓰고 모아 뒀데이. 니 대학 보낼라꼬."
"어메, 그 돈으로는 대학 문 앞에도 못 가봐여. 끝님이와 종수나 대학교 보내거로 몇 푼이라도 좀 아껴 두소."
끝순이는 동생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말한다.
"니 아부지 살아 있으믄 이렇게꺼정 니 고생 안 시켜도 되는긴데……."
어머니는 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인다.
"아부지 생각은 고마 하시소. 지금 살아 계시면 뭐 좋은 수나 보겠수? 종옥이 언니 대학교 갈라꼬 난리 피우는 꼴이나 보게 되지."
"야야, 실은 내가 걱정인기라. 나는 웡강(워낙) 맘이 고와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농약 마시고 죽을가 봐."
"어메는, 무슨 소리고? 종옥이 언니야 대학가고 싶으면 지가 벌어서 가지. 어메, 누에 있잖아. 나방이 되어 구멍 속에 빠져 나올 때 말이야. 힘들어도 제 힘으로 빠져 나온 놈이 살지 사람이 대신 구멍을 뚫어 준 놈은 날아가지도 못하잖아. 나는 시집 안 가고 내가 벌어 끝님이, 종수 공부시킬 거야."
"그케 말이다. 대학이 뭐 대순가(대단한 건가)? 형편이 안되는데도 그렇게꺼정 대학교 가고 싶어 죽으믄 우리한테 대학교는 학교가 아니여. 사람 잡는 귀신이제."
"뭐? 어메는 대학교가 사람 잡는 귀신이라고? 커컥컥."
끝순이는 어머니 말이 무척 재미있어 웃는다.
"어험."
할아버지는 일없이 헛기침만 합니다. 끝순이는 이야기를 딴 데로 돌리려고 말을 꺼낸다.
"이장노 댁 점순이 말이여. 혼인은 우째 됐노?"
점순이는 끝순이 중학교 때 동창생이다.
"저쪽 혼주가 절대 반대라. 선보러 나갔는데 혼주도 안 나왔다그러. 하기는 요즘 중학교 나온 건 학교 댕긴 걸루도 안 쳐 주잖이여."
"그깐 학벌이 뭐 그리 중요하다꼬 그캐?"
끝순이가 점순이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그캐 말이다(그러게 말이다)."
어머니도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점순이가 맘에 병 얻을까봐 걱정이데이. 저희 둘이는 죽고 못 사는 사이인데……."
끝순이는 또 점순이 걱정을 한다.
"그캐 말이다. 그깐 학벌이 뭔지."
어머니와 끝순이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며 나물을 그리고 산적을 끼고 부침을 부치며 아버지 제사상을 차렸다. 그리고 끝순이는 그 다음날 새벽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 *
끝순이가 고향을 다녀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동안 끝순이는 제일 다녀 보고 싶은 대학에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되었다. 그러나 합격증을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사진첩에 고이고이 끼워 두었다. 기념으로 사진첩에 끼워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그러던 어느 날 끝순이가 밤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자취방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웬 편지야?'
끝순이는 이상해 하며 편지를 펼쳤다.
'끝순아, 할애비다.'
'뭐? 할배라꼬?'
끝순이는 무척 놀랐다.
이때까지 할아버지한테 편지 한 통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서 얼른 읽어본다.
붓으로 써 내려간 먹물 냄새가 좋다.
'니가 대하꾜(학교)에 부텼는(붙었는) 것 내 다 드렀다(들었다).'
'뭐? 그렇다면 종우 이 녀석이 가볍게 나불댔구나.'
끝순이는 그 다음 줄을 읽는다.
'이 할애비는 대하꾜 공부만은 지 힘으로 벌어 어렵게 공부해야 성공한다고 늘 그래 생가케(생각해) 왔다. 그래, 니 아비가 종옥이 대하꾜 보내 줄라 컸는 것도 반대했다. 인자 생가커니 종옥이도 내가 주겼(죽였)고 니 아비도 내가 주긴(죽인)거나 다를 바 없다. 그 전에는 술은 입에도 못 대던 놈이었다. 그래 마음 정했다. 니는 정신이 똑바로 백(박)힌 아해(이)라 고생시킬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래 고랑꼴 논 판 계약금으로 통장 하나 만드렀(만들었)다. 통장은 니 책상 오른짝(쪽) 서랍에 뒀다. 니 대하꾜 마굴(낼) 등록금 내거라. 그파게(급하게)왔다 간다. 할애비가'
끝순이는 할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
"저 노인이 죽어서도 재산을 가져 가능강 두고 보자."
고 벼르던 어머니 마음도 알면서 늘 모른 체해 오시던 할아버지였다. 마을에서도
"최씨 영감 주머니에는 돈이 한 번 들어가믄 나올 줄을 몰러."
하며 모두들 너무 돈을 쓸 줄 모른다고 흉을 보았다.
"할배는 돈을 그리 걸머지고 대체 어데다 쓸라꼬 그라니껴?"
끝순이는 아예 맞대 놓고 할아버지께 대들기도 했다.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엥, 다 쓸데가 있으니 모우제."
하시며 얼굴에 노여움을 가득 담아 바라보셨다. 그렇게 묻는 것까지 고깝게 들었던 할아버지 마음을 오늘에야 알 것 같았다.
'서랍 오른 쪽에 넣어 두셨다고 했지?'
끝순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그 통장이 얼른 보고 싶어 찾았다.
"끝순이 학생 방에 있어? 전화 한 번 받아 봐."
주인집 아주머니가 부르는 목소리다.
"전화요?"
끝순이는 밤늦은 시간에 주인집으로 전화 걸 사람이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는 사람인데 싶어 얼른 달려가 받았다.
"여보세요?"
"끝순이가? 그래, 나 에미다. 할배가 돌아가셨다."
"어메, 무슨 소리고. 대체?"
"며칠 전부터 읍내에 부산하게 드나드시더니 이상하다 캤다. 오늘은 귀신이 씌였는지 글씨 새벽같이 나가시더니만 차에 치어 돌아오셨다."
"차에 치였다고. 할배가?"
"여기 장수 병원이다. 방금 운명하셨다. 그런데 자꾸 끝순이 니캉 종수만 찾더라. 빨리 온나. 아직 눈뜨고 기신다(계신다). 와서 눈감겨 드리라. "
끝순이는 두 손을 모아 수화기를 꼭 잡았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인양 보듬으며 매달렸다.
"할배요! 할배요!"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