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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합원님들... 이번에 지역구 2기 대의원 후보가 된 녹번동민 츄냥이라고 합니다.
어제 모임에서 봉미숙 이사님께서 물어보신 닉네임의 뜻.. 츄냥이(춘향)는 제가 8년 전부터 공생하고 있는 두 마리의 동거묘 향이와 다니(향+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냥이 때문만은 아니고, 주로 일편단심 스똬일이기도 한 저는, 올 한 해 살림에 눈멀어 정줄 놓고 사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상태는 몽룡을 만나서 겪는 문화충격 단계가 허니문 스테이지쯤에 있달까요?
날씨
어제는 완전 추웠어요. 첫눈이 내렸고, 귓때기가 떨어져 나가도록 찬 바람이 거센 날이었어요. 남은 잎새들 다 떨구기로 작정한 바람이 부는.
이런 날이라면... 일 년 전의 고혈압 환자에 비만인인 저였다면 동모임 따위 뒤로 던져버릴 게 틀림없었어요. 투표하는 것도 감지덕지라오, 등짝 방바닥에 지지며 텔레비전 리모컨 끼고 뒹굴었을 테지만, 저는 오늘날 다시 태어났답니다. 지난 9개월간의 운동클리닉 수강으로 무려 비계 스무 근을 덜어내어 몸뚱이가 깃털처럼 가벼워졌거든요. 근육에 글리코겐이 가득 찬 머슬러, 미토콘드리아에는 ATP가 넘쳐나는, 세로토닌과 베타엔돌핀과 BDNF로 과충전된 에너자이저였어요. 운동클리닉 개그너의 지위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아직 ‘살림’살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싱싱한 조합원이었어요. 그러니 모래폭풍이 분다 한들 다짐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는 일편단심 츄냥이였죠.
명함 나누기
그제 있었던 제 지역구 동모임에는 운클 때문에 못가고 위원회/소모임 지역모임에 참가하였어요. 제자리에 못가서 남의 집 잔치처럼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뒤로하고, 역쉬~! 살림의 꽃 소모임이로구나, 살림의 대들보 위원회로구나... 이런 자리에 꼽사리 꼈으니, ‘오~ 내 복이다!’ 하며 편안하게 즐겁게 함께했어요. 참석자는 모두 열아홉 명... 주로 대의원 후보자님들이셨어요.
봉 이사님의 사회로 살림 명함 나누기로 모임을 시작하였어요. 제가 받은 명함은 ㄷㅎ님.. 살림에서 텃밭소모임과 친놀과 건마위를 해본 적이 있는, 저처럼 먹을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운클에서도 뵈었던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죠. 처음 뵈었을 때 어쩐지 친해지고 싶었는데, 명함을 주셔서 기뻤어요.
사진으로만 뵈었던 얼굴들도, 처음 뵙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기들도 여럿이었어요. (처음엔 친놀모임인 줄... 옆방 스페인어 소모임에 들어갈 뻔...) 그리고 귀하디귀하다는 남성 조합원과 직원도 뵈었어요. 저는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고 생활터도 일터도 여초라... 일단은 살림의 남성조합원들이 대단해 보여요. 저 분은 무조건 내공이 대단할 것이여...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여탕에 오신 분들은 특히 잘 챙겨드리고 싶어진답니다. (길반장님~ 제가 등 밀어드릴까요?)
치과개원 이야기
무영 이사님의 프리젠테이션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었어요. 진료실에서 두어 번 뵙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처음 뵈었는데, 음... 과연... 우리가 주치의 잘뒀네... 복도 많지... 했어요. 살림의 개원 과정에 대한 짤막한 보고와 개원 이야기는, 잔잔한 뭉클함이...
갓 후레쉬맨을 벗어난 저는 지난 수 년간의 살림의원과 다짐 개원과정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살림사(史) 개요를 보면서 기분이 오묘했답니다.
오... 오... 이렇게 많은 손길들과 시간들과 정성들이 켜켜 쌓여 살림을 이루고, 다짐을 세웠구나...
음... 뭉클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했어요. 저 밑에 뭔가 되게 비장하고 거대한 것이 있는 것 같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피상적인 살림의 면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감동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숙연했어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이런 마음이 드는데, 직접 만든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하는 궁금함도 생겼죠.
그래서 개원애벌레들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애벌레님들이 애면글면 잘 차려놓은 잔칫상에 맨입으로 젓가락만 들고 나와 앉아서 이렇게 배터지게 먹고 즐기고 누리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치과개원에 큰 관심을 못 가졌던 것이 송구했구요.
출마의 변
피오나 이사님의 대의원 선거 안내와 후보자 소개가 이어졌어요.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도 직접 들었구요. 저에게는 한분 한분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다들 사진보다 실물이 멋졌죠. 살림의 든든한 서까래들... 저도 반대자가 없다면 내년엔 그분들과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설렙니다.
