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16) ‘대통령’이란 호칭을 박탈한다.
휴헌 간호윤 ・ 2024. 9. 27.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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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란 호칭을 박탈한다.
‘호칭(呼稱)’은 그 사람을 이름 지어 부르거나 또는 그 이름을 말한다. ‘대통령(大統領)’은 국어사전에 “명사: [법률]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경우와 형식적인 권한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에 속한다.”로 적바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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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16)
(16) ‘대통령’이란 호칭을 박탈한다.
‘호칭(呼稱)’은 그 사람을 이름 지어 부르거나 또는 그 이름을 말한다. ‘대통령(大統領)’은 국어사전에 “명사: [법률]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경우와 형식적인 권한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에 속한다.”로 적바림 되어 있다. 그 예로 『한국어대사전』에는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公僕)이지 지배자가 아니다. → 대통령”으로 기술되어 있다.
두어 해 전쯤인가 보다. 서재 근처 미용실을 찾았더니(내 서재 근처에는 이용원(理容院)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미용실을 이용한다.) 해끄무레한 청년이 카운터에서 “어느 선생님께 시술받으시겠어요?” 하는 게 아닌가. 기겁을 하여 나왔다. 이발하는 곳에 ‘선생님’이 웬 말이며, 또 이발하는 기술이 의료 행위인 시술이라니. 멀쩡한 내 머리를 어떻게 수술한다는 말인가?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이발사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이발 기술을 가리켜 ‘시술’이라 한다는 정의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시술이 온 나라를 거쳐 미용실로까지 퍼진 듯하다.
선생님(先生-님)은 ‘선생’을 높여 이르거나 나이가 어지간히 든 사람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스승, 은사가 있다. 선생(先生)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혹은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간 선생’이나 ‘과장 선생’처럼,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기도 하지만, 내 이발(理髮, 머리털을 깎고 다듬어 주는 일) 해 주는 이를 선생이라 호칭하지는 않는다. 영어사전에서도 선생(teacher)은 교사, 혹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을 칭한다. 그러니 이발 기술을 전수하는 선생과 제자 사이에 호칭이지 손님에 대한 호칭은 아니다.
더욱이 ‘시술(施術)’은 의술을 베풀 때 쓰는 특수 용어이다. 뜸 시술(뜸施術, 한의학에서 약쑥을 비벼서 쌀알 크기로 빚어 살 위의 혈(穴)에 놓고 불을 붙여서 열기가 살 속으로 퍼지게 하는 시술), 박피 시술(剝皮施術, 의학용어로 피부 표면에 있는 흉터나 흔적들을 깎아 내어 없애는 시술), 흉터 시술(흉터施術, 흉터를 제거하기 위한 시술)처럼 의학 전문 용어이다. 주로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보정 시술(補正施術)도 있지만 이 또한 의학에서 얼굴이나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바르게 하는 시술이다. 즉 ‘시술’이란 환자의 환부(患部)를 치료하는 수술을 칭한다.
외국도 동일하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시술(procedure)을 ‘내과적 수술 (medical operation)’이라 풀이하고 있다. 즉, 시술은 수술과 유사한 의료 행위를 칭하는 용어이다. 이 외에 최면술 따위의 술법도 시술이라 하지만 이발 기술에 웬 시술이란 말인가.
마치 양복을 잘 갖춰 입고 갓 쓴 모양이요, ‘가게 기둥에 입춘’ 격이니 그야말로 개도 웃을 일이다. 하기야 요즈음 물건을 사러 들어가면 “여기 커피 나오셨습니다”, “여기 잔돈 200원이십니다”, 심지어는 병원이나 약국에서도 “000님! 여기 000원(약) 나오셨습니다.”라 한다. 손님을 높이려고 쓰는 ‘-시-’이지만 커피나 돈이나 약을 높인 꼴이다. 귓구멍과 콧구멍이 두 개씩이기 망정이지 하나라면 기가 막혀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시-’는 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로 문장의 주어를 높여준다. ‘선생님께서- 계시다, 잡수시다, 편찮으시다’ 따위에 쓴다. 이렇듯 반드시 말하는 화자보다 주체, 즉 주어가 나타내는 대상이 높을 때 사용한다. ‘제가 아시는 분 중에~’도 틀렸다. 말하는 이가 자신을 높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바 아니다. 미용실이나 이용원에서는 직업 기술 품격을 높이고자 의료의 ‘시술’을 쓴 것이요, ‘-시-’는 손님의 품격을 높이고자 그러한 것이다. 하기야 국격을 높이려는 의도인지 국가공무원들조차 모든 민원인에게 ‘선생님’이라 호칭하더니, 온 나라가 이제는 선생님 천지다.
모두 품격을 높이려는 의도이나 정녕 ‘언어의 품격’은 바닥을 나뒹군다. 언어에 과부하가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 언어는 한 나라 문화의 지평이요, 살아있는 생명체다. 우리가 언어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요, 언어의 품격을 지켜줘야 할 의무이다. 언어의 품격이란 그 뜻에 맞게 사용하고 그 뜻에 맞게 행동함이다. 이 ‘선생님’이란 호칭은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호칭을 부르거나 불렸다고 크게 해를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이란 호칭은 ‘국민의 공복인 단 한 사람’에게만 국민이 붙여준 칭호이기 때문이다. ‘공복’이란,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저 위의 『한국어대사전』의 예는 그래 저렇게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의 호칭이 그에 적합한지 묻고 싶다. 국민의 공복이 아닌 대통령은 ‘대통령’이란 호칭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 호칭을 박탈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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