잇솔질과 핫 핑크
끝으로 몽님의 진행으로 잇솔질 교육을 받았어요. 어려서부터 치과를 무지무지 싫어하는데다가 이도 잘 안 닦고 스케일링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안나는 저는, 틀림없는 개망신을 예상했어요. 그래서 모임에 가기 싫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뭐, 챙피해도 좋았어요. 내가 엉망진창이라는 걸 확인하는 즐거움도 있을 테니. 모두들 핑크 알약을 깨물고 잇솔질을 했죠. 귀요미 래아도 칫솔을 입에 물고 우물우물...
제 이가 얼마나 잘 닦였는지 확인해 보니, 의외로 플라그가 없더라구요. 저는 잇솔질 배운 적도 없는데 알아서 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핑크 알약에도 오류가 있는 걸까요? 어쨌든 망신살은 피한 듯... 정웅이도, 끄적님도, 샤로니님도 거울을 보며 열심히 플라그를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핑크색 혓바닥과 잇몸이 오늘 아침까지도 기괴하게 선명하더라구요. 암튼, 덕분에 좋은 칫솔을 얻게 되어 즐거웠어요.
살림의 늪
살림에 대해 아무 과정도 내막도 모르던 저는 제 필요와 관심을 따라 살림을 찾았어요. 협동조합의 협자도 몰랐고, 단지 의료시스템을 불신하는, 돈 뜯기 바쁜 병원에 발도 들이기 싫은, 병원에 줄 돈 없는 평범한 일반시민일 뿐이었죠. 그저 진료 받으러 가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병원을 찾았고, 살림이 그 정도만 해줘도 저는 목적을 달성하는 거였어요. 병원은 해마다 억지로 해야 하는 공단건강검진이나 갑작스런 응급상황에만 이용하는 ‘기관’일 뿐.
하지만 살림에서 만든 그것은 달라 보였어요. 그것은 기관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연대’였어요. 너무나 유기적이고 너무나 자발적인!
한 개인의 카리스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관료주의 시스템이 굴러가게 하는 것이 아닌, 집단지성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토록 풍성하고 탄탄한 유기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뭘까, 이건?
도대체 넌 누구니, 살림?
살림... 너는 늪이로구나...
이제 저는 그 늪에 발가락을 담갔어요. 제발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빠져들 거고, 숨막히기도 할 거고, 벗어나고 싶기도 할 테지요. 언젠가 안간힘을 써서 달아날지도 모르구요.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한발씩 전진합니다. 살림 언저리에 머물다가 이제 진짜 살리머 되기 출발합니다.
에필로그
후기를 쓰게 될 줄 알았으면 어제 모임에서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는 건데... 사진은 새로 오신 사무국 직원 철수씨가 찍어주신 거고, 몽님이 아침에 사진을 보내 주시면서 아가들 이름도 귀띔해주셨고 감말랭이는 강은주님께서 주셨다고 알려줬어요. 그리고 뒷정리는 모두 함께... 이렇게 저마다 다양한 손길들이 모여서 살림을 이루어 가는 게 정말 멋져요. 후기가 디테일한 스케치가 아녀서 좀 아쉽지만, 어제 피피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한마디만 하고, 폭풍후기를 마무리할게요.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
조합원 여러분, 저에게 반대표를 던지셔도 좋으니 투표에 많이많이 참여하시면 좋겠어요. 살림의 숲에서 함께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
첫댓글 후기를 구성진 아나운서 목소리로 읽어주면 정말 재미질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
^^ 몽님~~ 맨날 늦게까지 고생 많으세요. 고마워요~~
츄낭이님~ 운클에서만 뵙다가 인사 정식으로 나누어서 반가웠어요^^ 츄냥이님의 느낌이 마구마구 생생하게 전해지는 후기 재미있어요~
저도 반가워요! 다하님 주신 명함 챙겨왔어요. ^^ 저도 먹을 거 되게 좋아해요. 맛있는 거 남아돌면 갖다드릴게요~
너무너무 재미있는 후기, 잘 읽었어요. 웃다 울다 할뻔했네요. 전반적으로 웃고, 개원과정에 대한 감상에 울고..... 감정과 관찰력이 이미 디테일 하십니다. 운클로 건강해지셨다니 기쁘고 ... 대단하쉽미다....!
살림이 저를 위해 마련해 준 성찬을 잘 찾아먹어서 건강해진 것 같네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읽다가 눈물 날 뻔.... 정말 잘 읽었어요 막 감사하고 기쁘고 그러네요 살림의 내년, 내후년, 10년 뒤가 더 기대됩니다.
저도요~ ^^ 10년 20년 뒤에 살림과 함께 자라갈 갈 제 모습도, 멋지고 중후하게 나이들어갈 살림의 모습도 마구마구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